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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및 동영상]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중 <중대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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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23 00:4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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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및 동영상]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중 <중대의 누나>

 

편집국

 

 

▲ 영화 <중대의 누나> 여주인공 모습

 

도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1959년부터 1권이 출판되어 70년대까지 20권까지 발행되었다. 제목 그대로 항일투쟁에 참가한 유격대원들의 이야기를 묶어 조선노동당출판사가 발행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1년 7월 20일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학생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 회상기를 언급였다. 국방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애국주의정신을 적극 따라배우자>고 강조하였다. <숭고한 애국정신>은 바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자기의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는 정신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사회주의적애국정신을 의미한다.

 

아후 회상기 독서 열풍이 불었으며 항일 유격대의 정신을 따라 배우자는 열의가 넘쳤다고 한다. 당시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구호가 나왔으며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항일유격대식>이 강조되었다.

 

이후 2004년에 들어 또다시 북에서는 회상기 독서 열풍이 불었다. 노동신문 2004년 6월 3일자에는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혁명전통 학습의 귀중한 교과서>의 사설을 실으면서 간고하고 준엄했던 나날 항일선열들이 발휘한 투쟁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북은 2003년 과거에 출판됐던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전투회상기',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를 종합해 20권으로 된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재판한다고 밝혔으며 2003년부터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1권이 재판되어 2012년까지 20권까지 나왔다.

 

회상기는 항일혁명투사들의 글이 짧은 글로 소개되었으며 이 회상기를 바탕으로 영화나 연극등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항일혁명투사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회상기에 나온 글과 영화를 통해 항일혁명투사들의 삶, 조국해방을 위해 청춘도 목숨도 아낌없이 바치며 투쟁해온 삶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있다고 여겨 소개한다. 오늘 소개할 회상기는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6권에 나오는 <중대의 누나>다

 

조선중앙방송은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63주년을 맞이하여 전쟁영화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7월 21일에는 회상기를 바탕으로 한 중대의 누나 영화를 소개하였다. 독자들을 위해 회상기 글 전문과 동영상을 소개한다.

 

 


도서 

<중대의 누나>

 

윤태홍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내가 속해있던 부대에 리순절이라는 녀대원이 있었다.

그는 환인지방의 어느 한 지주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입대한 나어린 처녀였다.

모진 학대와 굶주림속에서 쪼들려 허약해진 그는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는 정도의 과묵한 성미였다.

그가 처음 총을 받아안았을 때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북받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나의 눈에 선히 떠오른다.

하루이틀 지나는 사이에 우리는 그가 겪어온 쓰라린 생활의 이모저모를 더 자세히 알게 되였다. 그리고 비록 나이 어린 처녀였지만 남만 못지 않게 용감히 싸울수 있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한번은 몽강지방에서 큰길로 행진해가는 적들을 습격하기 위해 우리가 산굽이에 매복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총끝에 날창을 꽂는것이였다.

≪총으로 쏴도 능히 소멸할수 있는 적들인데 왜 날창을 꽂소?≫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순절동무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고 다가오는 적들을 노려보고있을뿐이였다.

≪흥분해서는 안되오.≫하고 거듭 그를 타일렀다.

그러자 더 의아해하는것은 순절동무였다.

≪짐승같은 저놈들을 총으로만 쏴잡아야 하나요. 젖먹이 어린아이까지 총창에 꿰여 불속에 던지는 원쑤들에겐 정말 총알도 아까와요. 날창으로 놈들의 심장을 푹푹 찌르겠어요.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꼴을 내눈으로 천번이고 만번이고 꼭 보아야겠어요.≫ 격노한 목소리였다. 치솟는 적개심에 온몸이 불처럼 달아오르는듯 그의 안광은 번쩍번쩍 빛났다.

이윽고 적들이 산굽이에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산이 허물어지는듯한 아군의 요란한 총소리와 작탄터지는 폭음이 진동했다. 4렬종대를 지어오던 왜놈들이 미처 눈돌릴 짬도 없이 길바닥에 너저분히 쓰러졌다.

그런데 이때 적들을 향해 총을 쏘고있던 순절동무는 몇몇 패잔병놈들이 쥐새끼들처럼 길섶도랑을 기여나가는것을 보았다.

