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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새 나라》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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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2-20 20:3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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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편집국은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45

 

 

해방산을 넘어선 정근식은 서성교를 지나 봉수산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지금 보통강개수공사장으로 가는 길이였다.

하얀 모시로 지은 바지저고리차림에 슬슬 부채질을 하며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걷는것을 보면 한가로운 유람객의 자세였다. 오늘은 그의 생일날이다. 로친네는 공사장에 가서 수영이를 데려오라고 아침부터 성화를 먹였다.

《령감은 걱정되지두 않수? 그 애가 공사장에 나가사는지도 보름이 넘었는데 오늘같은 날에야 집에 데려와야 할게 아니요? 그 애가 있을 땐 그래도 사람사는 집같더니 요샌 꼭 무덤속같은게 질거죽겠수다.》

《그 애가 제 외삼촌생일을 잊지 않았다면 제발로 나타나겠는데 뭘 찾아다닌다는거요? 그리구 지금같은 때에 생일놀이는 또 뭐구?…》

《지금이 어드래서요? 해방이 돼서 처음 맞는 생일인데 있는껏 차려봅시다레.》

종당에 정근식은 마누라한테 질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자기도 이미전부터 공사장에 한번 가보고싶었다. 그러니 수영이를 만나러 간다는건 자기의 내심을 감추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철저한 현실도피란 있을수 없는 모양이다. 아프리카의 쟝글이나 남아메리카의 빤따날 같은데 깊숙이 숨기 전에는 절대적인 현실도피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결국 철저한 현실부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에 대한 허무도 절대적일수 없다는것을 말해준다.

정근식의 경우가 그랬다. 해방전에는 오불관언하고 사는것이 가능했었다. 그때는 세상이 그를 외면했고 자기 또한 이 세상에 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은둔자로 자처하면서 고독에 습관되였고 점차 그 고독을 사랑하게까지 되였다. 그런데 해방된 세상에서는 그를 가만놔두려 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굳게 닫긴 대문을 두드리시던 그날부터 그의 생활세계에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적굴동을 지나고 봉수산기슭을 돌아서던 그는 공사장의 한적한 풍경앞에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조카딸의 말은 사람들이 공사장에 하얗게 널려서 쉴새없이 일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쉴참이 아닌데도 일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나무그늘밑에 앉아 땀을 들이고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자기가 와보길 잘한것 같았다. 하긴 이 복더위에 토목로동을 한다는게 헐하겠는가. 그래도 왜정때처럼 채찍을 들고 꽥꽥거리는 십장들이 없으니 마음편히 쉴수는 있을것이다.

정근식은 제 생각에 옴해서 걷다가 웬 사람에게 팔목을 잡혔다.

《보아하니 정신을 안 가지고 다니는것 같군요. 저길 보지 못합니까?》

그 사람이 가리킨 곳은 팔동교방향으로 물길을 돌린 봉수산기슭을 더 넓고 깊이 따내는 곳인데 암만 봐도 별다른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정근식의 팔을 놓아주며 허허 웃었다.

《이 사람이 공사장물계는 영 깜깜이군요. 당장 발파를 한단 말입니다.》

《발파요?》

그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는듯 때마침 지심을 흔드는 발파소리가 울렸다.

쾅, 쾅, 콰쾅…

발파소리에 잇달아 뽀얀 먼지구름이 주변을 덮었다. 돌부스레기가 그곳까지는 미치지 않았지만 정근식은 저도 모르게 둬발자국 물러섰다.

《공사장이 처음인가 봅니다. 외지에서 오셨는가요?》

길섶에 주저앉아서 그 사람이 묻는 말이였다. 정근식은 자기도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렸다. 평양에 살면서 여기에 처음 와본다고 하기가 량심에 찔리웠던것이다.

《로동안전규정이라는게 있으니까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여기서 다리쉼이나 하고 가시지요.》

정근식은 그 사람이 권하는대로 풀밭에 앉으며 먼저 물었다.

《댁은 여기서 무슨 일을 보시는지요?》

뒤꽁무니에 수첩을 찔러놓고다니는것을 보니 막일이나 하는 사람같지 않았던것이다.

《나요? 시를 씁니다.》

《시를요? 이 공사판에서 시를 쓴다구요?》

《왜 놀라십니까?》

그는 정근식이 놀라는게 놀랍다는듯 되물었다. 그 사람은 시인 리찬이였다. 리찬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있는 정근식에게 정색해서 물었다.

《놀랄만도 하지요. 옛날같으면 신음소리, 채찍소리만 울리던 공사장에서 노래소리가 울린다는게…》

리찬은 심장에서 끓고있는 시적인것을 퍼내지 않고는 견딜수 없다는듯 초면인 정근식에게 손세까지 써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인간은 원래 자연앞에 무력한 존재였다. 때문에 력사적으로 자연에 대한 공포와 신앙이 존재해온것은 불가피한것이였다. 보통강의 력사만 보아도 사람들에게 해마다 재난을 들씌우면서 태고적생긴 모양대로 흘러왔었다. 지난날 봉건통치배들은 인민을 억압할줄만 알았지 그들을 보살펴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제통치시기에도 왜놈들은 저들의 침략적, 략탈적목적으로부터 보통강을 리용하려 했을뿐 그 주변일대에서 사는 인민들의 운명에는 무관심하였다. 그런데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을 수해로부터 보호하고 토성랑인민들을 살리자고 처음으로 삽을 들고 나서시였다.

