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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북신문,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갱도를 보여주라>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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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22 03:2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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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신문,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갱도를 보여주라> 강조
 
 
 

194910월말 병기공장에서 자체기술로 생산한 첫 기관단총을, 당시 김일성 장군이 김책, 최용건, 강건, 김일 등 항일혁명투사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22일 노동신문은 <전승의 축포성은 자위의 병기고에서 시작되였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신문은 <원쑤격멸의 뇌성이 메아리친 전선뒤에는 그렇듯 믿음직한 병기고가 있었다>며 <앞날의 혁명정세와 나라의 국방공업의 먼 장래를 내다보시고 먼저 병기공장부터 일떠세우신 우리 수령님은 참으로 위인중의 위인이시며 주체적 국방공업의 위대한 창시자이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견성과 속도에 있어 실로 세계전쟁사에 유례없는 병기공장이설이었다.>며 <우리의 승리를 믿지 못하는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갱도를 보여주라고, 우리가 그 어떤 대국의 위성국으로 무기를 얻어다 전쟁을 겪고있는가 하여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이 갱도에 들어서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라고 하신 우리 수령님의 그날의 말씀은 오늘도 지하갱도벽을 흔들며 메아리치는듯 하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싸워도 우리의 무기로 싸우고 전쟁에서 승리해도 우리의 무기로 승리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위의 신념이야말로 불멸할 시대정신-군자리정신을 낳은 원천이였으며 선군조선의 주체적국방공업건설의 억년 드놀지 않는 반석임을 군자땅은 전하고있다.>며 <우리 인민은 당이 제시한 새로운 병진로선을 높이 받들고 조선속도창조의 불길드높이 최후승리를 위해 더욱 힘차게 싸워나갈것이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전승의 축포성은 자위의 병기고에서 시작되였다

군자땅에 새겨진 절세위인의 불멸의 자욱을 더듬으며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어느날 현지지도의 먼길을 이어가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성천군의 한 고개마루에서 차를 멈추시였다. 혁명의 준엄한 폭풍우를 헤쳐오시면서 어느덧 머리에 흰서리를 얹으신 수령님께서는 추억깊으신 눈길로 마주보이는 산야를 더듬으시였다. 

 

멀리 백양산과 그 기슭을 에도는 옥류천, 고개아래로 뻗어간 굽이굽이 큰길이며 산협의 오솔길…

 

어버이수령님께 너무도 낯익은 산천이였다. 

 

하늬바람이 옷자락을 흔드는 고개마루에서 움직일줄 모르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일군이 감기에라도 드시면 어떻게 하시겠는가고 걱정의 말씀을 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래그래, 가기요 하시면서 절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여기가 백원고개요. 

나는 이 고개를 언제나 무심히 넘을수 없소. …》

 

그날 백원고개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감회에 젖어 바라보신 곳은 조국해방전쟁시기 나라의 병기고가 자리잡고있었던 군자땅이였다. 

 

주체56(1967)년 5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화의 나날 어버이수령님께서 백원고개를 넘으시여 병기생산투쟁을 벌리는 로동계급을 찾으시였던 군자리(당시)의 지하갱도들을 돌아보시고 군자리는 뜻깊은 곳입니다,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는 이곳에 혁명박물관을 꾸려 후대교양의 전당으로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화의 날에 창설하신 군자리의 지하병기공장!

 

바로 여기에서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공화국을 굳건히 지켜낸 무적의 병기가 벼려지였다. 세계를 뒤흔든 1950년대 전승의 축포성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전기간 언제나 국방공업을 중시하시고 자체의 위력한 국방공업을 건설하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습니다. 》

 

1953년 7월 27일 조선정전협정문에 항복도장을 찍은 미제는 저들이 당한 수치스러운 패배와 막대한 손실에 비명을 터치였다. 3년간의 조선전쟁에서 입은 인적, 물적손실에 대하여 미제는 《미군의 손실은 미국인이 다섯번의 대전쟁 즉 독립전쟁, 1812년전쟁, 메히꼬전쟁, 미국-에스빠냐전쟁 및 필리핀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다 합친것보다 2배이상 더 많다. 》고 개탄하였다. 

 

참으로 미제에게 있어서 조선전쟁은 무서운 악몽이였다. 특히 폭격으로 재더미가 된 공화국북반부땅에서 어떻게 되여 그처럼 병기가 마를줄 모르는 샘처럼 솟구쳐 제놈들의 병력은 말할것도 없고 그 많은 비행기며 함선, 땅크와 장갑차, 대포들을 모조리 묵사발냈는지 도대체 리해가 되지 않았다. 더우기 저들의 대군수독점체들과 방대한 무장장비를 믿고 전쟁의 마지막해에 최후의 힘을 다해 벌려놓은 그 운명적인 《신공세》를 완전히 풍지박산낸 인민군대의 드세찬 반격의 힘은 생각해볼수록 공포와 전률을 일으켰다. 

