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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새 나라》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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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23 14:4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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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편집국은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33

 

사동역은 이른아침부터 림시통근렬차를 타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였다. 남정들은 누구라없이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꽁무니에는 보자기에 싼 밥곽을 혹처럼 매달고있었다. 홈바닥에는 남정네들뿐만아니라 처녀들과 녀인들도 작업도구를 들고 서있었다. 녀맹에서도 김정숙동지의 발기에 의하여 공사장에 나가기로 했던것이다.

 

《아니, 녀자들도 일하러 간다는거요? 거 희한한데…》

 

《사방에서 치마자락이 펄럭이문 얼이 빠져서 일을 제대로 할가?》

 

《공사판에서야 더우면 벗어내치구 고쟁이바람으로 일하군 하는데 녀자들이 있으면 곤난하군.》

 

남정네들이 심심풀이로 한마디씩 던지는 말을 녀인네들이 듣고 가만있을수 없었다. 몸이 좋은 녀인 하나가 한손을 허리에 얹고 한발 나서며 방금 말한 중년사내에게 기관총처럼 쏘아댔다.

 

《아니? 그 댁에선 아직두 총각행세를 하실려우? 고쟁이바람으로 일하든 홀딱 벗구 일하든 그걸 누가 쳐다나 보겠다구 내우를 해요? 그 나이에 부끄러운 흉내를 내는게 보기 부끄럽수다. 그리구 치마자락 펄럭이문 일 못하겠다는 아저씨! 바람쟁이 아니요? 치마만 보문 삭신이 노그라지는거야 바람쟁이지 뭐겠소? 그래두 우리가 공사판에 나가야 일이 헐해질거우다. 저마다 같이 일하고싶어하지 않나 두고보시우.》 그리고는 제김에 흐흐흐 웃었다.

 

남정들은 괜히 싱거운 소리 한마디씩 했다가 넋살이 떨어지게 얻어맞고도 또 지분거렸다.

 

《아주머니, 과부 아니요? 세차기는…》

 

《그래, 정말 과부라면 오늘중으로 시집보냅세. 아주머니, 말만 떼시우.》

 

남자들이 암만 느물거려도 녀인은 낯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것 참, 알랑한 귀인을 만났수다. 그 댁들은 성인학교두 안다니시우? 우리 녀자들이 해방덕에 변한걸 모르는가 말이우다? 이제 남녀평등권법령두 나온다는데 그때 가서두 녀자들을 깔보면 법에 걸려요.》

 

저마끔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주변을 들썩하게 하는데 대피선에 있던 렬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구내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와 모여들기는 했으나 렬차에 선뜻 매달리지는 못했다.

 

리명덕은 차문이 어디쯤 서겠는가 짐작하고 홈에 바투 서있다가 렬차가 채 멎어서기 전에 날쌔게 승강대로 뛰여올랐다. 역전에 매일 삯짐지러 나가군 한 덕에 그쯤한 요령은 알고있었던것이다. 객차방통은 전차처럼 량옆으로 긴의자들을 붙여놓았었다. 명덕은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도 리건국로력대에 배속되여 공사장에 일하러 나가는 길이였다. 사실은 제가 스스로 나가고싶어 나선것은 아니였다.

 

기림리에 사는 누이도 어제 아버지한테 대접하겠다고 찹쌀 한되를 들고와서 하는 말이 자기네 리녀맹에서도 공사장에 자원출동한다고 했다.

 

그러니 녀자들까지 열성을 보이는 공사에 빠진다는것도 시시한 노릇이고 더구나 로력동원증까지 받았으니 이왕이면 선참으로 제 몫을 해제끼고싶었다.

 

본래 뼈대가 굵어 힘꼴이나 쓰는데다 삯짐군으로 살아온 명덕에게는 그까짓 흙짐이나 지는건 문제 아니였다.

 

출발역에서부터 림시렬차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떠났다. 명덕은 렬차안이 소란스럽건말건 고개를 수그리고 팔짱을 낀채 덤덤히 앉아있었다.

