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세폭의 붉은기를 높이 추켜들고 시대의 전렬에서 내달리는 제남탄관 로동계급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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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8-06 08:1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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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폭의 붉은기를 높이 추켜들고 시대의 전렬에서 내달리는 제남탄관 로동계급에 대한 이야기
편집국
8월
6일부 【로동신문】은 “ 3대혁명은 새 인간을 키우고 새 기적을 낳은다”은 제목으로 세폭의 붉은기를 높이 추켜들고 시대의 전렬에서 내달리는 제남탄관 로동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게재하였다.
기사는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은 조선로동당의 총로선이며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가는데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의 승리적전진이 있다고 하며 투쟁의 산모범을 보이며 시대의 앞장에서 내달리는 제남탄전의 애국집단에 대한 이야기 두편을 소개하였다.
이야기들을 통해 《모든 혁명진지를 3대혁명화하자!》란 글발은 글발만이 아닌 일군들과 로동계급의 가슴속에 간직된 삶의 지향이고 투쟁의 목표라고 하였다.그리고 3대붉은기쟁취운동이 대중자신의 운동으로 확고히 전환될 때 단위마다 비약적발전이 이룩되고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이 가속화된다고 강조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3대혁명은 우리 당의 총로선이며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가는데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의 승리적전진이 있다.
《모든 혁명진지를 3대혁명화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사상, 기술, 문화령역에서 혁신을 안아오려는 사회적분위기가 고조되는 속에 새로운 기준과 표본을 창조하고 투쟁의 산모범을 보이며 시대의 앞장에서 내달리는 제남탄전의 애국집단의 모습이 뚜렷이 부각되고있다.
《사상, 기술, 문화분야에서 일대 변혁을 일으켜 최후승리의 지름길을 열어나가는데서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만큼 실효가 크고 위력한 운동은 없습니다.》
당에서는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단위발전의 위력한 무기로 틀어쥐고 끊임없는 전진비약을 이룩해나가고있는 덕천지구탄광련합기업소 제남탄광 로동계급의 정신세계와 투쟁기풍을 석탄공업부문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따라배워야 할 모범으로 높이 내세워주었다.
당 제8차대회이후 제남탄광은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높아진 석탄생산계획을 어느 한해, 어느 한달도 드팀이 없이 완수하였으며 자체의 기술력량과 자력갱생기지를 튼튼히 꾸려 보다 큰 생산적앙양을 일으킬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였다.뿐만아니라 교양거점들과 문화후생시설의 면모를 일신하고 후방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 등에서도 진일보를 이룩하였다.탄광의 현실은 3대혁명이 얼마나 훌륭한 인간들을 키우고 놀라운 전변을 안아오는가를 보여주는 축도이다.
우리
제남탄광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곳은 확실히 공기부터가 다르다고 말한다.일군이건 로동자이건, 오랜 탄부이건 신입공이건 직무와 겉모습은 달라도 지향과 숨결은 꼭같은 제남탄전이다.매 인간의 정신세계가 비상히 승화된 이것이야말로 3대혁명의 불길속에 이룩된 성과중의 성과라고 해야 할것이다.
탄광지령실앞에는 키높은 순위기발대가 있다.
사회주의경쟁을 고조시켜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기 위하여 초급당위원회는 매 갱의 생산실적을 주기적으로 종합하여 단위명칭이 새겨진 기발을 순위별로 게시하군 한다.이 소박한 순위기발대에 온 탄광의 시선이 늘 집중된다.
언제인가 7갱의 한 중대장이 초급당일군에게 이런 제기를 하였다.이번 생산총화에서 갱이 첫자리를 차지하였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자기네 기발이 세번째 순위에 그냥 머물러있다는것이였다.초급당일군은 가책이 컸다.그러면서도 한편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그만큼 탄부들의 경쟁열의가 높아졌다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다음순간 울리는 중대장의 목소리가 초급당일군의 가슴을 후덥게 하였다.
《이제라도 문득 우리 탄광에
미처 잇지 못한 뒤말의 의미를 초급당일군은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탄부들의 마음속에는 기발의 순위가 단순히 생산실적의 순위로만 새겨져있지 않는것이였다.
순위기발을 게시하는 주기가 앞당겨졌고 모든 갱들의 중대, 소대별사회주의경쟁도표옆에
구내의 대형속보판에는 주먹같은 글발이 새겨졌다.