인민수난의 력사, 불행의 력사를 끝장내자고 대자연에 선전포고를 하시였다. 인류력사를 돌이켜보면 만민평등의 행복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대문의 열쇠가 어디에 있느냐 세기와 세기를 넘으며 뜻있는이들이 력사의 미궁을 더듬질해왔건만 누구도 찾을수 없었던 행복한 세상의 열쇠를 우리 장군님께서 찾아쥐신것이다. 찾으신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 바쳐 만들어내신것이다. 리찬의 어조는 시종일관 웅변적이였다.

《난 빛과 어둠을 시창작의 근본으로 삼고 글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해방전에는 어둠에 대해서만 노래했지요. 그 시대의 양상은 어두웠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빛에 대해서만 노래하고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태양에 대한 노래만을 쓰려고 합니다. 난 지금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민주의 새 조선의 위대한 태양이 누구인가를 온 세상에 노래하는 <김일성장군의 노래> 를 창작하고있습니다.》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정근식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생각지도 않았다가 뜻밖에 대단한 사람을 만났던것이다. 그는 리찬의 흥분에 전염된듯 바투 다가앉으며 그 보배손을 덥석 움켜쥐였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는 마음속에 켜진 등불탓인지 퍼그나 진지하고 엄숙한 빛이 흘렀다.

《선생은 민족앞에 정말 큰일을 하고있소이다.》

《이러지 마십시오. 장군님에 대한 송가를 짓는거야 만민이 일구월심 바라는게 아닙니까? 조선민족이 낳은 불세출의 위인을 세상앞에 뚜렷이 내세우는것은 민족성원모두의 응당한 본분인즉 한방울의 먹물이라도 손끝에 묻혀본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맨먼저 정중한 자세로 나서야지요.》

정근식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백성들모두가 제 본분을 다하고 사는건 아니지요. 나라는 위인만 봐도 평양에 태를 묻고 살면서 오늘에야 구경삼아 여기에 나와봅니다. 동원장을 받고도 로력을 돈으로 사서 대신 내보냈댔지요. 그래서 장군님께 노여움을 끼쳐드렸댔습니다. 장군님께서 내 집 대문을 손수 두드리시며 건국의 한마당으로 불러주시였는데도 엉치가 무거워 오늘에야 나왔습니다.》

《글쎄 어쩐지 관청에 온 촌닭같다 했습니다.》

리찬은 능청스레 말하며 제 먼저 웃음을 터쳤다. 정근식이도 오래간만에 롱담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웃었다.

《무엇이 나를 여기로 뚱기쳐냈는지 하여튼 와보고싶더라니까요. 선생같은 귀인을 만나고보니 우리 로친네가 못나긴 했어도 하늘의 계시를 받고 내 등을 떠민게 틀림없습니다. 허허…》

《아닙니다. 이 공사장에서 나같은 선비를 만나는게 뭐 그리 대단한것이겠습니까? 여기서 봐야 할건 김일성장군님께서 착공식날 첫삽을 뜨신 자리지요.》

정근식은 애원에 가까운 간절한 표정으로 리찬에게 청을 드렸다.

《날 거기에 데려다주겠습니까? 부탁입니다.》

《그런 부탁이야 백번이라도 들어주지요. 갑시다.》

아직 발파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지만 건설자들은 작업장으로 밀려들고있었다. 공사장은 대번에 활기를 띠였다. 정근식은 리찬을 따라 일어섰다. 서재골로 넘어가는 굽인돌이를 꺾어들던 그는 새 통수로가 뻗어간 공사장의 전경앞에 입을 딱 벌렸다. 자를 대고 그은것 같은 저런 제방이 언제 생겨났는가? 50메터 강폭을 사이에 두고 량옆으로 뻗은 제방과 분주히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는 이 력사의 기적앞에서 자기 위치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강산이 이렇게 변하도록 자기는 뭘하고있었는가?

그동안 자기는 망태기가 되여버린 이 세상에 어떤 미련도 가질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지구전체를 암흑세상으로 규정했었다. 그런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영영 밝아질것 같지 않던 이 세상에 광명을 안아오시였고 암흑속에서 헤매이던 천덕꾸러기들이 거인적형상으로 자연에 도전하고있는것이다.

보라! 너도나도 질통을 지고 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저기 저 남정들은 어째서 목고줄을 자기쪽으로 당겨놓으며 싱갱이질을 하고 보매 중학생인듯 한 소년은 어째서 어른들과 같은 질통을 지고있으며 장석을 입히는 저 사람들은 무엇이 즐거워 허리를 물속에 잠그고도 웃고 떠드는가.