≪이놈들아, 절대로 살려보내지 않을테다.≫

날창을 비껴든 순절동무는 총알처럼 달려나갔다.

처음 전투에 참가하는 어린 동무라고 누가 말할수 있으랴.

그뒤를 급히 따라선 몇몇 동무들과 함께 그는 일제놈들을 쏘고 날창으로 찌르며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렇게 그는 혁명대오에 들어서면서 강철의 투사로 성장해갔다. 그후에도 그는 어려운 많은 전투들에서 늘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려는것은 그의 용감한 투쟁모습만이 아니다.

유격대동무들은 어느사이엔가 그를 ≪우리 중대의 누나≫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되였다.

그만큼 그가 혁명동지들을 귀중히 여기면서 모든 애로와 곤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 실례는 수없이 많다.

1938년 1월 3일이였다.

우리는 적들의 ≪토벌≫을 물리치면서 림강밀영을 출발하였다.

이때 일부 부상자들을 호송하면서 삼차자령을 넘던 우리앞에는 적지 않은 애로와 난관들이 가로놓여있었다.

이곳은 우선 적들의 ≪토벌≫이 심한 곳이였다.

그런데다가 이해에는 례년에 드문 혹독한 추위와 깊은 눈으로 동북산야가 뒤덮였었다.

어찌나 많은 눈이 쌓였던지 삼차자령골어귀에서부터는 두세길씩 되는 이깔나무마저 겨우 우듬지만 보이는 정도였다.

설피를 신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발을 옮겨디딜수 없었다.

이런 험한 길에서 우리는 또한 식량이 떨어져 여러끼를 굶었고 적들의 ≪토벌≫이 극심한 관계로 불조차 마음대로 피우지 못하였다. 그래서 부상자들에게 물도 제대로 끓여줄수 없었다.

산마루에 올라서니 눈보라는 더욱 사나왔다. 자칫하면 아득한 골짜기아래 눈사태속에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그때 순절동무는 남달리 힘들어했다. 총을 메고 배낭을 진데다 작식도구들까지 겹쳐 진 그의 짐은 부피가 컸다. 그래서 마치 돛을 단 배처럼 사나운 바람에 자꾸만 휘몰리군 하였다.

동무들은 여러번 그에게 짐을 나누어지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종시 응하지 않았다.

≪순절누나, 제발 짐을 좀 갈라멥시다.≫

바람에 휘몰려 넘어질것 같은 순절동무를 부축하여주면서 김택만동무가 거듭 졸라댔다.

그러자 순절동무는 오히려 택만동무를 타이르는것이였다.

≪위험한 길에서 지체말고 어서 걷자요. 언제든지 적들이 나타나면 나는 부상자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동무들은 적들과 싸워야 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짐을 지고야 어떻게 싸워요.≫

그러나 순절동무를 도와주려는 동무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여러 동무들이 달려들어 그의 짐을 빼앗아 나누어 메였다.

≪왜들 이러세요. 이러면 나를 업신여기는거야요. 사흘씩이나 밥도 못끓이고 이제는 더운물 한모금도 끓여주지 못하게 되니 ≪그런 녀자가 작식도구는 가지고다녀서 뭘 하느냐, 차라리 내놔라.≫는것처럼 나는 느껴져요. 어서 이리 주세요.≫

아직 어린 처녀였던 그는 울다싶이 하며 다시 자기 짐을 찾아지고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 짊어진 배낭우에는 커다란 함석그릇이 바람에 기우뚱거리고 한쪽 어깨에 멘 보병총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치장스러워보였다.

순절동무의 이러한 뒤모습을 바라보는 동무들은 그가 얼마나 전우들의 춥고 배고픈 처지를 가슴아프게 여기는가를 더 깊이 느꼈다.

