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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새 나라》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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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28 10:4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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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편집국은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35

 

다음날이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끼리끼리 둘러앉아 도시락들을 펴놓았다. 한동네사람들끼리 혹은 같은 작업조끼리 혹은 신민당끼리 혹은 민주당끼리… 하여튼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둘셋씩 혹은 여라문명씩 사방에 모여앉아있는데 그 수는 작업장에 생겨난 구뎅이수와 비슷하였다. 언제면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져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저 숱한 구뎅이들이 없어지고 새 물길이 자기 형태를 잡을것인가.

 

명덕은 자기 동네사람들속에 끼울가 하다가 산기슭의 소나무밑에 외따로 가앉았다. 사람들과 마주앉고싶은 기분도 아니고 더군다나 젊은 놈이 나물죽이나 싸들고다니는 꼴을 보이기가 창피스러웠던것이다. 그는 허리춤에 묶은 보자기를 풀어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말려두었던 길짱구*에 보리와 수수를 섞어 쑨 죽이였다.

 

그가 막 숟가락을 잡으려는데 웬 사람 하나가 명덕에게 다가왔다.

 

《동무! 여기 있었구만.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오?》

 

명덕은 낯모를 사람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되박이마가 반들거리고 얼굴이 좀 우습게 생긴 사람이였다.

 

《뉘시우?》

 

《난 공사지휘부에 있소. 어제 동무가 싸우는걸 말리러 갔댔지.》

 

그 사람이 웃는것도 어딘가 기분나쁘게 보였다. 그러니 나를 지휘부에 끌고가서 훈시라도 하겠다는건가. 하긴 시공책임자를 때리겠다고 덤벼들었댔으니 왜정때라면 십장들의 몽둥이에 열번은 더 죽었을것이다.

 

명덕은 거칠게 물었다.

 

《날 왜 찾소?》

 

《달리 생각마오. 우리한텐 동무같은 프로레타리아가 필요하오.》

 

로이문은 웅크리고앉아있는 명덕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러다가 뚜껑을 채 닫지 못한 밥곽을 내려다보며 비죽이 웃었다.

 

《가기요.》

 

《어디 말이요?》

 

《저기 뺑대거리에 우리 지휘부에서 동무같은 모범로동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식당이 있소. 내 한턱 내지. 공짜는 아니고 앞으로 일을 잘해주면 되오. 갑시다.》

 

 

로이문은 무작정 명덕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명덕은 지휘부사람이 권하는데다 료해할것도 있다니 따라가지 않을수 없었다.

 

로이문은 명덕이와 함께 가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집은 어디고 직업은 무엇이고 가정형편은 어떻고…

 

만주에서 광산일을 했다는 소리를 듣더니 발파를 해보았는가고 물었다. 명덕은 피씩 웃었다.

 

《그까짓거야 뭐.》

 

《그렇소?》

 

로이문의 메밀눈이 반짝반짝했다.

 

로이문을 따라간 곳은 《봉수국수집》이라는 간판을 지붕우에 올려놓은 ㄱ자형의 기와집이였다. 점심시간인지라 숱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있었다. 방안마다 사람들이 둘러앉았고 토방이나 마당가의 도끼모태우에 쭈그리고앉아 국수사발을 손에다 받쳐들고 먹는 사람도 있었다. 손님들에게 넘어가는 국수그릇은 얼핏 보기에도 다른 음식점에서보다 량도 많고 꾸미도 괜찮아보였다. 부엌에서 국수분틀우에 올라앉았던 주인이 로이문을 알아보고 황급히 달려나왔다.

 

《아이구. 부원나리, 어서 오십쇼.》

 

《방이 있소?》

 

《그러문요. 자 여기루…》

 

주인은 로이문과 명덕을 부엌으로 안내했다. 소고기가 무드기 담긴 소랭이며 삶은 닭알을 담아놓은 그릇을 요리조리 피해서 주인을 따라가니 부엌과 잇달린 작은 방이 있었다.

 

주인이 어떻게 볶아쳤는지 담배 한대 태울 사이도 없이 큼직한 주안상이 들어왔다.

 

상우엔 없는게 없었다.