 

자기의 발앞에 다른 사람의 발이 바투 붙어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이지긋한 사람이 앞에 서있었다. 렬차를 처음 타보는지 삽자루에 몸을 의지하고 렬차가 흔들리는데 따라 휘청거리는데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차안의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고있는것만 같아 명덕은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이 두상은 왜 딱 내옆에 서가지구…)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다더니 그 말이 그른데 없었다. 앉아 가는 대가로 마음속 고통을 당하느니보다는 서서 가는게 훨씬 편할것 같았다. 명덕은 자기의 그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어째서 내가 이런데 신경을 쓰게 되였을가? 예전에는 안 그랬던것 같은데…)

 

예전에는 정말 안 그랬었다. 남에게 양보하면 자기만 손해보는 세상에서 양보가 다 뭔가. 해방전에는 그런 생활륜리가 응당한것이였고 누가 탓하는 사람도 없었다. 극상해서 《말세로군.》하고 개탄하면 그만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자기의 리기적인 몸가짐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수 있다고 두려워하게 되였을가.

 

(젠장, 모르겠다.)

 

명덕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설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렬차는 대동강역과 본평양역을 거쳐 어느새에 서평양조차장에 도착했다.

 

렬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조차장다리를 건너 각기 자기들의 작업구역으로 흩어져갔다.

 

아침부터 찌뿌둥해있던 하늘에서 10시쯤 지나자 보슬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이런 을씨년스러운 봄날엔 뜨뜻한 아래목에 엉치를 붙이고앉아 막걸리동이나 축내겠지만 오늘도 공사장에는 사람들이 한벌 덮여있었다. 사람들은 비가 오건말건 성수가 나서 일을 제끼고있었다.

 

《오늘은 일하기가 그저 그만이군. 해가 내려쪼이는것보다 좋거던.》

 

《이런 날에야 일자리가 푹푹 나지.》

 

명덕은 목고를 메고 부지런히 흙을 날랐다. 처음에는 오래간만에 집단로동을 해서인지 재미도 나고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역시 토목로동은 놀음거리가 아니였다. 비에 젖은 땅이 질적거리고 신발에 망짝같은 흙덩이가 매달리군 하니 일은 곱절 힘들어지고 공연히 짜증이 났다.

 

소동은 전혀 별치 않은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공사장에서는 리단위로 작업구간을 맡겨주면 다섯명이나 열명씩 조를 무어 작업량을 정해주기때문에 벌집모양의 구뎅이들이 사방에 생겨났다. 명덕이네 옆에서는 대신리사람들이 일하고있었는데 그 경계선을 이루던 흙담벽이 대신리쪽으로 넘어졌던것이다. 그쪽에서 대번에 신경질이 날아왔다.

 

《이건 뭐야? 당장 치우라구.》

 

그러자 문수리사람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왜 우리보구 큰소리야? 자기넨 상관이 없어?》

 

무너진 토량은 서너㎥ 잘되는데 누구도 그 흙무지에 삽을 박으려 하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문수리쪽에서 시비를 가르자고 나선 사람은 민주당에 소속된 사람이였고 대신리쪽에서 눈을 부릅뜨고 제일 크게 고아대는 사람은 신민당의 당원이였던것이다. 그들은 리유가 없으면 리유를 만들어서라도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릉가르릉거리군 했다. 무슨 일에서나 민주당은 자기나름의 관록을 시위하려 하고 갓 조직된 신민당도 세력확장에 모지름을 쓰던 시기라 민주당이 《산으로!》하면 신민당은 《바다로!》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니 오가는 말이 고울수 없고 어느 쪽에서도 먼저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뭐가 어째? 시시해?》

 

서로 목에 피대들을 돋구더니 허우대 큰 대신리사람이 먼저 멱살을 잡았다. 사태는 점점 험악해졌다. 가만 놔두면 문수리사람이 밀리울판이였다.

 

명덕은 그들이 고아대는것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량켠이 다 미웠다. 그까짓 흙이 몇삽이나 되겠다고 아낙네들처림 쬐쬐하게 논단 말인가. 그중에서도 대신리사람이 더 미웠다. 체통이 크다고 문수리사람들을 깔보는가.

 

명덕은 이런 공사판에 어느 정도 익숙되여있었다. 그는 구뎅이안에 뛰여들며 대신리사람을 콱 밀쳐버렸다. 그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저쯤에 나가넘어졌다.

 

《이자식이, 사람을 쳐?!》

 

넘어졌던 사람이 주먹을 쥐고 달려드는것을 명덕은 발길로 차버렸다. 그렇게 되자 대신리사람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싸움은 불가피한것이였다. 명덕은 자기 목고채를 잡아들었다. 량편에서 몇사람씩 삽이며 목고채를 들고 마주섰다. 이런 판에서는 먼저 공격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약한 구석을 보이거나 주춤거리다간 순식간에 반주검이 될수 있었다.

