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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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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21 05:5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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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21

 

명덕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지르고 스적스적 걸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평양역에 지게를 지고 나와있었지만 렬차운행이 제대로 안되는 때여서 아직 좁쌀 한봉지값도 못 벌었다.

 

동료삯짐군들이 보통강개수공사를 한다고 하기에 공사장에서는 의례히 품삯을 주는줄 알고 갔다가 하마트면 책임자라는 사람과 드잡이판을 벌릴번 한것이다.

 

(오늘은 재수가 없군.)

 

명덕은 속으로 투덜대며 이새로 침을 찍 내쏘았다.

 

하기야 스물다섯해를 살아오면서 재수좋은 날이 몇번이나 있었던가. 명덕의 계산에 의하면 우선 세상에 태여난것부터가 재수없었다. 이렇게 지지리 못살줄 알았으면 애당초 세상에 나오지부터 말았어야 했다. 그다음은 어릴적에 어머니를 잃은것이 불행중의 불행이였다.

 

홀아버지슬하에서 명덕은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잡초처럼 자랐다. 밟히우고 뜯기우고…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다음 또 재수없는것을 꼽으라면 체통이 남보다 큰것이였다. 제 배는 제가 책임져야 했던 세월에 그 큰 배를 무엇으로 채우군 한단 말인가.

 

그 모든 재수없는것들이 그의 성격을 규정해주었다. 리씨가문의 씨가 좋아서인지 명덕은 늘쌍 거친 음식만 먹으면서도 뼈대가 굵어져서 열서너살부터는 골목대장노릇을 했다. 그는 거칠게 성장했다. 싸움질도 하고 때로는 도적질도 하고… 그것이 그의 운명이였을가? 한번은 패거리들과 함께 성안에 들어갔다가 대동문앞에 당책을 펴놓고있는 점쟁이령감과 마주앉은적이 있었다.

 

《내 신수 좀 봐달라요.》

 

령감은 명덕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물었다.

 

《몇살인가?》

 

《열여섯.》

 

손님이 없어 심심해하던 령감은 이 햇강아지같은 녀석이 장난삼아 제앞에 마주앉았다고 생각했었다.

 

《그 나이에 사주팔자를 보겠다니 임자 인생살이가 꽤 힘든게로군.》

 

령감은 붓을 들고 명덕이가 부르는대로 모년 모월 모일 모시라고 적었다. 그리고는 당책을 후르르 번져 적당한 장을 펼쳐놓고 한참 들여다보는척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썩 씨원치 않군. 임자팔자엔 놀러다닐 날이 없어.》

 

《왜요?》

 

《왜라니? 팔자가 그렇다는거야. 세월은 각박한데 체통은 크지 않나. 남보다 큰 배를 채우자면 많이 먹어야겠지? 그러자면 남보다 많이 벌어야겠지? 그러자면 남보다 많이 일해야겠지? 그러자면 남보다 많이 먹어야 할게구.…》

 

점쟁이령감은 명덕에게 패를 지어 몰려다니지 말고 근면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에게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무골충의 인생으로 규정되고말았다.

 

명덕의 뒤에 호위병마냥 울타리를 치고있던 패거리들중의 아이하나가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힘세고 왈패스러운 자기네 대장이 앞으로 대단한 인물이 될줄 알았는데 결국은 죽을 때까지 자기와 같은 하바닥인생으로 살게 되리라는것을 오늘에야 알았던것이다.

 

명덕의 눈찌는 대번에 사나와졌다. 대장의 위신을 떨구는 이런 현상은 허술히 넘길수 없었다.

 

명덕은 벌떡 일어나며 수염쟁이령감앞에 놓여있는 쪽상을 짚신발로 내리찍었다. 네모난 쪽상은 형체없이 박살났다. 그다음에는 돌아서면서 방금 키득거리던 녀석에게 한주먹 안겼다.

 

《재수없게시리.》

 

그런데 더 재수없는것은 그후에도 점쟁이령감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것이였다.

 

특히 배안에서 쪼르륵소리가 날 때면 그때 들어두었던 그 말이 귀안에서 새나오군 했다. 많이 먹어야 하고 그러자면 많이 벌어야 하고… 자기 팔자가 정말 그렇게 규정되여있단 말인가? 그는 서글프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남들처럼 큰 부자가 되자는것도 아니고 밥이나 굶지 말자는건데 세상이 그것마저 모르쇠를 하면 이거야 너무하지 않은가. 그에게는 사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이 단순했다. 그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하루 한끼라도 뜨끈한 토장국에 보리밥 한그릇 때려눕히고 쩝쩔한 건뎅이젓을 찍어먹는것이였다. 그런 날은 재수가 좋은 날이였다.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모든 재수없는것들이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제 나라가 있으면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는것을 그는 오늘까지 모르고 살아왔었다. 해방이 되였다고는 하나 품팔이군인 그에게 밥걱정은 여전하고 재수좋은 날은 별로 없었던것이다.

