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조선의 소리】명예용해공/ 아버지처럼 살고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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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2-20 19:4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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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용해공
평양시 락랑구역 락랑3동에서 살고있는 김명성로인은 우리 나라 굴지의 대야금기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의 명예용해공입니다.
로인은 기업소가 자리잡고있는 남포시 천리마구역에서 나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이곳에 태를 묻고 쇠물을 녹여온 사람들입니다.
일흔을 훨씬 넘긴 나이이지만 로인은 많은 파철과 지원물자를 가지고 한달에 한번씩 어김없이 이 기업소를 찾고있습니다. 초고전력전기로앞에서 땀흘리며 쇠물을 녹이는 용해공들에게 1t의 철강재라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애쓰던 아버지세대들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들을 철강재증산에로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사실 로인은 수십년간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 섰던 제대군관이며 그길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서슴없이 바친 영예군인입니다. 이런 그가 부디 이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하여 탓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로인은 파철을 수집하고 지원물자를 마련하는 일에, 그것을 실어나르는 일에 스스로 나섰습니다. 줌에나 겨우 드는 꽁다리파철이든, 한아름이 넘는 파철이든 가림없이 모조리 수집하여 우리 나라 굴지의 대야금기지로 나르고 또 날랐습니다.
이렇게 10여년간 로인은 변함없이 우리 나라 굴지의 대야금기지를 찾고 또 찾았습니다.
비록 많진 않아도 자기가 수집한 파철이 초고전력전기로속에 쏟아질 때면 더없는 기쁨과 행복을 한껏 느끼군 하였습니다.
명예용해공, 이 부름을 김명성로인은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라는 당부로 새겨안고있습니다.
사람의 육체에는 로쇠가 있어도 나라 위한 마음에는 로쇠란 있을수 없다고 하면서 오늘도 아름다운 생의 자욱을 새겨가고있습니다.
지난 시기 조국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고 하여 그 무슨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으로 자기 할바를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이 나라 공민이라고 떳떳이 자부할수 없다는것이 로인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처럼 살고싶었습니다
수도 평양의 거리를 누비는 무궤도전차들중에는 처녀운전사가 모는 129호전차도 있습니다.
그 처녀운전사는 김진해, 이제 20살밖에 되지 않습니다.
처녀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궤도전차운전사가 되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중학교졸업을 앞둔 어느날 어머니, 오빠와 함께 할머니의 집으로 가던 진해는 우연히 녀성운전사가 모는 무궤도전차를 타게 되였습니다.
30여년을 묵묵히 무궤도전차를 모는 아버지에게서 녀성운전사들도 있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직접 보게 되니 신기하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무궤도전차운전사가 될수 없을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가족사진 한장 남길수 없을 정도로 늘 직장에 나가 무궤도전차와 함께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감도 많았던 그로서는 선뜻 결심을 내릴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결심을 지지해주고 고무해준것은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무궤도전차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운수수단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리용하는 손님들속에는 큰 발명을 한 과학자도 있고 세계의 하늘가에 공화국기를 휘날린 체육인도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무궤도전차운전사가 된것을 더없는 긍지로 여긴다고, 네가 이 아버지의 대를 잇는다면 그이상 더 큰 기쁨이 없을것 같다고 절절하게 말하였습니다.
고이 길러온 외동딸이 무궤도전차운전사가 되겠다고 하자 놀라워하던 어머니도 딸의 마음을 알고는 한번 시작한 길을 마지막까지 가야 한다고, 아버지처럼 살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등을 떠밀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되여 무궤도전차를 몰게 된 처녀였습니다.
하지만 욕망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남들이 잠에서 깨여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집을 나갔다가 깊은 밤에야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것이 무궤도전차운전사의 하루일과였습니다.
일요일, 명절날도 가족들과 함께 보낼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소의 공훈자동차운전사의 곁에 자기를 세워보면서 마음을 다잡군 하였습니다.
이제는 무궤도전차를 자기 살붙이처럼 여기며 온갖 정을 다 쏟아붓는 처녀운전사입니다.
《저의 운행길도 인생길도 아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한생을 운전대와 함께 운행길에 바쳐온 아버지의 모습을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아버지처럼 저도 충성의 운행길, 애국의 운행길을 꿋꿋이 이어가겠습니다.》
처녀운전사는 아버지가 30여년을 달려온 운행길을 오늘도 이어가고있습니다.
2025.12.20
《조선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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