 

어떻게 되여 조선은 전쟁의 마지막날까지 그처럼 쉬임없이 불소나기를 쏟아낼수 있었는가?

 

아메리카제국의 전쟁상인들은 머리를 싸쥐였다. 그렇다 한들 그 힘의 원천을 다 알수 있었겠는가. 

 

우리 인민군대가 질풍같이 남으로 진격하던 나날들과 고지마다에서 인민군용사들이 승리의 만세소리 높이 울리던 시각들에 그리고 적들이 《제2차 세계대전시기 가장 강한 방어선으로 알려졌던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도이췰란드의 지그프리드선보다 조선전선에 구축된 155mile의 인민군대의 방어선은 훨씬 더 견고한것이다. 그 방어선은 아마 세계에 알려지고있는것중에서 가장 위력한 방어선일것이다. 》라고 아우성을 친 그 력사적인 진지방어전의 시기를 비롯하여 조국해방전쟁의 전기간에 걸쳐 전선의 포성과 더불어 후방에서 높이 울린것이 있었다. 군자리지하병기공장의 거세찬 기계동음이였다. 

 

원쑤격멸의 뢰성이 메아리친 전선뒤에는 그렇듯 믿음직한 병기고가 있었다. 

 

지금도 그날의 지하병기공장에는 총신과 포신을 깎던 선반들과 탄창을 찍어내던 프레스를 비롯한 각종 기계설비들이 남아있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여있는 이 병기공장에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이 눈이 달린 포탄을 날린다고 그처럼 무서워 벌벌 떤 82㎜박격포를 비롯한 곡사포들과 당시 인민군대의 주요화력무기였던 기관단총 그리고 탄알, 수류탄 등이 대량 생산되였다. 그처럼 군자리의 지하병기공장은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믿음직하게 떠받들었다.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강선을 찾으시기에 앞서 소문없이 걸으신 길이 있다. 그것은 평천리(당시)에로의 력사적인 길이다. 바로 그 길에서 새 조선의 첫 병기공장이 일떠섰고 당시 세계적으로 발전된 몇개 나라에서만 만들고있던 자동저격무기의 계렬생산으로 우리의 군수공업은 첫걸음부터 크게 내짚었다. 후날 우리 나라 공업의 큰 기둥이 된 기계제작공업의 새 력사도, 무진막강한 잠재력을 가진 오늘의 우리 국방공업도 평천리의 병기생산기지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아직은 당도 없고 국가도 정규무력도 없던 해방직후의 초행길에서 앞날의 혁명정세와 나라의 국방공업의 먼 장래를 내다보시고 먼저 병기공장부터 일떠세우신 우리 수령님은 참으로 위인중의 위인이시며 주체적국방공업의 위대한 창시자이시다. 

 

백두의 밀림속에서 줄칼과 망치로 양포며 다태갈같은 총들과 나무대포를 만들고 자체로 화약을 빚어 연길폭탄을 만들면서 자위의 시원을 열던 그때 얼마나 소원하였던 내 나라의 병기공장이였던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서 첫 동음을 터친것처럼 우리의 군수공업이 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가혹한 전시환경속에서 더 깊이 기둥을 박고 성장한 력사 또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세상에 알려진것처럼 미제가 조선전쟁을 준비하면서 1차적인 공중타격대상으로 정한것은 병기공장이였다. 그러나 전쟁초기부터 수많은 비행기를 동원하여 폭격에 광분하였지만 미제는 끝내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선견지명, 과단성있는 조치로 하여 놈들의 기도가 완전히 파탄되였던것이다. 

 

조국해방전쟁에서 병기의 지속적인 생산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의를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시작되자 수도에 있는 병기생산기지를 시급히 지방으로 옮기도록 하시였다. 

 

그때 평천리의 병기공장에서는 무기, 탄약생산전투가 힘차게 벌어지고있었다. 전선에서는 더 많은 무기와 탄약을 요구하고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기대를 멈추고 공장을 이설한다는것은 누구에게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앞날을 내다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미제가 인민군대에 대한 병기공급을 파탄시키기 위해 우리 나라의 병기공장을 첫째가는 폭격대상으로 삼고있다는것을 꿰뚫어보시였으며 미제국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자면 병기공장을 놈들의 폭격만행으로부터 튼튼히 보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공장을 비밀리에 성천군 군자리에 있는 지하갱으로 신속히 이설하도록 하시였다. 

 

군자리의 지하갱으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직후인 주체35(1946)년에 벌써 돌아보시고 파악하신 곳으로서 병기공장을 들여앉히기에 매우 안성맞춤한 곳이였다. 