 

서평양역사 앞마당에는 서너명의 삯짐군들이 지게를 눕혀놓고 마주앉아있었다. 명덕이가 다가가자 그중 나이든 지게군이 성급하게 물었다.

 

《벌써 오나? 그래, 공사를 한다는게 적실하지?》

 

《예.》

 

《하루에 얼마씩 준대?》

 

《돈을 안 준대요, 애국로동이라던지.…》

 

품팔이군들에게는 애국로동이란 말이 귀에 설었다. 그 말의 의미를 대충 짐작들은 하고있었지만 거기에 담긴 깊은 뜻은 알수 없었다.

 

《그러니 그게 해방전 부역과 비슷한게로구만.》

 

다들 그 말이 그럴사해서 덤덤히 침묵을 지켰다.

 

명덕은 여기서 하루해를 다 보낼수 없어 맡겨두었던 지게를 한쪽어깨에 걸쳤다.

 

《난 본역쪽에 가보겠수다.》

 

《거기라구 낫겠나?》

 

명덕은 아무 대꾸없이 떠났다. 거기 가면 혹시 진남포쪽으로 다니는 《히까리》혼합렬차라도 맞다들릴수 있었던것이다.

 

인흥리를 지나던 그는 길옆에 사람들이 몰켜서있는것을 보고 웬일인가 해서 다가갔다. 해방전에 담배전매국이였던 건물의 바람벽에 큼직한 공시문이 나붙어있는데 오가던 사람들이 목을 빼들고 읽어보는것이였다.

 

명덕은 거치장스러운 지게때문에 사람들의 복새통에 끼울수 없었다. 설사 가까이 가본댔자 글을 모르니 읽어볼수도 없었다.

 

《뭐라구 썼어요?》

 

그는 제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나두 잘 모르겠소. 인민위원회에서 방을 붙였다는데 보통강토목공사를 한다던지.…》

 

보매 그 사람도 글을 모르는것 같았다. 그 사람은 궁금증을 못 참겠던지 앞에 몰켜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거 누가 좀 크게 읽었으면 좋겠수다.》

 

《옳수다. 그래야 글 모르는 사람도 알게 아니요?》

 

그러자 몸매가 호리호리하면서도 강기가 있어보이는 고수머리의 젊은이가 나섰다.

 

《내가 크게 읽을테니 다들 조용하십시오!》

 

《조용합시다!》

 

조용해진 가운데 그 젊은이가 격문을 읽었다.

 

《보통강개수공사를 급속히 완수하기 위하여 40만 평양시민에게 격한다.

 

…시민여러분! 나라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동포여러분! 궐기하여 보통강을 개수하자. 삽과 괭이를 들고 보통벌로 나가자.

 

우리의 건설을 방해하는자 인간이든 자연이든 모조리 제거하자.…

 

평양을 지키는 제방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제방이다. 장마철전으로 공사를 완공하기 위하여 건국로력동원을 하자.…》

 

젊은이가 격문을 다 읽고나자 모여섰던 사람들은 와- 하고 떠들어댔다.

 

《이젠 보통벌사람들이 물란리를 면하게 됐구만.》

 

《난 공사가 시작되면 선참으로 나가겠소!》

 

김일성장군님정치가 아니문야 생각이나 해볼 공사요?》

 

《그런데 장마철이 코앞인데 꽤 해낼가요?》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농군차림의 장정이 실없는 소리 한마디 했다가 곤욕을 치르었다.

 

《이 량반은 격문을 듣구두 얼빠진 소리를 하고있어?》

 

《남들은 다 하자고 하는데 어디다 찬물을 끼얹어.》

 

그 말에는 밀짚모자도 가만있을수 없었던지 꽥 성을 냈다.

 

《뭐가 어째? 나두 보통강물란리때 쪽박차고 나앉았던 놈이야! 공사가 시작되문 춤을 추며 달려나갈판이란 말이요!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고…》

 

격문을 읽어주던 젊은이가 나서서 시비를 갈라주었다.