 

소고기볶음, 돼지갈비찜, 통닭찜, 생선회, 두릅순, 찰떡 그리고 명덕이가 먹어보지 못했던 료리도 있었다.

 

《그럼 어서.》

 

주인은 문을 닫고 나가면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개수공사 얼씨구 절씨구… 자, 또 한바탕 눌러보세.》

 

명덕은 처음에는 어쩔바를 몰랐지만 술이 몸에 들어가자 차츰 긴장이 풀리고 배심이 생겼다. 까짓거 나중엔 어찌되든 차례진건 먹구볼판이였다.

 

로이문은 명덕을 동무라고 부르다가 어느새 자네로 바꾸었다.

 

《자네 내 말을 잘 듣게. 사실 난 자네를 지휘부에 추천할가 했댔네.》

 

《지휘부요? 내가 거기서 뭘해요?》

 

《할 일이 있지. 자네처럼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이 있어야 공사장에 꾀를 부리는 건달군들이 배겨나지 못하거던. 자네 평천리가죽공장에서 채찍을 많이 만든다는 소리 들었나?》

 

《아니요.》

 

《음, 강건너쪽은 좀 뜨구만*. 나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실인것 같애, 공사가 잘 안되면 사람들을 강제로라도 동원시켜야겠으니 할수 없지. 그런데 자네한텐 채찍을 주어도 마음이 착해서 십장노릇을 못할것 같구만. 어떤가. 꽤 할수 있겠나?》

 

《난 그런거 못하우다.》

 

《하긴 자넨 공산당원이 아니지? 자네만 알고있게. 십장은 공산당원들만 시킨다네. 그 사람들한테는 임금을 준다네.》

 

《그게 사실이요?》

 

명덕은 저도 모르게 눈을 치떴다. 돈을 벌자고 왔으면 썩 사라지라던 장혁수의 얼굴이 떠올랐던것이다.

 

《조용하라구. 자네 어디 가서두 내가 말했단 소린 하지 말게. 알겠지?》

 

《사람을 어떻게 보구 그러시우?》

 

그래도 로이문은 명덕에게서 다짐을 받아내고서야 다음말을 꺼냈다.

 

《그럼, 난 자네가 발파공일을 해주었으면 하네. 제방공사를 하자문 숱한 돌이 요구되는데 발파공일을 해본 사람이 없어서 그래. 어떤가?》

 

명덕은 발파공일이 싫지 않았다.

 

《좋수다.》

 

《그럼 래일 아침에 지휘부로 올라오게. 요새 발파공들을 모집하는데 내가 자네를 추천해주지.》

 

로이문이가 명덕에게 그 일을 시키려는것은 자기나름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로이문은 얼굴이 벌개가지고 바람벽에 기대앉으며 한탄조로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공사가 제대로 안돼서 야단났네. 문제는 우리 지휘부사람들의 능력에 달려있지. 어제 자네를 때리려던 현장책임자라는 사람도 정권기관에 있어본 경험이 없으니까 쩍하면 주먹질이거던. 난 어제 자네가 사내답게 해볼줄 알았는데 용케 참더구만. 현장책임자라니까 좀 떨리던가?》

 

로이문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명덕의 아픈 곳을 때끔때끔하게 꼬집어뜯었다. 술기운이 퍼진데다 가뜩이나 억울한 심정을 안고있던 명덕은 왈칵 성을 내였다.

 

《사람을 어떻게 보구 그러시우? 내가 겁을 낸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어쩌겠나? 책임자를 때리겠나… 혹시 그 사람이 자네 매부가 될수도 있어, 해해…》

 

로이문은 고자들처럼 염소울음소리를 냈다. 술잔을 들었던 명덕의 손이 굳어졌다.

 

《사람을 놀리는거요?》

 

《이렇게 깜깜이라구야. 어제 저녁에 현장책임자하구 자네 누이하구 작업장구뎅이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있구만. 흠! 내가 제때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누이가 무슨 욕을 봤을지 모를거야. 공사판이라는데가 원래 그러니까…》

 

명덕의 얼굴표정은 소름끼칠 정도로 험악해졌다. 그는 쇠집게같은 손으로 로이문의 나긋나긋한 어깨를 꽉 붙어잡고 따져물었다.