≪이번에 일제놈들과 맞다들면 장교놈부터 잡아 제끼겠다. 그리고 그놈의 권총을 빼앗아서 순절누나의 무거운 구식보병총과 바꿔주겠다.≫

순절동무의 수고를 다문 얼마라도 덜어주고싶은 마음에서 택만동무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순절동무는 이렇듯 중대의 누나다운 녀성대원으로서 동무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잠시 휴식하는 때에도 그는 눈을 헤치고 언땅을 파가며 칡뿌리를 캐다가 전우들의 시장기를 덜어주느라 애를 썼다. 그래서 어린 처녀의 손은 아물사이없이 터갈라지고 손가락들은 동상을 입어 퉁퉁 부어오른채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는 감각조차 무딘 언손으로 총을 쥐다가 쇠붙이에 닿아 껍질이 묻어나는것을 차마 그냥 보고있을수 없었다.

이것은 어느 한두동무의 심정만이 아니였다. 그를 친누이나 녀동생처럼 극진한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는 모든 전우들의 심정이였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 그런 일을 못하게 하고 우리가 대신하여줄수 있겠는가. 그의 손에 노루기름이라도 발라줄수는 없겠는가.)

이러한 우리들의 심정을 어느사이에 알아차렸는지 그는 ≪내손이 어떻다구들 그러세요. 그래두 이제 두구 보시지요. 후일에 혁명을 승리하고 택만동무나 동화동무가 장가를 들 때면 내가 이 손으로 비단옷을 보란듯이 지어줄테니까요.≫하고 천연스레 웃어넘기는것이였다.

그럴수록 그가 참아가는 고통을 우리는 더 생각하였고 더 가슴아파하였다.

동지를 사랑하며 모든 괴로움을 웃음으로 바꾸어가는 그의 지순한 마음씨와 완강한 투지는 또한 먼 후날을 두고 바라기만 한것은 아니였다. 그는 간고한 전투와 행군뒤에 오는 짤막한 휴식시간에도 바늘을 쥐고 앉아서 대원들에게 연필주머니나 탄알쌈지 같은것을 곱게 지어주는가 하면 무릎밑까지 올라오는 크고 두툼한 버선이나 통장갑을 만들어두었다가 동무들이 추운날 길을 걸을 때면 ≪발들을 얼구지 않도록 해야 해요.≫하면서 정히 내주군 하였다.

이렇게 우리가 삼차자령중턱에 들어섰을 때였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속에서 갑자기 적들의 기관총과 보총이 미친듯이 불을 뿜었다.

위급한 순간이였다.

지휘관의 명령에 의하여 리순절동무와 기타 일부 성원들은 우선 로약자들과 부상자들을 안전한 벼랑밑으로 급히 대피시키고 다른 동무들은 재빨리 전투위치를 차지하고 적정을 살폈다.

적들은 눈보라가 일어나는 맞은켠 산마루와 벼랑턱우에다 경기를 걸어놓고 쏘았다. 한편 다른놈들은 반원형으로 포위할 태세를 취하며 차츰 우리가 있는 벼랑아래로 죄여 내려오고있었다.

정황은 차차 더 불리하여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속에서도 침착하게 적정을 살피며 적들의 기도와 약점을 리용하여 놈들을 소탕할 전투계획을 짰다.

오만한 적들이 우리를 포위하려고 죄여드는 틈에 우리는 눈보라를 리용하여 놈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벼랑으로 기여올라 우선 적의 기관총수놈들부터 쓸어눕히자는것이였다.

미친듯이 불을 뿜는 적의 기관총이 걸려있는 절벽에 기여오르는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망설일 때가 아니였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눈속에 몸을 숨겨가며 벼랑우에 기여올랐다. 그리고 김택만동무와 내가 각각 적들의 경기사수놈들을 쓸어눕히고 경기 1정씩을 로획하였다. 이리하여 아군의 화력은 벼랑아래로 몰려드는 적들의 머리우에 불벼락을 퍼부을수 있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120여명의 적들을 완전히 섬멸하였다.

그리고 다시 행군을 하기 위해 대오를 살폈다.

그런데 순절동무와 그가 호송해가던 부상자 2명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됐을가.)

가렬한 전투를 겪은 뒤라 우리의 근심은 류달리 컸다.

≪순절동무.≫

≪누나.≫

사나운 눈보라속에서 동지들을 찾고 부르는 뜨거운 목소리는 우리의 가슴을 더욱 초조하게 하였다.

언제 한번 지휘관이나 동무들의 근심을 사게 한 일이 없던 순절동무가 보이지 않으므로 생각은 더 각별했다.