 

《물론 왜놈들이 질질 끌던 공사를 두달동안에 해낸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평양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달라붙으면 얼마든지 할수 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장군님께서 이번에 축지법을 쓰실게 분명하니 우린 장군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옳소!》

 

사람들은 저마다 흥분한 기색으로 주먹을 부르쥐였다. 방금 몰리우던 사람도 남보다 두몫, 세몫 하겠다고 열을 올렸다.

 

명덕은 아까부터 주변의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고 격문을 읽어주던 젊은이만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젊은이가 안해인듯싶은 녀자와 그 자리를 떠날 때에야 명덕은 자신없는 소리로 물었다.

 

《거 성민형 아니우?》

 

젊은이는 뒤로 돌아서더니 명덕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명덕아!》

 

두사람은 길가던 사람들이 보든말든 서로 붙어잡고 돌아갔다.

 

《살아있었구나, 자식!》

 

《형님두 무사했군요!》

 

임성민은 함께 가던 녀인을 명덕에게 인사시켰다.

 

《여보, 인사하오, 해방전에 류치장에 갇혔을 때 사귄 친구요.》

 

복상스럽게 생긴 성민의 안해는 수집은듯 얼굴을 붉히며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명덕이도 낭자를 틀어올린 녀인에게 꾸벅 절을 하였다.

 

《형수님, 절 받으시우.》

 

생각지 않았던 《시아우》한테서 절을 받은 녀인은 입을 싸쥐며 한옆으로 비켜섰다.

 

임성민은 대타령리에 사는 장모가 앓아서 병문안을 갔다오는 길이라고 했다. 부부간의 정이 무척 각별한것 같았다. 임성민은 제잡담 명덕의 팔소매를 잡고 가까이에 있는 음식점으로 끌었다.

 

그들은 해방전에 대동경찰서 류치장에서 낯을 익힌 사이였다.

 

그때 명덕은 장마당에서 왜년의 돈가방을 털다가 붙잡혀왔고 임성민은 평양곡산공장에서 파업을 선동했다는 죄로 잡혀와 재판을 기다리고있었다. 류치장이라는게 감옥으로 가기 전의 중간정류소 비슷한 곳이였다. 말하자면 지옥의 문어구쯤 되는 곳이여서 거기서는 인간성이라고 일컫는 어떤 고상한 감정도 통하지 않았다.

 

그때 잡범들속에 섞여있던 임성민은 제일 어린 명덕을 친동생처럼 위해주었었다. 명덕은 강제로동 3개월이라는 형을 언도받고 먼저 류치장에서 나갔다가 후에 만주로 징용에 끌려갔고 임성민은 1년간 평양감옥에서 옥살이를 했다. 그렇게 헤여져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모르다가 문득 만났으니 두사람의 해후가 반가울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막걸리사발을 앞에 놓고 그간의 회포를 나누었다.

 

임성민에게는 안해와 자식이 있고 온전한 직업이 있었다. 명덕이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있는셈이였다.

 

《난 해방이 돼서야 처음으로 사는 재미를 느꼈네. 장군님께서는 우리같은 로동자들이 공장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하셨거던. 그래서 우린 왜놈들이 파괴한 용광로를 복구해서 제 손으로 쇠물을 뽑았어.》

 

 

 

명덕은 부러운 어조로 물었다.

 

《임금은 얼마나 주나요?》

 

임성민은 명덕의 질문을 탓하지 않았다.

 

《아직은 얼마 안돼. 하지만 우린 돈을 벌자고 건국을 하는게 아니야. 그런데 자넨 어떻게 사나?》

 

임성민은 식탁밑에 벗어놓은 지게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야 뭐… 삯짐이나 지지요.》

 

《조금만 참으라구. 앞으로는 잘살게 될거야. 자네두 품팔이나 하지 말고 공장에 들어가 로동계급이 되라구. 우리 공장에 오겠다면 내 도와주지. 건국을 하는 애국자가 되자면 로동계급이 제일이야.》

 

《애국자요? 내가 무슨…》

 

명덕은 당치않은 소리라는듯 고개를 젓더니 막걸리사발을 기울였다. 애국자란 말이 자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자기가 안중근렬사같은 애국자가 될수야 없지 않는가.

 

그는 애국자가 될 자신도 없었고 또 되고싶지도 않았다. 나라를 사랑했다는 《죄》로 쇠고랑을 차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제눈으로 보면서 그는 불행한 조국을 사랑한 애국자는 막벌이군인 자기보다 더 불행하다는 자기식의 괴이한 《진리》를 발견했었다.