 

《똑바로 말하오. 뭐가 어쨌다구?》

 

로이문은 어깨가 빠진다고 아부재기를 쳤다.

 

《내가 없는 소릴 하겠나? 이걸 놓으라는데…》

 

《현장책임자가 그랬단 말이지…》

 

명덕의 이새로 나지막하게 새여나온 그 말은 흡사 호랑이의 목구멍에서 으르릉거리는 소리처럼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로이문은 명덕에게 잡혔던 어깨를 눌러보며 한수 더 떴다.

 

《별수 없지. 현장책임자권한이 있겠다, 완력까지 있으니 누가 감히 맞서겠나.》

 

《흥! 옛날부터 법은 멀구 주먹은 가깝다구 했소.》

 

해방전 버릇이 되살아난 명덕은 리성을 잃고 소리쳤다. 이제는 무엇으로도 그를 멈춰세울수 없었다. 그는 남았던 술을 맹물마시듯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사람 왜 이러나? 어딜 가?》

 

로이문이 붙어잡는 시늉을 했으나 그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명덕이가 문을 차고 나간 뒤 로이문은 마음속에서 요정들이 춤을 추는것 같아 쾌재를 올렸다.

 

(일이 재미있겠는걸…)

 

로이문은 술병에 남은것을 다 비우고 음식도 꼼꼼히 씹어서 책임적으로 배를 채운 뒤에야 국수집을 나섰다. 현장사무실마당에 들어서던 그는 마침 명덕이와 장혁수가 건물뒤로 사라지는것을 발견하고 슬금슬금 따라갔다.

 

그때 장혁수는 점심밥을 먹고 현장에 나가려다가 명덕이와 마주쳤던것이다.

 

《나 좀 봅시다레.》

 

《무슨 일이요?》

 

《가보면 알게 아니요?》

 

명덕은 곱지 않은 말투로 도발을 걸었다. 가만 거동을 보니 만나자는 리유가 대충 알만 했다.

 

(제법 밸통이 센데… 어제 일을 못 참겠다는거겠지.)

 

장혁수는 길들지 않은 망아지처럼 분별을 잃고 날뛰는 명덕이가 별로 밉지 않았다. 그는 담배꽁초를 비벼끄고 명덕을 따라가며 시무룩이 웃었다.

 

(좌우간 녀석이 사내다운데는 있어. 어쨌든 제 누이가 속을 썩겠군.)

 

명덕은 현장사무실뒤 조금 둔덕진 곳에 장승처럼 버티고서서 장혁수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너절한 자식! 죽어봐라!》

 

불시에 가해진 타격이여서 장혁수는 미처 피할새가 없었다. 혁수도 이런 경우에 제 몸건사 할줄은 알았다. 그러나 햇망아지같은 명덕이쯤은 우습게 보고 마음의 탕개를 늦추었댔으므로 그 강타에 하마트면 뒤로 넘어질번 했다.

 

《너 이게 무슨짓이야?》

 

그래도 명덕은 막무가내였다.

 

《너같은게 무슨 책임자야? 내 누이를 건드리고도 무사할줄 알았어?》

 

또다시 혁수의 동가슴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혁수는 이 햇망아지가 왜 이렇게 날뛰는지 어렴풋이 짐작되였다. 그만에야 혁수도 자제력을 잃었다. 그동안 잠자던 사나운 피가 순간에 끓어번졌다. 이 녀석이 날 너절한 놈으로 본단 말이지…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며 재차 들어오는 명덕의 팔을 후려잡았다. 그 팔을 자기앞으로 콱 나꾸어채는것과 동시에 상대의 눈통을 이마로 지끈!- 들이받았다. 명덕은 눈앞이 번쩍했다가 갑자기 새까매지는통에 얼굴을 싸쥐였다. 이제는 혁수의 차례였다.

 

《너 좀 맞아봐라!》

 

혁수는 사정보지 않았다. 그 어떤 뿌리깊은 적의나 증오때문은 아니였다. 젊은 녀석한테 먼저 맞은데 대한 밸풀이나 앙갚음도 아니였다. 오직 자기의 진심이 모욕당하는게 분해서 견딜수 없었던것이다. 어제 저녁 그 녀자와 함께 흘린 땀을 네가 감히 모욕하다니…

 

그러고보면 장혁수에게는 명덕을 때려줄 자격이 있었다. 현장책임자로서가 아니라 토성랑사람으로서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철없는 동생을 징계할 형님으로서의 의무가 있었다.