정근식은 눈앞에 안겨오는 광경들과 공사장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노래소리, 북소리, 꽹과리소리에 정신이 팔려 몇번이나 발을 헛짚어 넘어질번 하였지만 그래도 공사장에서 눈을 뗄수 없었다.

리찬은 서포천과 형제산강의 합수목에 정근식을 데리고왔다.

《여기가 바로 장군님께서 첫삽을 뜨신 곳이요.》

정근식은 시커먼 감탕흙이 드러난 그곳에 말없이 다가섰다. 바로 여기가 김일성장군님께서 수천년 감탕속에 묻혀있던 인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위대하고 존엄높은 존재로 떠올리시기 위하여 첫삽을 박으신 곳이란 말인가. 바로 여기가 민주건설의 첫출발점이고 이 땅에서 자연에 대한 항거의 력사가 시작된 곳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여기는 응당 황금으로 란간을 두르고 천만년 길이 보존해야 할 유서깊은 곳이 아닌가.

생각에 잠겨있던 정근식은 멀지 않은 곳에서 떠들썩하는 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팔뚝만큼 굵은 이깔장대들을 달구지에서 부리우고있었다.

《저기선 뭘하는가요?》

그쪽을 유심히 살피던 리찬은 탄성을 질렀다.

《아하, 저 사람들이 끝내…》

리찬은 제 먼저 앞장에 서며 정근식을 이끌었다.

《우리도 가봅시다. 참 희한한 구경거리지요.》

거기는 선교4리 작업구역인데 지금 임성민은 웃동을 벗어제끼고 나무레루를 놓을 준비를 하고있었다.

팔뚝만 한 굵기의 이깔나무를 껍질을 벗기고 잘 다듬어 침목에 고정시키면 얼마든지 레루를 대신할수 있었다. 곡산공장에서 당장 밀차를 만들어오겠는데 소철레루가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나무레루를 놓고서라도 하루빨리 제방을 쌓자는것이였다.

임성민의 착상은 돌격대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쇠붙이건 나무건 밀차가 굴러가면 되는거지.》

《그래그래. 밉건곱건…》

째지게 가난해서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더꺼머리가 한마디하는데 코마루가 잘 익은 사람이 맞장구를 친다.

《그 말이 맞아. 막걸리건 탁배기건 취하면 되니까.》

《쯧쯧, 한다는 소리들이…》

결국 어제부터 봉수산에서 매츨한 이깔나무를 골라 껍질까지 벗겨가지고 온것이다.

정근식은 침목우에 레루를 놓는 그들의 작업모습을 얼없이 지켜보다가 리찬이 팔을 끌어서야 거기서 떠났다.

《우리 건설자들이 참 용한 생각을 해냈군요.》

정근식은 생각깊은 어조로 한마디했다.

《난 저 나무레루를 단순한 발명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공사에 진심을 바치지 않고서야 저런걸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애국레루라고 해야지요. 좀 둘러보시오. 저기선 목조기중기가 우뚝 솟고 저쪽에선 권양기가 밀차를 끌어올리고 사람들은 또 어떻소? 여기선 애국이란 말밖에 할 소리가 없습니다.》

리찬의 마음속에서는 벌써 시가 다듬어지고있는 모양이였다. 그는 얼핏 회중시계를 꺼내보고나서 정근식에게 돌아섰다.

《자, 이젠 나두 일을 좀 해야겠으니 손님을 계속 안내할수가 없구만요.》

리찬의 말은 어딘가 야유조로 들렸으나 정근식은 탓하지 않았다. 설사 어느 젊은이나 아낙네가 모욕하고 놀려댄다 해도 그로서는 할 말이 없을것 같았다. 그만큼 그는 공사장에서 받은 충격이 컸던것이다.

《내 오늘은 공사장구경이나 하자고 나왔댔는데 그냥 돌아가면 사람이 아니지요. 부탁인데 삽이든 질통이든 하나 얻어주시겠습니까?》

리찬의 얼굴에서는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지고 대신 심각하고 엄한 표정이 떠올랐다.

《얻어드릴수 있지만 그만두겠습니다.》

《그건…》

정근식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리찬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오늘 일하러 나온게 아니지요. 처음 나와보고 가책이 큰 모양인데 체면이나 세우고 량심에 위안이나 얻자고 삽질이나 몇번 하고 떠난다면 그건 이 공사를 더 욕되게 하는것으로 되지요. 난 당신이 이 공사장을 보다 정중성있게 대했으면 해서 하는 소립니다. 하여튼 자기의 정신을 목욕재계하고 오직 애국심 하나만을 간직하고 나오십시오. 그때 나랑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힘껏 일해봅시다.》

정근식은 아팠다. 마음의 고통은 육체적고통으로 번져져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시인선생의 말이 그른데는 없었다.

그는 수영이를 찾으려던 생각마저 단념하고 머리를 수굿한채 공사장을 떠났다. 한걸음한걸음 무겁게 옮기는 그의 모습에서 유람객의 자세는 찾아볼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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