 

막바지인생을 살아온 명덕이에게는 아직 해방이 안고있는 크나큰 의미를 다 리해할만 한 능력이 없었던것이다. 임성민은 아연해졌다. 애국자가 돼야 한다는것을 어떻게 론리적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애국자가 되는데 무슨 리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임성민은 험악한 지난 세월이 제모양대로 빚어던진 정신적기형아를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얼음덩이처럼 차고 이지러진 그의 세상살이태도가 쉽게는 변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반드시 변할것이다. 해방의 따스한 봄바람이, 건국의 뜨거운 열풍이 명덕이라고 그냥 놔둘가 보냐.…

 

그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헤여졌다. 임성민은 명덕에게 지게를 지워주며 곡진하게 말했다.

 

《어쨌든 너두 건국의 앞장에 서야 해.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아닌가. 지금 온 평양시가 보통강개수공사에 대한 소문으로 끓고있어. 자네두 거기 나와보면 애국자가 된다는게 어떤건지 알게 될거야.》

 

명덕은 오전에 거기 갔댔다는 말을 차마 할수 없었다.

 

그는 자기도 동원증을 받으면 공사장에 나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어깨나란히 멀어져가는 임성민네 부부를 부러운 눈길로 바래주었다.

 

명덕이와 헤여진 임성민은 안해와 함께 가루개를 지나 대동교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집이 강건너 선교리에 있어서 아직 갈길이 멀지만 그는 안해를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에 펼쳐진 모란봉의 아름다운 자연속에 잠간만이라도 잠겨들고싶었다. 이미 철 지난 진달래는 신록이 한껏 짙어진 모란봉을 천연색으로 채색할 소임을 다하려는듯 아직도 붉게 피여있고 산기슭에 파아란 주단처럼 펼쳐진 잔디밭에도 노랗고 하얀 이름모를 작은 꽃잎들이 다문다문 박혀있었다. 저 잔디밭우에 안해와 나란히 앉아있느라면 동화의 나라에 온것처럼 느껴질듯싶었다.

 

여태 평양에서 살아오면서도 성민은 모란봉의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운줄 몰랐었다. 하긴 해방전에야 언제 자연을 감상할 여유가 있었던가.

 

성민은 해빛이 재글거리는 잔디밭을 가리키며 안해의 의향을 물었다.

 

《힘들지 않소? 우리 저기에 좀 앉았다 갈가?》

 

《괜찮아요. 가다가 장마당에 들려야겠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안해도 자연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든지 모란봉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아차, 순일이 신발!…》

 

임성민은 오늘 아침 아들 순일이에게 운동화를 사주마 약속했던걸 깜박 잊고있었던것이다. 그는 안해의 검정고무신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운동화를 사고 돈이 좀 남을가?》

 

《왜 그러세요?》

 

《돈이 남으면 당신것두 하나 사자구. 녀자들이 옥색코고무신을 신은게 보기 좋더군.》

 

《아이참… 난 일없어요.》

 

안해는 도리질을 하면서도 복상스런 얼굴에 미소를 함뿍 머금었다. 안해의 행복한 표정을 보느라니 성민의 마음도 봄날처럼 따뜻해졌다. 불행한 두 인생이 한가정을 이룬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부부는 동네사람들이 부러워할만큼 금술이 좋았다.

 

안해에 대한 성민의 사랑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첫아이 순일이를 낳을 때 입심 센 산파가 했다는 말이 재미있었다.

 

《에그, 녀편네 신음소리가 그렇게 애처로우면 만들기는 왜 만들었누?》

 

제정신이 아니였던 성민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

 

《다시는… 다시는…》

 

그 말이 동네에 퍼졌지만 사람들은 성민을 놀려주지 않았다. 정말로 그는 아이가 더 생기는것이 두려웠다. 제입 하나 건사하기도 어렵던 때여서 자식을 낳기도 힘들었지만 키우기는 몇배 더 힘들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해 겨울, 그날은 전선줄이 추위를 하소하며 윙윙 울고 눈보라가 살을 에이는 섣달 그믐날이였다. 성민은 아침도 못 먹고 하루종일 기대앞에서 땀과 기름을 짜내다가 녹초가 되여 집으로 돌아왔다. 래일은 설날인데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마치 구실 못하는 세대주가 무슨 체면에 찾아드는가고 랭기를 풍기는듯 썰렁한 기운이 그를 맞아주었다. 땔감이 떨어져 어제 저녁부터 불맛을 못 본 구들은 얼음장같았다. 안해는 낳은지 한달밖에 안되는 어린 자식을 꼭 품어안고 기척없이 누워있었다. 누데기뭉치같은 이불을 들추면 체온으로 덥히고있는 온기가 빠져나갈가봐 남편이 들어와도 일어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갓난아이도 이 집안의 유일한 열원인 엄마품에서 떨어지면 얼어죽는다는것을 본능적으로 알고있는듯 눈 못 뜬 강아지처럼 엄마 젖가슴에 딱 달라붙어있었다. 하지만 변변히 먹지 못한 안해가 무슨 젖이 나오겠는가.

