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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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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27 18: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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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7

 

한편 치료실에 혼자 남은 처녀의사 리수영은 분해서 견딜수 없었다. 모욕당한 자존심이 독을 쓰는지 머리가 뗑하고 귀속이 웅웅거렸다.

 

(내가 직업을 잘못 택했다고? 이제라도 의사를 그만두라고?… 어쩌면…)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청년의 말을 되새겨볼수록 자기가 잘못했다는것을 인정하게 되는것이였다. 환자가 있다는데도 집이 멀다고 직일의사를 핑게대고 가지 않았으니 의사의 자격이 없다고 한 그 사람의 말이 옳은셈이다. 더 큰 잘못은 방금전까지 자기가 분해서 울었다는것이다. 뭘 잘했다고 울었는가?

 

(내가 진실앞에서 폭로되는걸 두려워하고 그걸 변명하려고 행악질까지 하는 그런 천박한 녀자였는가?)

 

생각해볼수록 그 청년을 미련쟁이라느니, 무례하다느니 하고 욕할만 한 자격이 자기에게는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수영에게는 그 청년이 미웠다. 그가 운상을 미워하는것은 자기를 모욕했기때문이 아니라 그 청년이 자기의 약점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사람은 자기의 약점이 상대방에게 폭로되였을 때 그를 두려워하고 마주서는것을 꺼려하며 어쩔수없이 미워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것이다. 수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다 자기를 인물곱고 마음씨고운 처녀로 알고있는데 유독 그 사람만이 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 감추어져있던 미완성측면을 알아보았던것이다.

 

텅 빈 방안에 앉아 제 생각에 잠겨있던 수영은 벌떡 일어섰다. 왕진가방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것들을 더 집어넣었다. 이제라도 토성랑에 가보지 않고는 마음이 편할것 같지 못했던것이다.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도 수영은 왕진을 가야 했다. 사실은 오늘 저녁에 신창리 영남이네 집에 갈 계획이였다. 지난 겨울에 일곱살나는 영남이가 급성페염으로 입원했는데 수영이가 맡아 치료해주었다. 그때부터 그 집에서는 수영이를 은인처럼 여기고있었다. 오늘이 영남이 생일이라면서 그 애 어머니가 우정 찾아와 저녁에 꼭 들리라고 신신당부했던것이다. 작년 11월에 서울에서 들어와 외삼촌집에 얹혀사는 수영에게는 여기 평양이 생소하였고 따라서 자기의 외로움을 덜어줄수 있는 그런 생활이 몹시도 소중하였던것이다.

 

수영은 아쉬운 마음으로 신창리를 지나 신양리에서 경의본선철길을 따라가다가 서성교근방에서 큰길에 떨어졌다. 해는 이미 지평선을 넘어가고있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아래토성랑이 어디인가고 물으니 수영의 왕진가방을 알아보고는 서성리변전소를 지나 얼마쯤 가다가 오른쪽소로길로 꺾어들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토성랑주변에 이르니 퀴퀴한 냄새에 절로 얼굴이 찡그려지고 숨쉬기가 괴로와졌다. 수영은 토성랑에 한번도 와보지 못했었다. 그저 먼발치에서 지나가며 평양에도 서울의 한강변처럼 빈민촌이 있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뿐이였다.

 

한참 더 가서야 오성재가 말하던 큼직한 오물적치장이 나타났다. 시내의 오물을 가져다버리는 이런 불결한 곳에서 사람이 산다는게 놀라왔다.

 

꾀죄죄한 람루를 걸친 서너명의 아이들이 쓰레기를 뒤지다가 멋쟁이아지미를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얘들아, 좀 물어보자. 오성재아저씨네 집을 아니?》

 

막대기로 쓰레기를 뒤지던 애들중에서 한 아이가 나섰다.

 

《내가 알아요.》

 

《어느 집이냐?》

 

《나하구 가자요.》

 

그 애가 앞장서느라고 자기옆을 지날 때 수영은 물씬 풍겨오는 악취에 그만 숨이 꺽 막히는듯 했다.

 

《이 집이예요.》

 

아이는 거적을 드리운 움막을 가리켜보이고 오던 길로 돌아섰다.

 

수영은 주인을 찾았다.

 

《계십니까?》

 

거적문이 들춰지며 오성재가 반색을 했다.

 

《아니? 의사선생님이?…》

 

《환자를 보러 왔어요.》

 

《정말 고맙수다. 좌우간 들어오시우.》

 

수영은 움막안으로 들어갔다. 거적문을 닫는 순간 가물거리던 등잔불이 바람에 탁 꺼졌다. 움막안은 굴속처럼 캄캄해졌다.

 

《원, 이런…》

 

잠시후 성냥불에 움막안이 확 밝아지는가싶더니 다시 어두워지면서 좁쌀알같은 불씨가 등잔심지에 달라붙었다.