 

《이자식아! 네 누이는 네가 못다한 일을 대신하느라고 아이까지 업고나와서 늦도록 일하는데 네녀석은 미안해할 대신에 뭐가 어쨌다구? 난 둘째치고 네 누이가 오해받는게 분해서 못 참겠다. 에익!》

 

명덕은 매를 맞으면서도 그 말을 가려들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누이가 현장책임자하구 내 몫을?…

 

그 시각 로이문은 멀찍이 숨어서 그 광경을 훔쳐보며 무릎을 쳤다. 그에게는 누가 때리고 누가 얻어맞았는가 하는게 중요치 않았다. 사실 명덕이가 장혁수를 패주었다면 속이 좀더 후련하겠지만 반대로 명덕이가 매를 맞았으니 장혁수는 제손으로 올가미를 건셈이였다.

 

다음날 아침 공사장에는 삐라가 하얗게 뿌려졌다.

 

《로동자들을 마구 때리는 현장책임자 갈아치우라!》

 

《현장책임자는 왜정때 십장과 같은 놈이다!》

 

 

아침부터 현장에서는 삐라들을 한데 모아 불태우는 역사질이 벌어졌다.

 

《젠장, 간나새끼들때문에 아까운 종이만 태우는군.》

 

《글쎄말이요. 아이들 공책 맬 종이도 귀한데…》

 

그러나 개중에는 머리를 기웃거리는 축들도 있었다.

 

《불 안 땐 굴뚝에서 연기 안 난다는데 무슨 일이 있긴 있은 모양이군.》

 

《설마 현장책임자가?…》

 

《하여간 매맞은 사람이 있고 그걸 본 사람이 있길래 소문이 났겠지?》

 

리주연은 조반도 못 먹고 현장에서 삐라를 소각하느라 바삐 돌아갔다.

 

장혁수를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싶었으나 그 사람은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마 속이 타니까 어느 작업장에서 땀을 흘리고있겠는데 수천명의 인총*이 끓고있는 넓은 공사장에서 그를 찾아낸다는건 풀숲에서 바늘 찾기였다. 장혁수는 점심에도 식사하러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리주연은 지휘부일군들의 모임을 소집하였다. 공사장에 비상사태가 발생한만큼 그에 대한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공사장에 장혁수동무를 비방하는 삐라가 뿌려지고 뒤숭숭한 소문이 돌고있는데 동무들의 견해는 어떻소?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본인이 없는데서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나부터 말한다면 장혁수동무가 이런 사태를 빚어낸 장본인이긴 하지만 그를 해임시킬수는 없다고 보오.》

 

선전부 책임자가 리주연의 말을 긍정해나섰다.

 

《이건 반동놈들이 꾸며낸 개수작입니다. 설사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해도 때릴만 한 리유가 있기에 때렸겠지요. 더구나 그 동무는 아직 공산당원도 아니고 정치적수양이 어린것만큼 관대하게 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원부책임자는 립장을 달리했다.

 

《문제는 장혁수동무가 반동놈들에게 공사를 헐뜯을수 있는 언질을 주었다는것입니다. 나는 제기된 사태가 심각한만큼 장혁수동무를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오히려 대중에게 주는 영향이 더 나빠질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리주연은 자기의 결심을 바꾸고싶지 않았다. 놈들이 민심을 흔들어보려고 쏠라닥질을 한게 뻔한데 그 장단에 춤을 출수야 없지 않는가.

 

장혁수가 어떤 사람인가는 그와 함께 일하는 건설자들이 더 잘 알것이다. 만약 장혁수를 해임시키면 건설자들은 지휘부일군들이 머저리라고 손가락질을 할것이다.

 

(장군님께서 인민정권기관일군인 나에게 공사총책임을 맡겨주신것은 이 공사에 참가한 사람들의 운명까지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리주연은 이 문제를 더이상 떠들지 않기로 했다.