 

이밤의 추위를 강조하는듯 문풍지가 붕붕 울고 양철지붕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는 음산한 저녁이였다. 성민은 추위때문이 아니라 이러다가는 자식을 죽이겠다는 생각에 뼈가 저려들어 벌떡 일어섰다.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생활전체에 대한 울분이 대동맥을 흐르는 피와 합류하면서 온몸을 끓게 하였다.

 

말없이 집을 나선 성민은 대동교를 건너 외성혈액은행으로 달려갔다. 그가 안해와 자식을 위해 할수 있는것이란 자신의 육체를 소모시키는것뿐이였다. 피를 판 돈으로 얼마간의 쌀과 나무 한단을 사들고 다시 대동교를 건너오던 그는 정신이 아찔해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맵짠 칼바람은 다리우에 맥없이 앉아있는 성민을 날려보낼것처럼 기승을 부렸다.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눈을 뜨기도 힘들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성민은 자기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내심의 물음에 대답할수 없는것으로 하여 더 숨이 막히는듯싶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이제 당장 대동강에 떨어지고말가? 그럼 안해와 자식은?…

 

지겨운 삶을 아예 끝장내버리고싶던 그 순간에 마침 다리를 건느던 사람이 웬일인가 해서 다가왔다.

 

《여보시오!》

 

《…》

 

《어서 일어나오. 이렇게 앉아있다간 얼어죽소.》

 

그 사람이 바로 장군님의 령도밑에 평양지방에 파견되여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던 리주연이였다. 성민으로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은인을 만난셈이였다. 리주연은 성민을 부축하여 집에 데려다주었고 가슴을 탕탕 치며 세상을 저주하는 그에게 새삶의 의욕을 돋구어주었다.

 

《동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한탄만 하지 말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야 하오. 성민동무! 그 주먹을 더 단단히 틀어쥐시오.》

 

일찌기 아버지를 잃고 열네살부터 소년로동으로 잔뼈를 굳혀오면서도 로동계급의 존엄과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성민은 그때부터 리주연이 지도하는 혁명조직에 망라되여 목숨을 내대고 싸웠다. 해방후에는 일본놈들로부터 공장을 지켜냈고 첫 당세포의 당원이 되였다. 그때부터는 지난날 자신없었던 생활의 모든것에 자신심을 가지게 되고 행복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그는 증산투쟁에서 누구보다 앞장에 섰고 곡물선전사업과 토지개혁때에도 농촌에 파견된 로동계급답게 일을 잘했다.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일은 다 자기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것이고 장군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면 매사에 틀림없다는 믿음이 그에게 불같은 열정을 안겨준것이다.

 

사창장마당입구에 들어서니 풍로를 걸어놓고 지짐부치는 냄새, 군밤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사방에서 싸구려를 웨치며 북적대는 소리가 귀를 메게 했다.

 

평양성안에서도 제일 크다고 하는 사창장마당에는 농토산물같은건 말할것도 없고 일상 생활용품도 없는것이 없었다. 어떤 때는 용도조차 애매한 외국상품까지 잡화매대에 한자리 차지하는가 하면 고려청자기나 발톱이 생생한 범가죽까지 나타나군 해서 서울의 륙주비전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장거리로 소문이 났었다.

 

임성민은 붐비는 사람들속을 헤집고 신발매대로 찾아갔다. 차일을 쳐놓은 신발매대도 너덧군데나 되였다. 머리에 허름한 중절모를 올려놓은 갱핏한 중년사내가 장사군의 예민한 감각으로 신발사러 오는 사람들을 영낙없이 붙잡군 했다.

 

《한컬레 사시우. 막눅거리웨다.》

 

성민은 다른 매대를 구경할새없이 첫 매대에 붙잡혔다. 널직한 매대에는 오른쪽에 운동화와 지하족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왼쪽에는 고무신들이 남녀별, 문수별, 색갈별로 놓여있었다.