이때 택만동무의 손에는 적장교놈에게서 로획한 ≪모젤≫권총 한자루가 쥐여져있었다.

그것은 순절동무에게 주려는것이였다.

동무들의 안타까운 웨침소리는 여기저기서 련달아 울려퍼졌다.

하지만 순절동무는 종시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얼마동안 찾고 헤매던 우리는 전투가 시작되던 산기슭 아래쪽에서 부상자 한 동무가 기여올라오다 엎드려있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순절동무가 직접 호송해가던 부상자의 한사람인 양이천동무였다.

우리가 그의 상처를 처매주고 얼마동안 주물러준 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눈을 뜨자 목이 메여 다음과 같은 사연을 알려주었다.

…전투가 시작된 얼마후 양동무는 적탄을 맞고 쓰러졌었다. 그러다가 그가 적탄이 계속 쏟아지는속에서 다시 머리를 추켜들었을 때였다.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눈보라속에서 부상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헤매던 순절동무가 눈속에 쓰러져있는 양동무를 발견하였다.

적탄이 비발치는 속으로 급히 기여들어온 그는 양동무의 한쪽 팔을 자기 목에 걸고 한쪽 어깨를 들이밀어 업었다. 그리고 앞뒤에서 날아오는 적탄을 피하며 기여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때 순절동무는 이미 적탄에 한쪽 겨드랑이를 부상당한 몸이였다. 그러나 양동무는 순절동무가 자기의 심한 상처의 고통을 참으며 자기를 구원하러 들어온줄은 미처 몰랐다.

양동무는 자기의 심한 고통으로 하여 눈을 감고있었으므로 순절동무가 어째서 빨리 뛰여가지 못하고 안타깝게 기여가는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누나의 등에 업히운 동생의 마음 그대로였다. 그는 순절동무의 한쪽 어깨우에 몸을 맡긴채 이끌려가고있었다.

≪앗!≫하는 순절동무의 다급한 신음소리에 양동무는 눈을 떴다.

그제야 그는 순절동무의 한쪽 겨드랑이에서 흐르는 피가 그의 옷을 적시고있는것을 보았고 그의 한쪽 발목도 적탄에 맞았다는것을 알았다.

양동무는 너무도 놀라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차라리 나는 싸우다 죽더라도 순절누나는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양동무는 총을 잡은채 눈우로 몸을 굴러내리며 순절동무를 떠밀었다.

더는 순절동무를 괴롭힐수 없었다.

≪누나, 위험한데 어서 피하시오.≫

자기 발목을 들여다보던 순절동무는 양동무의 말에 깜짝 놀라 그를 끌어당겼다.

≪안돼요. 동무가 어떻게 싸워요?≫하고 한쪽 손으로는 양동무를 잡고 한쪽 발과 손으로는 눈속을 차고 헤치며 또다시 기여나가기 시작하였다.

양동무가 자기 배낭속에 있는 붕대를 꺼내여 상처를 동이고 가자고 해도 순절동무는 응하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가면 돼요. 적탄이 쏟아지는속에서 언제 발을 동이고 있겠나요. 어서 나를 꼭 붙잡아요.≫

양동무는 순절동무의 도움을 받으며 자기 힘껏 눈속을 헤치고 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동무는 이미 부상을 당한 몸인데다가 또 부상을 당했으므로 얼마 못가서 기력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이 혼미해지고말았다.

얼마후에 그가 다시 정신이 들어 눈을 떴을 때였다. 자기로서는 어딘지 짐작할수 없는 큰 바위곁에 누워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더 찬찬히 자기 주위를 살폈다.

사나운 바람도 적탄도 념려없는 아늑한 곳이였다. 그의 눈에는 작식도구들이 함께 동여있는 순절동무의 배낭도 보였다. 그런데 순절동무는 보이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순절동무의 총도 없었다. 그리고 금시 누구인가 적탄이 울부짖고 눈보라치는 언덕우로 기여올라간 흔적이 눈우에 찍혀있었다.

