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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일화] 김일성 주석, 언어문제를 민족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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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3-12 11: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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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김일성 주석, 언어문제를 민족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해결

 

편집국

 

 

 

 

조선의 오늘 사이트는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지향시키고 복종시킨 김주석의 위대한 민족애를 돌아보는 일화를 소개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해방후 조선문자를 바꾸자는 개혁안이 제기되었을 때 우리 민족이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문자를 쓰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민족적 공통성이 점차 없어지고 결국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질 수 있는 엄중한 후과가 초래된다고 우려하며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언어문제를 민족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풀어나가도록(1)

 

 

오늘날 지구상에는 수천개의 언어가 있으며 그중 사용인구수가 5 000만명이상 되는 언어들은 10여개나 된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징표의 하나이다.

 

더우기 외세에 의하여 민족이 분렬된 우리 나라의 조건에서 민족적공통성을 지키고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데서 언어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실현하시기 위해 한평생 크나큰 로고와 심혈을 기울여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언어문제를 민족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풀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 과학자로서의 참된 삶을 누린 한 언어학자의 회상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지향시키고 복종시키신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민족애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절감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병제선생이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몸가까이 만나뵈온 날은 1949년 4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경치좋은 대동강기슭에 새로 지은 살림집에 이사한 김일성종합대학 교원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러 나오셨다가 그의 집을 찾아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남조선에서 가족들도 다 들어왔는가, 식구는 몇이나 되고 언제 이사를 했는가를 하나하나 물어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가족이 다 무사히 들어와서 함께 살고있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며 집둘레를 한동안 살펴보시다가 집구경을 좀 하자고 하시며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르려고 하시였다.

 

그는 너무도 당황하여 수령님의 앞을 막아서며 신발을 신고 올라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도그럴것이 이사온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 집안팎이 정돈되지 못하였을뿐아니라 벽에다 회칠을 하느라고 마루바닥이 어지럽기 그지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거처하는 곳인데 어찌 구두발로 들어가겠는가고 하시며 끝내 신발을 벗고 그 어지러운 마루바닥을 밟으시며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러칸의 살림방들과 부엌, 목욕탕까지 일일이 돌아보신 다음 서재에 들어가시여 생활에서 곤난한 점은 없는가고 물어주시고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우리를 찾아 남조선에서 온 대학선생인데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선생은 일본놈들이 없애버리려고 하던 그 조선말을 배워준다는데 참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제는 마음놓고 배우고 또 배워줄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였으니 학생들이 자기 나라 말을 똑똑히 알도록 잘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앞으로 우리 말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그의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시면서 어학연구사업에서 성과를 이룩하도록 이끌어주시였으며 1955년부터는 그에게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소장의 직무를 맡겨주시는 크나큰 신임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때로부터 열다섯해후 그는 오매에도 그리던 그이를 또다시 만나뵙게 되였다.

 

주체53(1964)년 1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를 비롯한 언어학자들을 친히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던것이다.

 

김병제선생을 비롯한 언어학자들이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이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마주 걸어나오시여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신 다음 자리를 권하시였다.

 

일행이 자리에 앉자 수령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에게 연구소성원이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륙십팔명입니다.》라고 대답을 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시고 수첩에 무엇인가 적으시던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예순여덟명입니까?》라고 그의 말을 되받아물으시는것이였다.

 

순간 그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언어학을 전문해왔다는 그자신이 우리 생활에 익숙해진 고유한 조선말을 쓰지 않은것이 더없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속마음을 헤아리신듯 너그럽게 웃으시며 연구소형편을 다 알아보신 다음 벌써 오래전부터 언어문제에 대하여 동무들과 한번 의논해보려고 생각하고있었으나 여러가지 일때문에 지금까지 미루어왔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 나라 언어학의 발전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먼저 한때 일부 사람들이 문자개혁문제를 들고나왔던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해방후 이른바 《조선문자개혁안》이라는것을 들고나왔던 사람들은 그것을 언어학자들에게 마구 내려먹이면서 하루빨리 북반부에서 새 문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직위를 악용하여 교원, 학생들속에서 《조선문자개혁안》을 지지하는 발표회를 제멋대로 조직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되자 일부 언어학자들은 좌왕우왕하다가 나중에는 그것이 옳은것처럼 론증해보려고까지 하였었다.

 


◆ 김병제(1905. 8. 25 - 1991. 8. 5)선생은 해방전 남조선에서 신문사의 교정원, 기자로 일하면서 날로 심해지는 일제의 민족어말살책동에 맞서 조선말연구를 시작하고 조선어의 고수발전을 위한 사업들에 참가하였다.

 

해방후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긴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교원,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소장, 고문소장으로 사업하면서 능력있는 언어학자들을 많이 키워내였으며 공화국의 원사, 교수, 박사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선어연구발전에 헌신한 이름있는 언어학자이다.