 

《여기루 오시우.》

 

수영은 어둠에 익숙치 않아서 오성재의 안내를 받아가며 신을 벗고 방안에 들어갔다. 방안이라야 부엌바닥보다 한뽐정도 높이고 판자를 깐 다음 그우에 가마니짝을 펴놓은 맨땅이였다. 구들도 놓지 않은데서 어떻게 겨울을 날수 있는지 수영이로서는 리해되지 않았다. 수영은 청진기를 꺼내들고 환자를 진찰했다.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높았다.

 

《뭘 잡수셨어요.》

 

환자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요. 목이 마르길래 랭수를 그냥 먹었더니… 아이쿠.》

 

오성재가 한숨을 쉬며 보태였다.

 

《여기 물은 끓여먹어야 하는건데 아마 그때문에…》

 

 

 

《여긴 수도가 없는가요?》

 

수영은 아차-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토성랑에 무슨 수도가 있겠는가. 모든걸 미루어보아 급성소대장염같았다.

 

《병원에 입원해서 며칠 치료를 받아야겠어요.》

 

그런데 오성재가 도리질을 했다.

 

《그럴 형편이 못되우다. 사실은 오늘 래일 여기서 뜨자던 참이였수다.》

 

《어데로 이사를 갑니까?》

 

《딱히 정한데는 없고 그저 아무데로든 떠나야 할 사정이 생겨서… 난 여기서 살수 없는 놈이웨다.》

 

《왜요?》

 

《죄를 졌지요.》

 

오성재는 더 말하고싶지 않은지 고개를 돌렸다. 날이 갈수록 오성재는 자기가 정말 사람으로서 못할짓을 했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고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농촌위원회에 찾아가니 증서는 이미 나라에 바쳤다는것이였다. 자기는 영영 땅을 잃은것이였다. 땅이 없이야 여기서 어떻게 살랴. 평생 배운 재간이 농사짓는것밖에 없으니 이제는 아무데 가서 초막이라도 지어놓고 화전을 일쿠든가 아니면 막로동판을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운명이나 성격은 제가 나서자란 산천을 닮는다더니 어쩌면 자기 팔자는 신통히도 돼지밸처럼 우불구불한 보통강을 닮아서 이다지도 모질게 갈지자를 그리는것이냐…

 

오성재의 사정을 알리 없는 수영에게는 그의 말이 리해되지 않았다. 이런데서조차 살수 없을 정도로 죄를 지었다는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가? 이 집에서 이사를 가는건 상관할바 아니지만 그럼 환자는 어떻게 하는가?

 

한동안 속생각을 굴리던 처녀는 주사도 놓고 약도 주고나서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하여튼 제가 다시 오겠어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수영은 한가지 방도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외삼촌의 방조를 받는것이였다.

 

그가 중성리에 사는 외삼촌네 집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는 밤이 퍽 깊어서였다.

 

《에그, 왜 이제야 오니? 처녀가 밤중에 다니다 어쩔려구.》

 

외삼촌어머니가 걱정스레 하는 말이였다.

 

《왕진갔댔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네가 온 다음에 먹자구 기다리구있단다.》

 

친자식이 없는 외삼촌내외는 수영을 친딸처럼 여기고있었다.

 

《어쩌나… 나 목욕부터 해야겠는데…》

 

《밥부터 먹어라, 그새 목욕물을 덥힐테니.》

 

《아니예요. 찬물도 일없어요.》

 

수영은 외삼촌어머니의 의아해하는 눈길을 등뒤에 느끼며 얼른 제 방으로 들어갔다. 토성랑냄새가 옷에 슴배인것 같아 의농을 열고 속옷까지 몽땅 갈아입었다.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한아름 안고 세면장에 들어가 으쓸한 랭기를 참고 찬물을 쫙쫙 끼얹었다. 《진달래》표비누로 머리를 감고 피부가 빨개지도록 온몸을 박박 밀었다.

 

수영은 빨래까지 다 하고서야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세면장에서 나왔다.

 

향긋한 비누냄새를 풍기며 안방에 들어가니 외삼촌 정근식은 미닫이를 열어놓은 웃방에 앉아 병풍을 감상하고있었다.

 

《어마나? 웬 병풍이예요?》

 

《네 보기엔 어떻냐? 오늘 구해온거다.》

 

골동품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는 외삼촌은 흡족한 표정으로 수영의 평가를 기다렸다. 높이가 다섯자쯤 돼보이는 십장생도를 수놓은 병풍은 수영이 보기에도 품위가 있어보였다.