(아, 순절누나는 나를 여기에 끌어내려다놓고 자기는 싸우러 갔구나. 그토록 심한 부상을 당한 몸으로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양동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총을 더듬어잡고 몸을 일으켰다. 고통을 참는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나도 싸워야지.≫

그러나 마음대로 행동할수 없는 그였다. 몇번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군 하면서 양동무는 순절동무가 기여올라간 언덕으로 기여오르고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어지러워지는 그의 눈앞에는 적진으로 달려들어가는 전우들과 순절동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때 양동무가 눈을 헤치며 쳐다보는 언덕우에서는 아래로 기여내려가는 순절동무의 모습이 마치 꿈에서처럼 어슴푸레 보였다.

≪누나.≫

순절동무는 어떤 대원 하나를 눈우에 눕힌채 한쪽 손으로 끌고가면서 눈무지속을 헤여나려고 애를 쓰고있었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였다. 그제야 양동무에게는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그렇게 심한 부상을 당하고도 적탄이 비발치는속에 뛰여들어가 부상자들을 찾아 이끌어내는 순절동무의 모습을 보았을 때 양동무는 더욱 뜨거운 동지적충격을 느꼈다.

양동무는 자기 상처의 고통을 잊고 자기도 모르게 놀라운 소리를 치며 더 억세게 언덕우로 기여올랐다.

이렇게 하여 그가 얼마간 언덕으로 기여오르게 되였을 때 순절동무는 숨이 가빠 말은 못하고 양동무에게 올라오지 말라는 형용으로 두세번 손을 내저었다.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단숨에 뛰여가 손을 마주잡고 올수 있는 지척의 거리였건만 부상당하고 지친 이들에게는 천리인듯 아득한 거리였다. 양동무는 순절동무의 손을 잡고 도와주자고 무척 애를 썼으나 제자리에서만 모대기는 안타까운 심정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의 거리가 얼마쯤 더 가까와졌을 때 순절동무는 지칠대로 지쳐 그만 눈속에 머리를 푹 떨구었다.

양동무는 더욱 안타까왔다. 그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순절동무가 거의 의식을 잃고있었다.

부상당한 대원을 끌고내려오던 자세 그대로 순절동무는 한쪽 손을 눈속에 깊이 박고 또 한쪽 손은 부상당한 대원을 끌어당기던채 엎드려있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아직도 찢어진 옷자락을 적시고있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자기 상처를 동이지 못하였던것이다.

이것을 본 양동무는 ≪순절누나.≫하고 목메여 부르며 급히 안아 일으키려 애를 쓰다가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기여오르고있었던것이다. …

동무들이 순절동무를 찾아서 그리로 갔을 때 그는 이미 눈을 감은채 차디찬 눈우에 조용히 누워있을뿐 택만동무나 동화동무가 그렇게 안타까이 부르며 잡아흔들어도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우리는 순절동무앞에 숙연히 머리를 숙였다.

자기의 상처도 생명의 위험도 돌보지 않고 혁명전우를 위해서 끝까지 싸우다 희생된 리순절동무, 그의 불같이 뜨거운 동지애와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앞에서 동무들은 터지려는 울음을 억누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를 고이 들어서 옮길 때 택만동무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순절누나를 어떻게 이 땅속에 묻을수 있단말이요.≫

산천도 울고 눈보라도 몸부림을 치는듯한 그속에서 동무들은 애석한 심정을 금치 못하여 순절동무의 손을 다시 쥐였다.

간악한 일제를 물리치기에 터서 갈라진 어린 처녀의 거치른 손에 택만동무는 권총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그를 남쪽하늘, 조국의 하늘이 보이고 아침이면 해빛이 먼저 비쳐오고 봄이면 꽃이 먼저 필 양지쪽에 안치하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그의 심장속에 간직된 아름다운 노래와 꿈이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현실로 꽃핀 오늘 우리는 그를 더욱더 추모하게 된다.

헤아릴수 없는 간고한 투쟁의 길에서 동지의 고통과 기쁨을 자기의 고통과 기쁨으로 생각하며 동지를 구원하기 위하여 희생도 서슴지 않은 그의 고결한 혁명정신이 오늘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 불태워주고있다.

 


[동영상] (아래의 제목을 누르시면 해당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중대의 누나

 

 

유투브

중대의 누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7-23 00:51:0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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