 

 

언어문제를 민족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풀어나가도록(2)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당시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조선문자개혁안》이 민족의 말과 글의 발전에 엄중한 후과를 미칠수 있다는것을 통찰하시고 이 문제를 바로잡아주시려고 1947년 12월 김일성종합대학 력사문학부 교원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담화에서 《조선문자개혁안》의 부당성에 대하여 신랄히 비판하시면서 문자개혁문제는 무엇보다도 민족문제와 밀접히 결부시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 민족이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문자를 쓰고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리 인민의 민족적공통성이 점차 없어지고 결국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질수 있는 엄중한 후과가 초래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이 나라가 분렬되여있는 상태에서는 문자개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언어학자들을 몸소 부르시여 언어문제를 나라의 통일문제와 결부시킬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자개혁론의 부당성에 대하여 다시금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 어떤 사람들은 언어문제를 민족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았습니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가운데서 가장 중요한것의 하나입니다. 피줄이 같고 한령토안에서 살아도 언어가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들의 주장대로 문자개혁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북조선사람들이 서로 다른 글자를 쓰게 되면 편지를 써보내도 모르게 되고 신문, 잡지를 비롯한 출판물들도 서로 알아볼수 없게 될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인민의 민족적공통성을 없애며 결국은 민족을 갈라놓는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게 될것입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민족을 갈라놓는 그 어떠한 문자개혁도 절대로 허용할수 없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자개혁을 하더라도 남북이 통일된 다음에, 우리의 과학기술이 세계적수준에 오른 다음에 하여야 한다고, 그때에 가서는 문자를 고쳐도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글을 쓰는 일이 없게 될것이며 또 사람들이 새 문자를 배우는데 일정한 시간이 걸려도 과학문화의 발전에 별로 큰 지장이 없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언어의 기본단위를 이루는 어휘를 정리할데 대한 문제, 우리 말 단어형태화문제, 철자법정리문제, 한문자의 학습과 그 사용범위문제, 외래어를 쓰지 말고 자기 나라 말을 쓰도록 하는 문제 등 우리 민족어발전에서 제기되고있는 많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해명을 주시였다.

 

한생을 언어학연구에 바쳐오는 수많은 언어학자들도 오래동안 풀지 못하고있던 민족어발전에 관한 그 모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단번에 풀어나가시며 하나하나 명백한 해명을 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열정에 넘친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김병제선생은 수령님의 빛나는 예지와 비범한 과학적통찰력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그때로부터 2년후인 1966년 5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김병제선생을 비롯한 언어학자들을 또다시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우리 말의 통일적발전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남조선에서는 아름다운 우리 민족어가 없어질 위험에 빠져있다고 하시면서 남조선신문 같은것을 보면 영어나 일본말을 섞어쓰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한자말은 중국사람들도 쓰지 않는것까지 망탕 쓰고있다고,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수령님께서는 조선어의 민족적특성을 옳게 살리고 그것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우리 말 발전의 터를 닦아야 한다고, 평양을 중심지로 하고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언어의 민족적특성을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평양말을 문화어로 규정하여주시였다.

 

우리 민족어의 옳바른 발전을 위한 현명한 방침을 펼쳐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몸소 정력적으로 이끄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와 심혈은 끝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자신의 사무실로 어학자들을 부르시여 어학발전문제를 놓고 함께 의논도 해주시고 또 어떤 때에는 교원들과 기자들, 문학예술인들을 부르시여 인민대중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쓸데 대하여 간곡하게 타일러도 주시였다. 또한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한 농촌당세포의 회의록을 보아주시다가 틀린 철자법을 바로잡아주시고 이름없는 한 산간역에 들리시여서는 렬차시간표를 보시고 인민들이 잘 알아볼수 있게 글을 바로쓰도록 보살펴주기도 하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어떤 날 밤에는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어학자들이 론쟁을 거듭 하다가 해결을 보지 못하여 올린 제의서를 보시고 그들을 부르시여 제기된 문제를 하나하나 손수 풀어주기도 하시였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크나큰 로고,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에 우리 말과 글은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혹심한 상처를 가시고 주체가 확고히 서고 민족적특성이 살아숨쉬는 민족어로, 민족의 통일에 이바지하는 무기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갖추어나갈수 있었던것이다.

 

하기에 김병제선생은 생전에 자기의 제자들에게 우리 수령님은 일제에게 빼앗겼던 조국을 찾아주시였을뿐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찾아주시고 빛내여주신 우리 민족어의 구원자이시며 위대한 스승이시라고 자주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언어문제를 민족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풀어나가야 한다!

 

언어학발전의 참된 길을 밝힌 이 고귀한 가르치심은 모든 문제를 조국통일의 관점에서 보고 풀어나가신 민족의 태양김일성대원수님의 투철한 애국애족의 립장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후세에 길이 전해지고있다.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8-03-12 11:28:3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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