 

명덕은 목고채를 사선으로 비껴들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그찰나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몰켜선 사람들을 헤집고 장혁수가 구뎅이에 뛰여들었다. 그는 맨앞에서 목고채를 들고있는 명덕에게 사납게 소리쳤다.

 

《그걸 놓지 못해?》

 

명덕은 목고채를 집어던지며 쓰겁게 웃었다. 순간 장혁수는 명덕을 알아보았다. 언젠가 일자리를 달라고 찾아왔다가 돈을 안 주는 공사장에선 일을 안하겠다면서 책임자에겐 가족이 없느냐고 가슴을 허비고 사라진 그 젊은이였다. 장혁수는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명덕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네녀석이였구나. 그래 공사장을 싸움판 만들자고 왔냐? 돈을 안 주니까 그 밸풀이를 하자구 왔어?》

 

장혁수는 우악스런 힘으로 명덕을 흔들어대다가 왈칵 밀쳐버렸다. 명덕은 뒤로 비칠거리며 나가넘어졌다.

 

숱한 사람들앞에서 망신을 당한 명덕은 악에 받쳤다.

 

왜 나보구만 해보는가. 내가 뭘 잘못했는가?

 

장혁수는 명덕을 한대 후려칠듯 주먹을 떨며 소리쳤다.

 

《썩 사라져라! 너같은 자식은 필요없어! 다시한번 그랬다간 죽여버리고말겠다.》

 

《뭐야?》

 

명덕은 리성을 잃었다. 상처입은 자존심이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울뚝밸이였다.) 그의 머리를 휘잡아둘렀던것이다. 그는 집어던졌던 목고채를 거머쥐고 일어섰다. 자기 목숨도 남의 목숨도 하찮게 생각되는 그런 순간이 닥쳐온것이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흘렀다. 그때였다.

 

《명덕아!》

 

녀자의 다급한 웨침소리는 길길이 날뛰던 명덕의 운동감각을 순간에 마비시켜버리는듯싶었다.

 

명덕은 구뎅이우에서 싸리질통을 지고 자기를 내려다보는 누이의 겁에 질리고 원망어린 눈길과 마주치자 맥없이 목고채를 내리워버렸다. 사나운 파도처럼 날뛰던 격한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대신 뜻모를 억울함과 서러움이 밀물처럼 쓸어들어 눈굽에서 찰랑거렸다. 작업장의 팽팽하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명덕의 누이는 그 자리에 서있기가 부끄러운듯 조용히 사라졌다. 장혁수조차도 망아지처럼 날뛰는 명덕을 단단히 혼뜨검내려던 생각을 잊어버리고 녀인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현장에 나와있던 로이문이도 모든것을 낱낱이 지켜보고있었다.

 

작업은 다시 시작되였으나 명덕은 일할 기분이 나지 않아 봉수산기슭의 황철나무밑에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생각할수록 현장책임자라는 사람이 괘씸해서 견딜수 없었다. 전번에는 사정을 몰라서 돈을 안 주는 공사장에선 일을 못하겠다고 가버렸지만 그렇다고 원쑤대하듯 할게 있는가. 한번 밉게 보였다고 무작정 쌍욕을 퍼부어대니 명덕이로서는 억울할수밖에 없었다.

 

(제가 뭐길래 가라말라 하는거야? 체…)

 

밸대로 한다면 훌쩍 가버리겠지만 어쨌든 책임량이라는게 있으니 제 마음 내키는대로 할수 없었다. 또 그렇게 되면 문수리책임자가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겠는데 명덕은 늙으신 아버지가 자기때문에 속을 썩이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웃들이 무던한 로친네라도 데려다놓으라고 권할 때마다 징용갔던 아들이 온 다음에 며느리를 맞으면 걱정없다면서 기림리에 시집간 누이네와 세간을 합치는것도 반대해온 아버지였다.

 

생각은 누이에게로 이어졌다. 손우누이 정혜는 무슨 팔자가 그따윈지 3년전에 시집가서 반년만에 남편을 징용에 떠나보내고 그로부터 반년후에는 사망통지서를 받았었다.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유복자가 생겨서 그 애 하나를 데리고 청상과부로 살고있는 누이였다. 그 누이가 지금쯤 어느 구석에서 못난 동생때문에 속태우고있는것만 같아 명덕의 마음은 편안치 않았다. 그럴수록 시공책임자에 대한 고까운 감정을 금할수 없었다.

 


♦홈바닥 :《플래트홈》의 준말. 홈의 바닥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25 16:43:28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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