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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르포-탈북자를 만나다④] “아오지탄광 강제노동?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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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3-09 16:4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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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탈북자를 만나다④] “아오지탄광 강제노동? 거짓말이다.”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한국 내 탈북자가 27000명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여건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어느덧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한국 내 북한 사람들. 이들 탈북자의 생활과 고민들을 공유하기 위해 NK투데이에서 연쇄 인터뷰를 준비했다.

 

[르포-탈북자를 만나다] 연재가 시작되자 작지 않은 반향이 나왔다. 어떤 탈북자들은 자신들 사연도 인터뷰해달라며 연락을 해왔고, 또 어떤 탈북자단체에서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며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3만 명을 바라보는데 어찌 한 목소리만 있을까. 그동안 언론에는 잘 소개되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탈북자들을 계속 만나며 그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현재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탈북자를 만나보았다. 청소년 시절에 탈북해서 한국에 정착,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이름을 밝혀도 되는지 물어봤다. 

 

“네, 상관없어요. 제가 무슨 유명인도 아니고, 뭐 이 땅에서 계속 숨어 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름은 조경일(88년생). 그런데 유명인은 아니지만 고향은 유명한 곳이다. 

 

“제 고향은 경흥군입니다. 여기서는 아오지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아마 평양 다음으로 유명하지 않나요?”

 

아오지 하면 아오지탄광이 떠오른다. 그럼 아버지가 광부였을까?

 

“아버지는 평범한 노동자셨고, 어머니는 탄광 일도 좀 하고, 농장 일도 했었는데 그냥 주부였어요. 아오지라고 탄광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곳에도 남한만큼은 아니지만 공장들도 있고 농장도 있고 다양한 직업군이 있어요.”

 

혹시나 해서 탄광에 가 봤는지 물어봤다. 

 

“친구들하고 놀러 가봤죠. 갱도에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석탄도 주우러 다니기도 했죠. 그냥 탄광이에요. 탄광이 다 똑같죠 뭐 특별할 게 있나요? 언론에선 아직도 사람들을 아오지탄광에 보내서 강제노동 시킨다고들 그러는데 다 거짓말이에요. 수십 년 전 옛날이야기들을 아직도 언론에서 쏟아내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그런 거 없고 다 평범한 노동자들이예요.”

 

2000년에 처음 탈북을 했다고 한다. 어쩌다 탈북 했을까?

 

“살기 힘드니까 탈북 했죠. 어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두만강을 건넜어요. 여름인데 강물이 목까지 차오르더라고요. 새벽에 국경 경비 눈을 피해 건너는데 헤엄치면 물소리가 나니까 물속에서 까치발로 걸어서 건넜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아직도 수영을 못해요. 물이 두려워요.”

 

북한에선 모든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건 과장된 얘기란다. 아무튼 탈북 후 중국에서 2년을 살면서 소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북한에 있을 때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생활이 너무 힘들어 2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단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을 텐데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까?

 

“저를 돌보던 분들이 가짜 호적을 구해줘서 중국의 학교를 다닐 수 있었어요. 학교엔 저 말고도 북한 학생이 세 명 더 있었어요.”

 

중국에서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듯하다. 

 

“어머니는 돈 벌어 살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서 가야했고 저는 사랑의 집 같은 시설에서 교회 분들이나 선교사분들 보살핌 속에서 살며 학교를 다녔죠.”

 

그렇게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어느 날 중국 공안이 학교에 찾아와 체포했다고 한다. 경찰이 소학교에 들어가 학생을 체포한 건 너무하다 싶다. 당시 탈북자 집중 단속 기간이었는지 많은 탈북자들이 체포돼 북송됐다고 한다. 

 

“중국 변방 감옥에서 40일 가량 잡혀 있다가 북송돼서 3일 정도 보위부 취조를 받고 해당 지방으로 보내지는데 저는 당시 어려서 청진에 있는 청소년 시설로 갔어요. 수용시설이라기보다 고아원에 가까운 곳이라고 보면 되는데 실제로 고아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도망치지 못하게 관리는 하죠.”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체포됐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청진에서 한 달 정도 머물고 나서 고향으로 이송됐다. 거기서 아버지를 만났고 그 후에 시설에서 나와서 아버지와 살게 됐다. 그 사이에 어머니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2004년에야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 사이에 어머니도 대여섯 번 북송됐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이미 어머니는 한국에 있었고 저도 어머니 찾아 다시 탈북해서 한국으로 바로 왔어요.”

 

대여섯 번 북송됐다는 건 그만큼 탈북을 했다는 것 아닌가. 탈북은 북한 입장에서 불법 월경인데 범죄자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 걸까?

 

“대여섯 번은 기본이고 심지어 20~30번 탈북한 사람들도 있죠. 한 번 탈북 했던 사람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기억이 있으니까 또 탈북하게 됩니다. 원래 90년대 초기에는 탈북하다 잡히면 중범죄로 처리됐어요. 그런데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탈북자가 굉장히 늘어났고 그 중 90%는 생계형 탈북이었어요. 그러니 그 사람들을 다 감옥에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한두 달, 아니면 반년이나 1년 정도 교화시설에서 사상교육을 다시 시키고 내보내줍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와 함께 탈북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외부 세계를 잘 모르시고, 성격이 일단 고지식하고, 중국에 가면 남자들은 살기 힘들다는 소문도 있고, 또 어머니와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한지 오래됐고 그사이 새 가정을 꾸렸고, 이런 여러 이유로 함께 탈북하지 못했어요.”