 

안해는 아이들의 흰색운동화를 골라들더니 보퉁이에서 한뽐 될가말가한 막대기를 꺼냈다. 아침에 아들애의 발기장을 잰 막대기였다.

 

《꼭 맞군요. 이거 얼마예요?》

 

《3원만 내시우.》

 

안해는 물론 성민이도 약간 의아해졌다.

 

《그렇게 눅어요?》

 

《본전만 받자는거우다.》

 

《그건 왜요?》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 이제 며칠 있으면 소비조합상점이라는게 생겨난답디다. 그럼 우리같은 장사군들이 뭘 하겠수? 그래서 나두 전에 받아두었던 상품이나 본전에 처리하고는 건국사업을 해보자는거우다.》

 

신발장사군은 생김새나 체통을 봐선 인심이 넉넉할것 같지 않은데 보기와는 딴판이였다.

 

임성민은 운동화매대에서 물러나 고무신을 쌓아놓은 곳으로 다가갔다. 속으로 돈계산을 해보니 안해의 옥색코고무신도 넉근히 살수 있었던것이다. 가장자리에 흰색으로 테를 두른 옥색코고무신은 볼수록 탐이 났다. 지금껏 짚신이나 검정고무신밖에 신어보지 못한 안해가 저걸 신으면 얼마나 곱고 산뜻해보일가.

 

임성민은 안해에게 맞을만 한 고무신을 고르다가 무심중 옆에 차려놓은 철물매대에 눈길을 돌렸다. 웬 사람이 삽 한가락을 골라들고 재질을 가늠해보며 하는 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던것이다.

 

《삽날이 챙챙 소리를 내는걸 보니 쇠가 참 좋수다. 얼마라구요?》

 

《5원이우다.》

 

《그럼 두가락을 주시우. 그런데 쌀값에 비하면 너무 눅은것 같수다. 그러다가 장사밑천 털리지 않겠수?》

 

번대머리 철물주인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나로 말하면 평생 돈을 쫓아다닌 사람이우다. 말하자면 돈을 잡는 방법을 좀 알지요. 하지만 손님두 보통강개수공사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겠지요?》

 

《그래서요?》

 

《장사군이라구 돈만 아는줄 아시우? 요샌 너두나두 공사장에 나간다면서 삽을 요구하는데 이때다 하고 값을 올리면 내가 사람이요?》

 

 

 

임성민은 어느새 철물매대에 다가섰다. 삽을 만져보니 정말로 쇠가 좋았다. 보매 평천리 병기공장에서 군수강으로 뽑은 강철로 만든 모양이였다. 그런데… 성민은 아쉬움을 금할수 없었다. 자기도 삽 한가락 사고싶은데 그러면 안해와 아들의 신발을 살수 없었던것이다.

 

성민은 안해쪽을 피뜩 돌아보다가 자기를 주시하는 눈길과 딱 마주쳤다. 안해는 아들의 운동화를 손에 들고있었는데 이쪽에서 하는 소리를 죄다 들은것 같았다. 안해는 잠시 이쪽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운동화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삽이 정말 좋아요?》

 

《좋구만. 우리 공장에서도 아직 이런 쇠는 부어보지 못했소. 이런 삽이라면야 굳은 땅도 문제없지.》

 

《그럼 한가락 사세요. 아무래도 공사장에 나가려면 삽이 있어야지요.》

 

안해는 주저없이 보퉁이를 헤치고 돈을 꺼냈다.

 

《아니, 여보…》

 

《됐어요. 순일이신발은 다음번에 사자요.》

 

안해는 남편의 마음을 다 안다는듯 생긋 웃어보이며 보퉁이에 삽을 싸들었다. 그리고는 제먼저 남편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이젠 가자요.》

 

성민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 정황에서는 어떤 설명도 필요치 않았던것이다. 그저 안해가 여느때없이 더 소중하고 더 사랑스럽게 안겨올뿐이였다.

 

장마당을 나와서야 성민은 안해에게 한마디 했다.

 

《여보, 고맙소.》

 

《고맙긴요.》…

 

다음날 임성민네 공장에서도 보통강개수공사에 돌격대를 무어 내보내는 모임이 있었다. 너도나도 공사장에 나가겠다고 쇠장대를 다루던 구리빛팔뚝을 높이 쳐들었다. 그 모임에서 임성민은 평양곡산공장 돌격대장으로 임명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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