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영원히 이어갈 혁명의 천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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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3-16 14:06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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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이어갈 혁명의 천리길
주체12(1923)년 3월 16일!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으로 마음끓이시며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신 때로부터 어느덧 한세기가 되였다.
허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는 12살의 어리신 나이에 큰뜻을 품으시고 천리길을 걸으시던 위대한주석님의거룩하신 영상과그이께서헤쳐가신 자욱자욱이 소중히 새겨져있다.
위대한 령도자김정일장군님께서는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과 같이 어리신 나이에 애국의 큰뜻을 품으시고 투쟁의 길에 나선 혁명의 지도자는력사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소학교졸업을 앞둔 주체12(1923)년 초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주석님의아버님이시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탁월한지도자이신김형직선생님께서는어리신 주석님에게이제부터는 조선에 나가서 공부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 네가 조선에 나가서 우리 나라가 왜 망했는가 하는것만 똑똑히 알아도 그것은 큰 소득이다, 고향에 나가서 우리 인민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있는가 하는걸 체험해보아라, 그러면 네가 할바를 잘 알게 될것이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주석님께서는그해 3월 16일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그 길은 12살의 어리신 위대한주석님께있어서 너무도 멀고 간고한 로정이였다.
가야 할 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험산준령이였고 북방의 수림들에서는 대낮에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렸다.
하루종일 넘고넘어도 끝이 없어 한다하는 장정들도 오르기를 주저하는 오가산의 험준한 고개와 깊은 골짜기들, 그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힘겨운 길이였다.
그러나 그 어떤 험산준령과 세찬 눈보라도 결코 위대한주석님의발걸음을 멈추거나 더디게 하지 못하였다.
조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아버님의 간곡한 당부가 주석님의발걸음을 순간도 지체할수 없게 하였던것이다.
한시바삐 안기고싶은 조국땅이였고 가슴속에 새겨두고싶으신 산천이였건만 위대한주석님을맞아준 조국의 현실은 너무나도 비참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신음하는 겨레의 모습과 살길 찾아 떠나는 류랑민들의 끊임없는 행렬, 인민들의 원한에 찬 목소리를 들으시는 위대한 주석님의마음은 참으로 쓰리고 아프시였다.
위대한 주석님의마음속에서는 조국강산을 비참한 인간생지옥으로 만든 날강도 일제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이 세차게 끓어올랐다.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실수록 나라를 구원하자면 신음하는 조국을 보고 체험하여야 하며 조국땅이상 더 좋은 학교는 없다고 하신 김형직선생님의뜻이 더더욱 심장깊이 새겨지시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발걸음을 재촉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팔도구를 떠나신 때로부터 열나흘째 되는 날의 해질무렵 마침내 오매에도 그리시던 고향 만경대에 도착하시였다.
그때 할머님이신 리보익녀사께서는너무도 어리신 나이에 멀고 험한 천리길을 걸어오신 위대한주석님을버선발로 뛰여나와 맞이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그후 두해동안 조국에서 창덕학교에 다니시면서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하시였다.
정녕 위대한주석님께서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주석님으로하여금 식민지조선의 현실을 페부로 체험하게 하시고 혁명투쟁의 길로 떠밀어준 중요한 계기로 되였으며 그이께서헤치신 그날의 천리길이 있어 성스러운 조선혁명의 력사가 승리와 영광으로 아로새겨질수 있었다.
하기에 위대한주석님께서는그때를 회고하시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천리길이 조국을 알게 하고 우리 인민을 알게 해준 하나의 큰 학교였다.》
100년전 위대한주석님께서헤쳐가신 배움의 천리길은 오늘도 대를 이어 계승되고있다.
우리 인민모두가 절대불변의 신념으로 꿋꿋이 이어가는 혁명의 길.
그 길과 더불어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령도따라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조국의 앞길에 사회주의강국의 휘황한 래일이 찬란히 밝아오고있다.
[출처: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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