 

남아있는 가족은 피해를 입지 않을까?

 

“어느 정도 기간 감시는 받겠죠. 그런데 행방불명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닌데 어떻게 다 감시하겠어요? 가족이 탈북 했다고 해서 남아있는 사람이 다 요주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정치적 이유로 탈북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좀 더 심한 감시나 불이익을 받을 거예요.” 

 

한국에 들어와 합동심문센터 조사와 하나원 교육과정을 마친 뒤 어머니를 만나 함께 살게 됐다고 한다. 정착 과정이 힘들 지는 않았을까?

 

“2004년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벌써 10년 정도 됐네요. 저는 비교적 어려움 없이 적응한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어려움이라기 보단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려니 버스 탈 때 카드 찍는 것 등 사소한 것부터 다시 배워야하고 이 문화에 어느 정도 친숙하게 동화되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게 적응기간이었던 거죠. 반세기 이상을 서로 달리 살아온 체제잖아요. 그러니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 수 밖에 없죠.”

 

평생 시골 살다 서울 와서 살 때 겪는 어려움 정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들어와서인지 다른 이들에 비해 빨리 정착한 듯하다. 

 

“저는 어린나이에 와서 바로 학교를 다녀서 구직난에 대한 어려움은 아직 없었어요. 학교 졸업하면 곧 겪게 되겠지요. 하지만 다른 탈북자들은 대부분 경제생활에 적응하기 어렵고, 돈 벌기 어렵고, 취업하기 어렵고, 취업해도 직장에 적응하기 어려워요. 그런 부분을 정부에서 조금 더 맞춤형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는데 사실 지금 한국에 기초생활수급자가 150만 이상 되고 탈북자는 3만 명이니 뭐 정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건 이해해요. 그리고 탈북자들이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해외로 이민 가서 정착한 1세대들이 세탁소와 식당에서 차별과 무시를 이겨내며 터를 다졌던 것처럼 어쩌면 저와 같은 탈북자 1세대들이 터를 잡기 위해 이겨내야 할 운명과 같은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탈북자들은 많은 차별을 받는다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그런 경우는 많이 봤어요. 차별이야 언론에도 종종 나오잖아요. 탈북자들은 일단 억양이 다르기 때문에 고향 어디냐고 많이 물어보죠. 그러면 어떤 탈북자들은 그나마 북한이랑 비슷한 강원도에서 왔다거나 혹은 조선족이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국에 들어올 때 나이가 16살이었다.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한국에서 나이에 맞게 중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북한에서선 초등학교 2학년이 학력의 전부이니 초등학교를 다시 가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나이에 어떻게 초등학교를 갑니까? 그래서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면서 초충고 자격시험을 보고 바로 대학을 갔죠.” 

 

탈북자가 대학에 간다는 게 생소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다고 한다. 

 

“지금 3만여 명의 탈북자 중에 청소년, 청년 등 젊은이가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탈북대학생들도 많아요. 아마 북한출신 청년들 중 70% 정도는 대학을 갈 겁니다. 하지만 그 중에 다시 70% 정도는 중도에 포기를 해요. 학업을 따라가기 어려운거죠. 남한의 대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도 다니며 공부를 했는데 북한에서 온 친구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으니 당연히 그 공백 기간을 무시할 수가 없죠. 저만 해도 북한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밖에 못 다녔어요. 배고픈데 학교를 어떻게 갑니까. 중국으로 가서 소학교 2년 정도 다니다 북송돼서 북한에서 다시 고등중학교 4, 5학년 2년을 다닌 게 다예요. 고등중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시험 볼 때 백지를 낸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한에서는 대학 가서도 남한청년들 보다 두 배 세배 네 배는 더 공부를 많이 해야 따라갈 수 있어요.”

 

 

 

 

그래도 새터민특별전형이 있어 대학 입학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한다. 게다가 정부에서 대학 등록금을 100% 지원해준다고 한다. 

 

“다행히 대학교까지는 정부에서 등록금이 6년 동안 8학기를 지원해줘요. 그러니까 그나마 대학교를 다닐 수가 있는 거지 이게 없으면 북한에서 온 청년들은 아마 다들 벽돌 나르는 공사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대학교를 다닐 수 있어 다행이죠. 그런데 대학원은 정부 지원이 없기 때문에 장학재단이나 외부 단체 또는 후원해주는 분들의 지원을 받아야 다닐 수 있어요.”

 

대학 생활하면서 친구들과는 잘 어울렸을까?

 

“저는 입학하고 처음부터 북한에서 왔다고 얘기했죠. 그래도 주변에서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차별하지는 않더라고요. 학교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는 본인 스스로에게도 달려있다고 봐요. 물론 문화적인 이질성과 구조적인 문제들이 다분하니 개인이 혼자 노력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계속)

 

[출처: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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