 

즉시 공장이설전투가 벌어졌다. 

 

예견성과 속도에 있어 실로 세계전쟁사에 류례없는 병기공장이설이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공장이설방침이 얼마나 정당하고 공장이설이 얼마나 신속히 은밀하게 진행되였는가 하는것은 그후 미제가 평천리를 맹폭격한 사실과 적들이 공장이 다 옮겨가 텅 비여있는 곳을 폭격하고서도 《북한》에 하나밖에 없는 병기공장을 파괴하였다고 《축배》까지 드는 희극을 펼쳐놓은것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로 마련해주신 병기공장자리는 그야말로 명당자리였다. 군자리지하갱도는 말그대로 천연요새, 천연엄페호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신통한 곳에 병기공장을 옮겨주시였는가 하는것은 공장이 전쟁 전기간 적들의 그 어떤 폭격에도 끄떡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도 굳건히 건재해있은 사실이 잘 보여주고있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자리굴안에 있는 설비들을 그대로 놔두되 후퇴한 다음 적들이 공장위치를 알아내도 설비를 파낼수 없게 굴입구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수십m구간에 지뢰를 매설하고 굴입구는 폭파하여 완전히 메워버리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병기고를 노리고 군자리에 기여든 적들이 갖은 발악을 다 하였지만 끝끝내 굴입구에조차 발을 들여놓지 못하였으며 고스란히 보존된 공장은 다시금 병기생산의 동음을 울리게 되였다. 

 

우리의 병기공장을 제거함으로써 전쟁형세를 제놈들에게 유리하게 돌려세우려고 시도하다가 거듭 헛물을 켠 미제가 쓴입을 다시고있던 그때 군자리에서는 병기생산의 불길이 더욱더 세차게 타번지였다. 《멸적의 총포탄을 더 많이 전선에로!》라는 글발을 생산현장에 내걸고 증산돌격전을 벌리는 군자리로동계급의 가슴속에는 공장에 찾아오시였던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자애롭고 승리의 신심에 넘치신 모습이 소중히 간직되여있었다. 

 

대소한의 추위를 무릅쓰시고 몸소 공장에 찾아오시여 일시적후퇴의 어려운 시련을 이겨내고 무사히 돌아온 동무들을 공장에서 다시 만나니 대단히 기쁘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일시적후퇴시기 백원고개를 넘어가면서 공장로동계급을 생각하였으며 어디에 가서나 동무들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어버이수령님, 그후 거듭거듭 공장을 찾으시여 석수가 떨어지고 암반이 드리운 지하갱도의 작업장들을 일일이 돌아보시며 무기, 탄약을 더 질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와 사랑, 크나큰 믿음을 군자리로동계급이 어찌 순간인들 잊을수 있었겠는가. 

 

군자땅의 지하갱도에는 그 나날에 우리 수령님께서 최고사령관동지, 우리에게 포탄을 보내주십시오! 라고 웨치던 병사들의 목소리를 되새기시며 오르내리시였던 수직갱사다리길이 있다. 

 

습기로 하여 미끈거리는 란간, 아찔하고 어둑컴컴한 천정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놓인 좁디좁은 나무사다리,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사다리도 서슴없이 오르내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병기생산에 떨쳐나선 군자리로동계급을 격려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 고무된 군자리로동계급은 증산돌격전을 더 힘차게 벌리였다. 그들은 적들이 공장가까이로 쳐들어오고있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그 엄혹한 시기 결사대를 뭇고 손으로 선반의 피대를 돌리면서 700여정의 기관단총을 만들어 수도 평양을 방위하는데 기여하였던 그때처럼, 당과 함께 후퇴의 간고한 시련을 이겨내며 수많은 수류탄을 생산하여 인민군부대들의 반공격을 기운차게 떠밀어주었던 그 나날처럼 결사적인 전투를 벌려 기관단총과 박격포, 탄약과 수류탄을 비롯한 병기생산을 비약적으로 늘이였다. 