《석탄산이 높아질수록 우리
우리
탄부들은 그 말을 하루에도 몇번이고 마음속으로 외우며 증산투쟁을 벌리였다.6갱에서 발단된 《교대당 한 탄차 더 실어내기》가 온 탄광에 파급되였다.자기 세대에 배정된 1년분 석탄을 통채로 저탄장에 보내고 버럭장에서 선별한 석탄으로 땔감을 보장하는 탄부들도 있었다.그러한 위훈의 자욱, 고상한 미풍은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영예등록장에 속속 새겨졌다.
그 한 갈피에는 너무도 뜻밖에 동지들의 곁을 떠나간 9갱 기사장 박경민동무의 생의 마지막자욱도 력력히 어려있다.
기사장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한구럭이나 되는 약들을 발견하였을 때에야 갱일군들은 그가 심장병을 앓고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의 사무실에서 눈에 띄는것이란 다 닳은 몇컬레의 장화뿐이였다.그안에서 떨어지는 톱밥이 갱일군들의 가슴을 아프게 저미였다.
기사장은 발땀이 많아 남모르는 고충을 겪군 하였다.늘 잡관목톱밥을 장화바닥에 깔고다니군 하였는데 그 발로 매일 수천m나 되는 갱막장의 구석구석을 안가본데 없이 훑다나니 병이 도져 고생이 여간 아니였다.그런 그가 오래동안 심장병으로 신고한줄 누가 알았으랴.
기사장이 늘 품고다니던 수첩의 첫 페지에는 《결사적인 생산투쟁》이라는 여덟 글자가 표제마냥 또박또박 새겨져있다.
이런 자각과 각오가 있었기에 제남로동계급은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매일 수천t의 석탄생산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할수 있었다.
당을 따르는 길에 한마음, 한모습으로!
이 불같은 지향은 제남로동계급으로 하여금 자기 단위를 락오자가 없는 집단으로 만드는것을 3중3대혁명붉은기쟁취를 위한 투쟁의 중요한 목표로 내세우고 서로 돕고 이끌며 사상개조, 인간개조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7갱 고속도굴진소대 김충일동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를 잃은데다가
소대장 최명성동무는 그를 교양하는것을 당적분공으로 자진하여 맡았다.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그를 찾아 걸은 길은 그 얼마였던가.생산이 긴장하여 막장을 뜰수 없을 때에는 안해가 그를 대신하여 김충일동무를 찾아 밤길에 나서군 하였다.한식솔의 정으로 반겨맞는 소대장의 집에 무랍없이 드나드는 과정에 김충일동무의 생활에서는 차츰 변화가 일어났다.그럴수록 그에 대한 소대원들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어느날 저녁 교대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던 김충일동무는 무춤 멈춰섰다.소대원들이
그는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이런 좋은 동지들의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으리라 굳게 속다짐하였다.고마운 동지들의 방조속에 김충일동무는 오늘 소대에 없어서는 안될 혁신자로, 교대장으로 성장하였다.
한명의 락오자도 없이!
그 말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그만큼 인간개조에는 많은 품이 들며 때로는 누구라없이 도리머리를 젓게 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고 뒤떨어진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손잡아 이끌어 붉은기아래 세워주어야 할 무거운 책임이 바로 당일군들에게 지워져있다.
8갱의 혁신자들가운데는 김철민동무도 있다.
한해전까지만 하여도 그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딴판이였다.떳떳치 못한 경력으로 하여 위축되여 생활하던 나머지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람들의 말밥에 올랐고 이지러진 성미는 가정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였다.
최철명초급당비서가 이 사실을 알게 된것은 탄광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던 지난해 여름이였다.
갱일군들은 그를 교양하다 못해 손털고 나앉은 상태였다.이제는 부모와 누이까지도 포기했다며 아무래도 그 사람만은 개조하지 못할것같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초급당비서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따라오는 사람은 데려가고 못따라올 사람은 그냥 내쳐둔다면 그런 3대혁명이 어디에 필요한가.모든 사람들을 제남탄전의 대들보로 참되게 키우기 위해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벌리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자기가 할바가 명백해졌다.선차적인것은 김철민동무의 마음속그늘을 가셔주는것이였다.
그는 펜을 들었다.김철민동무가 생활하던 단위의 당조직앞으로 편지를 보냈건만 소식이 없었다.그래서 또다시 편지를 썼다.세번째 편지를 보낸지 얼마 안있어 애타게 고대하던 소식이 왔을 때 그의 마음은 마치도 잃어버렸던 어린 자식을 찾은 부모의 심정이였다.