 

《외삼촌방에 잘 어울려요.》

 

외삼촌은 그 수병풍이 남쪽으로 흘러나가려는것을 부르는대로 값을 주고 겨우 손에 넣었다고 설명을 달았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 최초의 색실염색법과 병풍에 쓰인 비단의 질에 대하여, 해와 산과 거부기를 비롯해서 십장생에 들어가는 그림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수영에게는 외삼촌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토성랑의 비참한 전경이 자주 얼른거렸다. 쓰레기를 뒤지던 소년의 몸에서 풍기던 악취가 아직도 떠도는듯싶었다.

 

수영은 저도모르게 방안을 둘러보며 오성재의 움막과 대비해보았다. 창문턱에 놓여있는 큼직한 어항에서는 금붕어들이 한가로이 떠다니고 벽에는 단원의 족자가 듬직하게 걸려있었다.

 

이 방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것은 책상우에 올라있는 지구의였다. 크기가 축구공만 한 지구의는 온통 새까맣게 먹칠을 해놓았었다. 이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석탄덩이같은 지구의를 보며 사연을 알고싶어했지만 그 리유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서성고무공장을 경영하는 외삼촌은 원래부터 내성적인 선비형인데 42년도 물란리때 공장이 피해를 입은 후로는 사람들과의 교제도 싫어하면서 될수록 바깥세계와 담을 쌓고살았다. 세상살이에 시들해져서인지 공장을 원상복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하루 수백컬레의 지하족을 생산하던 공장이 지금은 겨우 수십컬레밖에 만들지 못하고있는데 그런데도 외삼촌은 전무에게 공장을 맡겨놓고 자기는 며칠에 한번씩 얼굴을 내미는 정도였다.

 

외삼촌의 병풍강의는 국이 식는다고 삼촌어머니가 두번씩이나 지청구를 해서야 겨우 끝났다. 수영이도 생각에서 깨여나 아래방으로 내려왔다.

 

외삼촌은 자개박이밥상에 따로 상을 차려주고 수영은 외삼촌어머니와 함께 륙모소반에 마주앉았다. 그런데 토성랑생각이 자꾸 나서 밥을 제대로 먹을수 없었다.

 

그는 외삼촌이 밥상을 물릴 때까지 숟가락을 들고있다가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꺼냈다.

 

《외삼촌, 나 청이 하나 있어요.》

 

《뭐냐?》

 

《사랑채가 비였지요? 당분간 좀 쓰면 안될가요?》

 

수영은 외삼촌내외에게 루루이 설명했다. 토싱랑에 왕진갔던 일이며 그 집의 딱한 사정이며…

 

《제가 맡은 환자인데 외면할수가 없어서 그래요.》

 

정근식의 내외는 조카딸의 착한 마음씨앞에서 다른 소리를 할수 없었다.

 

《마음씨는 꼭 제 에미를 닮았구나. 네 좋도록 해라. 그러나 내 한마디만 하자. 옛날부터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다. 그런 동정으로 제 마음은 위안할수 있겠지만 세상을 구제할수는 없는거다. 지금껏 살아봤으니 잘 알겠지만 세상만사를 착하고 뜨겁게만 대했댔자 손해밖에 볼게 없어.》

 

제 방으로 건너온 수영은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외삼촌의 말을 음미해보았다. 지난날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보면 뜨거워지지 말라는 외삼촌의 말도 틀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 말을 따른다면 자기는 토성랑주민을 외면해야 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수영은 어려서부터 착한 성정을 지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해왔었다. 녀학교시절에 읽은 안데르쎈의 동화들은 의식주에 대한 걱정을 모르고 곱게 자란 수영에게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련민을 꽉 채워주었었다.

 

그런데 그가 살던 남쪽에서의 생활은 동화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어느해던가. 서울대학병원에 다닐 때 한번은 치료비를 물지 못하는 환자에게 자기의 월급을 보태준적이 있었다. 그때 원장은 차거운 시선으로 수영을 쏘아보며 쓰겁게 뇌까렸다.

 

《선생은 자선단체에서 일할걸 그랬소.》

 

《저는…》

 

《선생의 그 알량한 인도주의는 나를 모욕했고 또한 동료의사들을 모욕했고 적자생존을 주장한 다윈까지 모욕했단 말이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자고 의학을 배웠건만 현실은 그의 천진한 공상을 비웃으면서 돈많으면 살만 하고 돈없으면 지옥보다 못한것이 인간세상이라는것을 날마다 증명해주군 하였다.

 

수영은 세상의 랭정한 존재방식에 순응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사의한 생활의 순리라고 인정하였다. 그런데 오늘 그는 한 청년에게서 심장이 뜨겁지 못하다고 모욕을 당했다. 서울에서는 불쌍한 사람을 동정했다고 원장에게 모욕을 당했는데… 도대체 이 판이한 대조를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과연 여기 북조선은 어떤 세상인가? 여기가 동화속의 하늘나라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아직은 뭐가 뭔지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토성랑주민은 돌봐주어야 할것 같았다. 그래야 그 청년앞에 인간으로서, 의사로서 떳떳해질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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