 

오후에도 공사장에 나가있던 그는 저녁총화때문에 사무실에 들어오다가 문짬에 끼여있는 쪽지편지를 발견하였다. 보낸 사람의 주소는 없었다. 방안에 들어와 편지를 읽던 리주연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편지내용인즉 현장책임자 장혁수가 이틀전 저녁무렵에 기림리녀맹에서 나온 리정혜라는 녀자와 작업장구뎅이안에서 어물거렸다는것, 텅 빈 공사장에서 갓난애기까지 다른데 팽개쳐두고 저희들끼리 있는것만 봐도 뻔하다는것, 공사지휘부일군들이 직권을 람용해서 이런 너절한짓을 하는것은 인민정권기관의 위신을 말아먹는 행위이기때문에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였다.

 

리주연은 격분을 참을수 없어 편지를 와락 구겨쥐였다. 어떤 놈이 지휘부주변을 배회하면서 삐라사건으로 장혁수를 넘어뜨릴수 없게 되자 또 이따위 너절한 놀음을 하는게 분명했다. 그게 어떤 놈일가? 그런데 이게 사실일가? 편지에 녀자의 이름까지 밝힌걸 보면 전혀 무근거한 소리같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도 장혁수는 현장에서 들어오지 않았었다.

 

리주연은 다시 현장에 나가서 일을 끝내고 돌아가려던 기림리녀맹위원장을 조용히 만났다. 녀맹위원장은 영문도 모르고 정혜를 칭찬했다.

 

《정혜동무요? 똑똑한 동뭅니다. 어제 현장책임자동지두 정혜동무를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 동무를 속보에까지 냈는데요.》

 

《현장책임자가 뭘 칭찬했다는거요?》

 

《모르십니까? 정혜동무는 동생이 못다한걸 대신하느라고 저녁늦게까지 일했답니다.》

 

리주연은 그제야 얼굴빛이 밝아졌다. 그러면 그렇겠지…

 

그날 리주연은 리정혜라는 녀자가 나이는 서른살이고 남편없이 혼자 산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저녁총화시간에야 리주연은 얼굴이 컴컴해있는 장혁수와 마주앉았다. 장혁수는 자기때문에 공사장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고 생각해서인지 풀이 죽어있었다.

 

《현장책임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어깨를 떨구고 다니면 삐라를 뿌린 놈들이 좋아한다는걸 모르오? 쥐새끼같은 놈들이 쏠라닥거린다구 대장부가 그게 뭐요? 점심까지 건느면서…》

 

《제가 잘못한거야 사실이지요.》

 

《정말 사람을 때리긴 때렸소?》

 

장혁수는 명덕이와 있었던 일을 간단히 추려서 말했다.

 

《암만해도 난 힘들어서 현장책임자를 못해먹겠습니다.》

 

 

 

장혁수는 맥빠진 소리를 하다가 리주연에게 기대어린 눈길을 돌렸다.

 

《참, 쏘련에서 굴착기가 나온다는게 사실입니까?》

 

심상치 않은 소리여서 리주연은 긴장해졌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그런 말이 돌고있습니다.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돈도 못 주는 형편에서 건설자들에게 로동강도를 높이자고 요구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리주연은 억이 꺽 막혔다.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현장책임자립장이 그렇게 떨떨해서야 어떻게 공사속도를 보장하겠는가.

 

《동문 이 공사를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다 잊었소? 동무가 토성랑사람이 옳긴 옳소?》

 

리주연은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장혁수의 해임문제를 덮어버리려고 했는데 굴착기소리까지 듣고보니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았다.

 


길짱구
들이나 길가에 흔히 나는 여러해살이풀의 한가지. 잎은 뿌리에서 무데기로 나는데 잎줄기가 길다. 여름에 잎사이에서 꽃대가 나와 하얀 꽃이 이삭모양으로 핀다. 씨는 기침약, 설사멎이약으로 쓰이고 잎은 리뇨제로 쓰이며 위병에도 쓰인다. 영양가가 비교적 높은 먹이풀이다. 어린 잎은 데쳐먹을수 있다.
=질경이.

 

뜨다(11)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과정이) 느리고 더디다.

 

인총(1) 
빽빽이 들어선 많은 사람들의 무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29 21:49:20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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