 

그들은 작업장의 시계바늘을 다시 꺼꾸로 돌려놓으며 24시간 교대없이 일하였고 밀려드는 잠을 이겨내기 위해 눈에 나무꼬챙이를 뻗쳐놓고 선반을 돌리였다. 밥먹는 시간도 아까와 한쪽호주머니엔 통강냉이알을, 다른 호주머니엔 소금을 넣고 씹으며 포신을 깎고 수류탄을 조립하였다. 기대를 잠시도 뜨지 않으려고 물마저 마시지 않았다. 5분이 멀다하게 진행하는 시험사격에 고막이 터졌어도 총을 놓지 않았고 좁은 갱도안에 꽉 찬 화약가스로 하여 사격수가 앞을 가려보지 못하게 되자 신발을 벗어 불뭉치를 만들어들고 목표판옆에 서서 《나를 향해 쏘라!》고 웨치였다. 원쑤의 흉탄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였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 적들은 동무들이 만든 이 기관단총을 보기만 해도 겁이 나서 손을 들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을 외우고 또 외우며 운전대를 놓지 않고 자재를 실은 차를 끝끝내 갱도앞에 대고서야 숨을 거둔 운수일군도 있었다. 희생된 동지의 몸에 박혔던 파편을 앞에 놓고 《피는 피로써 갚자!》고 부르짖으며 총신을 깎은 선반공도 있었다. 혼자서 기대를 석대, 넉대 지어 여섯대까지 맡아돌리고 《탄알 한알은 적 한놈!》이라고 웨치며 한교대에 600곽이 넘는 탄알을 입곽한 녀성로동자도 있었다. 다름아닌 군자리의 병기고에서 그처럼 나라의 다기대공들이 태여났고 세계군수공업력사상 있어본적 없던 탄약입곽기록도 창조되였다. 

 

견결한 수령결사옹위정신, 열렬한 애국정신, 높은 계급적각오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불굴의 희생정신과 혁명적락관주의로 충만된 군자리정신이 만장약된 멸적의 병기들은 판가리결전장마다에서 침략자들의 숨통을 무자비하게 끊어버리였고 적진지들을 아비규환의 불바다로 만들었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해 후대들이 영원히 간직하고 살아야 할 고귀한 투쟁정신이 창조된 군자땅, 

 

우리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만 무기를 만드는것이 아니다,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나라의 국방력을 힘차게 건설해나가야 한다, 이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자기의 무기를 억세게 벼려나갈것이다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의지에 받들려 나라의 첫 공장대학이 창설되고 자주국방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인재들이 자라난 력사의 고장, 

 

우리의 승리를 믿지 못하는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갱도를 보여주라고, 우리가 그 어떤 대국의 위성국으로 무기를 얻어다 전쟁을 겪고있는가 하여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이 갱도에 들어서면 정신이 번쩍 들것이라고 하신 우리 수령님의 그날의 말씀은 오늘도 지하갱도벽을 흔들며 메아리치는듯 하다. 

 

싸워도 우리의 무기로 싸우고 전쟁에서 승리해도 우리의 무기로 승리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위의 신념이야말로 불멸할 시대정신-군자리정신을 낳은 원천이였으며 선군조선의 주체적국방공업건설의 억년 드놀지 않는 반석임을 군자땅은 전하고있다. 

 

이 고개를 지날 때면 군수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전쟁시기 고생스럽단 말 한마디 없이 기관단총과 박격포를 만들어내느라 고생하던 우리 로동계급이 생각나오, 그들의 불굴의 기상이 나의 가슴에 승리의 신심을 더욱 두터이 해주었던것이요라고 하시면서 백원고개에서 군자땅을 바라보신 그날 우리 수령님께서는 얼마나 가슴치는 말씀을 력사에 남기시였던가. 

 

나는 전승의 축포를 볼 때 그 꽃보라 한송이한송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뜨겁게 회고하시였듯이 전승의 축포가 터져오른 열병광장뒤에는 허리띠를 조이며 일떠세우고 포화속에서 굳건히 다진 자위의 병기고가 있었고 만난시련을 헤치며 조국방위에 땀과 피를 아낌없이 바친 군수로동계급이 있었다. 

 

그렇다. 우리의 백전백승뒤에는 위력한 자위의 병기고가 있다. 

 

지난날 구식보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자기를 지킬 힘이 없어 력사적으로 렬강들의 각축전장이 되였으며 온 강토와 민족이 왜적의 란도질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나라가 오늘은 자위의 성새로 우뚝 솟아오른 자랑스러운 현실을 보면서 천만군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국방공업건설업적을 길이 빛내여갈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고있다. 전화의 나날에 창조된 군자리정신은 년대와 년대를 이어 온 나라에 타번지고있으며 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일터마다에서는 전시군수로동계급의 투쟁기풍을 따라배워 새로운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기 위한 대고조열풍이 거세차게 몰아치고있다. 

 

1950년대 전승의 축포성이 군자리지하병기공장에서 시작되였듯이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위대한 승리도,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도 강력한 자위의 병기고에서 시작된다는 력사의 철리를 심장에 새긴 우리 인민은 당이 제시한 새로운 병진로선을 높이 받들고 조선속도창조의 불길드높이 최후승리를 위해 더욱 힘차게 싸워나갈것이다.  

 

 

(노동신문, 2014.5.22)

 

이수진기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5-22 03:24:27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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