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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장편소설《새 나라》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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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5-21 19:2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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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편집국은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58

 

 

구진배는 경상골 로이문네 집에서 떠날 차비를 끝내고 술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이것이 이승과의 리별주로 될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어제 그는 버취의 비밀지령을 받았다. 버취는 지령에서 보통강개수공사를 무조건 파탄시켜야 한다는것,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돌아올수 없다는것을 명백히 밝혔다. 그러니 제방을 폭파시키지 못하면 제집으로 돌아갈수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자기로서는 이를 사려물고 공사를 파탄시키려 해보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은 닭알로 바위치기였다.

그런데도 자기는 닭알로 바위를 까부시지 못했다고 해서 죽어야 하는것이다. 버취중위가 그렇게 명령했으면 그것은 곧 법이였다. 버취의 지령이 아니라도 구진배는 이제 와서 빈손 털고나앉을수 없었다. 그는 이미 폭약도 준비해놓았고 예비방안도 세워놓았었다.

결사의 각오를 품고 스스로 이 길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구진배는 자기가 지금 미국상전들의 채찍에 쫓기워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고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만약 죽음이 기다리는 그 벼랑끝에도 관세음의 손길이 뻗쳐있다면 자기를 구원해줄것이라는 허황한 기대라도 가져보는수밖에…

공산주의자들과의 혈전에서 화랑도의 용맹을 떨쳐보리라던 장한 기상은 어디로 가고 왜 이렇게 비참한 처지에 몰리우게 됐단 말인가. 구진배는 또 한번 술잔을 기울이고 생각에 빠졌다. 돌이켜보면 자기는 오늘까지 강한자에게 운명의 고삐를 맡기고 노예로 살아왔었다. 그러니 비참해질수밖에 없지 않는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보았던 고대그리스법인 《고르툰시법전》의 구절이 생각났다.

《노예는 산 재산이다.… 노예와 집짐승의 용도에는 차이가 없다. 어떤자는 날 때부터 자유인으로 되며 어떤자는 노예로 된다고 하면 노예로 되는것이 도리에 맞는다는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미군이 주인노릇을 하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기가 부담스러워 스스로 노예가 되였은즉 이제와서 누구를 탓하랴. 일단 내짚은 걸음이니 이제는 피를 물고라도 공산정권과 싸워야 했다.

구진배는 오늘 밤 남교제방을 폭파하고 로이문과 함께 남으로 나갈 계획이였다. 운명적인 이밤에 발목을 잡는것이 있다면 제곁에 앉아 술을 쳐주는 로이문의 처였다. 자기들의 행동계획을 알고있는 녀자를 그냥 놔두고 떠날수도 없었고 도적고양이처럼 행동해야 할 남행길에 데리고가는것도 거치장스러웠다.

방법은 단 한가지 죽여야 했다.

두달가까이 자기를 숨겨주고 여러가지로 헌신한 녀자를 죽여버린다는것이 안되긴 했지만 세상에 억울한 일이 한둘이라더냐? 나만 봐도 제방을 폭파시키지 못하면 죽어야 할 처지인데 이런 원통한 일을 왜 나만 겪어야 한다더냐.… 로이문은 구진배의 뜻을 거역할수 없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렇게 된바에는 남아답게 처신할수밖에 없었다.

구진배는 독약을 마신 그 녀자의 몸부림을 보고싶지 않아 로이문을 데리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뒤따라나오는 다른 놈에게 그는 나지막하게 명령했다.

《방안에 석유를 치고 불을 달게.》

그들이 경상골을 빠져나와 만수대중턱쯤에서 뒤돌아보니 로이문네 집근방에는 화광이 충천하고있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있었다. 비옷을 뒤집어쓴 두 악마들은 서성교를 넘어 공사장으로 향했다. 구진배의 계획은 제법 치밀했다. 이미 서재골 무당집 아들은 다른 한패를 데리고 보통강상류로 떠났다. 강물이 불어난것을 리용해서 강변에 무져놓았던 통나무를 떠내려보내면 그것들이 새로 쌓은 남교제방을 직각으로 들이치게 된다.

하늘이 도와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방을 무너뜨릴수 있었다. 어쨌든 제방이 위험해지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쏠려서 통나무를 밀어내느라 소동을 벌릴것이고 자기는 그 기회에 수문기계실을 폭파한다. 수문이 폭파되면 남교제방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게 된다. 구진배는 제손으로 제방을 파괴하는것이 고향에 대한 모독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는 목숨을 내건 마지막도박판에서 제발 살아남게 해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공사장에는 예상치 않았던 정황이 발생하였다.

형제산강상류에서 떠내려오는 통나무들이 남교제방을 위협하고있었다. 통나무들은 미처 빠지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면서 제방을 건드리는데 그것들이 자꾸 불어나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수 없었다.

《홰불을 더 밝히라!》

제방에 나와있던 장혁수는 누구에게라없이 소리치고는 제먼저 강물에 뛰여들었다. 처음에 잡히는 통나무를 새 통수로쪽으로 힘껏 떠밀었다. 그리고는 또 다음통나무로 헤염쳐갔다. 어제날에는 떠내려가는 가산을 건져보겠다고, 물살에 휘말려간 안해와 자식을 찾아보겠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던 장혁수, 그가 지금은 내 나라를 위하여, 제손으로 쌓은 제방을 구원하기 위하여 횡포한 자연의 광란에 몸을 내댄것이다. 정녕 이 제방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자기의것이였던것이다.