그의 걸음은 해당 단위에로 이어졌다.련합기업소당위원회를 찾는 걸음도 더 잦아졌다.당일군의 뜨거운 진정에 의하여 마음속고충을 깨끗이 털어버린 김철민동무는 사회와 가정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서게 되였고 집단의 사랑을 받는 혁신자로 자라나 3대혁명기수대오에 당당히 들어서게 되였다.
꾸준한 사상교양속에 성장한 인간은 불의의 정황에서도 자기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어느날 10갱의 중대장과 두명의 탄부들은 뜻밖의 붕락으로 갱안에 갇히게 되였다.
긴장한 구조작업은 낮에 밤을 이어 계속되였다.34시간만에 마침내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올만한 공간이 생겼다.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거기로 쏠리였다.그런데 뜻밖에도 먼저 보이는것은 막장장비와 소공구들이였다.
맨나중에 붕락구간을 빠져나온 중대장을 와락 그러안으며 초급당비서는 원망하다싶이 말하였다.
《사람두 참, 모두들 가슴에 재가 앉았는데 공구부터 내보내다니…》
중대장의 응대는 너무도 소박하였다.
《공구가 있어야 다음교대가 일하지 않습니까.》
무릇 죽을 고비에 든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법이다.생존의 가능성이 한줄기라도 보인다면 절대로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것이 인간의 본능일진대 어느 순간에 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갱안에서 자기의 생명보다 생산을 먼저 생각한다는것이 어찌 쉬운 일이랴.
중대장은 일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교대작업에 또다시 진입하였다.그때 그의 눈앞에 붉은 줄이 키돋움하는 경쟁도표보다 먼저 어려온것이 있었다.외국방문의 길을 이어가시는
비록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있어도 언제나 당중앙뜨락에 마음을 잇고 사는 사람들, 더 많은 석탄을 생산하여
누구나 긍지높이 바라보는 기발
탄광의 연혁소개실에는 이곳 로동계급이 기술혁명, 문화혁명수행에서 이룩한 성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수십개의 기발들과 표창장들이 전시되여있다.
자기의 땀이 어리고 자욱이 새겨질 때라야 세폭의 붉은기를 긍지높이 바라볼수 있는것이다.바로 그 행복한 권리를 지니기 위해 투쟁하는 나날에 제남로동계급의 모습은 또 한번 달라졌고 단위는 전진의 보폭을 더 크게 내짚었다.
3중3대혁명붉은기 공무직장은 제남탄광에 있어서 큰 자랑으로 되고있다.
오늘과 같이 어려운 속에서도 석탄생산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는 탄광의 성과는 50hp권양기며 압축기, 10t전차, 탄차를 비롯한 각종 설비들과 전동기수리 등에 필요한 부속품들을 마음먹은대로 생산해내는 이 위력한 자력갱생기지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두해전 직장에서 뽐프를 생산할 때의 일이다.
탄광에 사갱이 많다보니 뽐프에 대한 수요가 날로 높아졌다.뽐프문제해결의 절박성은 직장장 안광원동무로 하여금 대담한 결심을 내리게 하였다.
사실 크지 않은 공무직장에서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뽐프를 자체로 생산한다는것은 기술혁신이라기보다 하나의 혁명이라고 할수 있었다.
직장에서는 6명의 기술자, 기능공들로 기술혁신조를 무었다.그들은 전문공장에서 생산한 뽐프를 분해해보기도 하면서 진지하게 방도를 모색하였지만 뽐프제작은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세번째로 시험을 해보았으나 또 실패였다.기술혁신조 성원들이 밤깊도록 그 원인을 찾느라 고심하는데 선반공 박춘일동무가 다가와 자기 생각에는 날개의 각도를 조금만 더 크게 잡으면 될것같다고 하는것이였다.그러면서 이미 계산해둔 각도까지 알려주었다.
놀라와하는 기술혁신조 성원들에게 그는 말하였다.
뽐프제작이야 우리 탄광일인데 나라고 팔짱을 끼고 앉아있겠는가.그래서 며칠밤 궁리를 해보던 끝에 송풍기날개를 개조하던 때의 경험에 비추어 날개각도를 타산해보게 되였다.…
박춘일동무의 제안으로 하여 뽐프제작에서 돌파구가 열리였고 마침내 또 하나의 자력갱생의 창조물이 태여나게 되였다.
기술혁명의 선구자집단에서 꽃펴난 이 이야기는 많은것을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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