사품치는 강물이여! 맞서보자! 나 이젠 네가 무섭지 않다! 나 이젠 너보다 더 강하다! 나는 너를 이길수 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새 나라가 나를 장수로 키워주었다. 나 이젠 더이상 너의 광란을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그때까지 흙가마니를 더 쌓아올리며 제방을 보강하던 임성민네 돌격대원들도 서슴없이 강물속에 뛰여들었다. 그날 밤은 오성재도 명덕이도 모두 제방이 걱정스러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있었다.

오성재는 새로 만들어두었던 홰불망치를 기름초롱에 담그려고 수문기계실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구진배와 정면으로 맞다들었다.

《반동이다! 반동놈이다!》

그때 임성민은 제방에 흙가마니를 날라다놓고 물속에 뛰여들려던 참이였다. 오성재의 고함소리를 들은 그는 손에 잡히는대로 삽자루를 거머쥐고 수문기계실로 달려갔다.

그앞에서는 홰불망치를 든 명덕이가 성난 사자처럼 내달리고있었다. 수문기계실앞에 다달은 명덕은 오성재를 깔고앉은 로이문을 알아보았다.

《요 생쥐새끼야!》

로이문은 명덕의 발길에 채워 저만큼 나가떨어졌다. 분노에 눈이 뒤집힌 명덕은 로이문을 타고앉아 사정없이 짓조겨댔다.

《이 반동새끼야! 죽어라, 죽어!》

그사이 구진배는 기계실에 폭약을 장치하고 불을 달았다. 문밖으로 나오던 그는 칼을 뽑아들고 명덕에게 달려들었다. 도화선에 불을 달았으니 공연히 총소리를 내지 말고 여기서 빨리 달아나야 했다.

구진배가 칼을 높이 드는 순간 《명덕아!》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임성민이 구진배에게 육박했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던 구진배는 임성민의 삽날을 겨우 피했다. 구진배와 임성민이 맞붙어 돌아갈 때 명덕은 씩- 하고 도화선이 타는 소리를 들었다.

귀로 들었는지 아니면 심지가 타는 냄새를 맡았는지 어쨌든 발파공의 직감으로 명덕은 기계실에 눈길을 돌렸다.

《폭약?!…》

명덕은 황황히 기계실로 뛰여들었다. 어둠속에서 타들어가는 도화선을 발견한 그는 주저없이 그것을 와락 잡아당겼다. 그런데 놈들이 어떻게 해놓았는지 심지가 잘 빠지지 않았다. 명덕은 더 생각할새없이 폭약꾸레미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방으로 달려가며 그 저주로운것을 사품치는 강물에 집어던졌다. 순간 요란한 폭음이 울리며 물기둥이 솟구쳐올랐다.

구진배는 일이 틀어졌다는것을 알았다. 정녕 이렇게 끝장이란 말인가.… 이제는 목숨이라도 건져야 했다. 지금은 목숨이외의 그 어떤 고귀한것도 있어보이지 않았다. 그러자면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구진배는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임성민을 떠밀쳐버리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그는 뒤통수에 강한 타격을 받으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는 어둠속에서 몸의 중심을 잃고 수문쪽으로 몇걸음 비칠거렸다. 발밑에는 아찔한 허공이였지만 구진배는 알수 없었다. 한발을 잘못 짚는 순간에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지옥으로 날아떨어지는 육체에서 혼이 빠져나간듯 구진배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수문아래로 떨어진 구진배는 강물에 거품처럼 떠내려갔다. 수문기계실앞에는 몽둥이를 틀어쥔 오성재가 아직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제방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강물에서 통나무를 밀어내느라 이쪽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직 위험이 가셔지지 않았던것이다.

임성민은 구진배의 칼에 맞아 팔에서 피가 흘렀지만 제방으로 급히 달려갔다. 상처를 돌볼새가 없었다. 무작정 강물에 뛰여든 그는 제멋대로 흥떡이는 통나무들을 아래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인데다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이여서 통나무 한대를 밀어내기가 조련치 않았다. 한대 또 한대… 제방을 구원해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 생각에 몰두했던 그는 기운이 진해서야 자기가 팔에 상처를 입었다는것을 상기했다. 아까는 너무 위급한 정황이여서 상처에 신경쓰지 못했는데 물속에 들어와있으면서 피를 많이 흘린 모양이였다.

그는 자기에게 제방까지 헤염쳐나갈 힘도 남지 않았다는것을 알았다. 누구든 소리쳐불러서 구원을 청할수 있었지만 자기 하나때문에 소동을 피울수 없었다. 지금은 자기 목숨보다 제방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가까이에 통나무라도 있으면 붙잡으련만 서너메터앞에 떠있는 통나무까지 헤염쳐갈 자신도 없었다.

(이렇게 죽는단 말인가?)

그는 살고싶었다. 정말이지 그는 죽고싶지 않았다.

해방덕분에, 김일성장군님덕분에 사람다운 삶을 시작했는데, 푸른 들판과 같은 미래가 있고 리정표가 뚜렷한 행복의 대통로가 곧바로 뻗어있는데 죽는다는게 웬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죽는게 아쉽기는 해도 후회되지는 않았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빙그르르 돌던 통나무가 그의 어깨를 떠박질렀다. 임성민이 마지막으로 그려본것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있는 안해와 자식들의 모습이였다.

(순일아, 순옥아,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여보!…)

임성민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제방에 홰불을 밝히긴 했지만 거리가 멀고 통나무와 사람들이 물속에 한데 뒤엉켜있어서 임성민이 없어진것을 누구도 몰랐다.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7-05-21 19:24:01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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