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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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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10 23:5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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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새 나라》

 

1

 

봄이다. 사람들에게 류다른 신생의 환희와 희망을 안겨주는 해방조선의 첫봄이다.

 

오성재는 보통강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자기 밭머리에 한낮이 되여오도록 앉아있었다. 보통벌농민인 그가 분여받은 제땅에 나와있는것은 응당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고 볼수 있겠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나무등걸처럼 그냥 앉아있는거며 볕에 탄 흙빛얼굴에 잔뜩 시름겨운 표정을 짓고 자주 한숨을 내부는것은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듯싶었다.

 

주변에는 고즈넉한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엊그제 경칩을 바래우긴 했으나 아직은 한낮에도 쌀쌀한 기운이 가셔지지 않았고 음달에는 잔설이 웅크리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양지쪽에서는 겨울이 물러갔는가를 살펴보려는듯 새싹들이 조심조심 땅우에 얼굴을 내밀고있었다. 이제 며칠 더 있으면 저기 봉수산이며 창광산, 해방산기슭에는 개나리며 진달래가 다투어 피여날것이고 겨울을 이겨낸 만물이 땅껍데기를 비집고 나와 대지에 푸른빛을 떨칠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양지쪽에서 냉이며 달래 같은것들만 살그머니 얼굴을 내미는데 그나마 냉이캐러 나온 어린 처녀들의 눈에 걸려들기만 하면 끝장이다. 호미자루 쥔 손들이 어찌나 영악스러운지 암만 땅속깊이 박혀있어도 뿌리채 뽑아내기때문이다.

 

오성재는 대타령벌이며 서성리벌에서 냉이를 캐느라 언뜻거리는 조그마한 형제들을 쪼프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전같으면 벌판에 냉이캐러 나온 녀인들이 한벌 널렸겠는데 그래도 올해 봄은 해방덕분에 형편이 좋은셈이다. 시내에서는 로동자, 사무원들에게 이달부터 식량공급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에 나라에서 땅을 주었으니 올해부터는 농민들도 잘살게 될것이다.

 

생각이 땅에 미치자 오성재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였다. 땅에 대한 생각만 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군 한다. 오성재가 서성리벌에 전답 4천평을 분여받고 표말을 박은게 열흘전이였다. 보통벌대지주 구문선의 소작농이였던 자기에게 평생 소작으로 얻어부치던 그 땅이 제것으로 차례진것이다. 집이라고 할수 없는 토성랑움막에서 마소처럼 살아온 오성재로서는 자기 인생에도 기뻐서 울 일이 생기고 자기자신이 기뻐서 울고웃을줄 아는 사람이라는게 신기할 지경이였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오성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매일같이 밭에 나와앉아있느라면 그 땅때문에 피땀을 흘리던 눈물겨운 지난날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군 했던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장마철에 시뻘건 흙탕물이 밭머리어방을 적셔놓고 물러가면 다행이지만 키높이 자라던 수수밭을 잠그어버릴 땐 오성재의 눈물도 그만큼 강을 이루군 했었다. 다 먹게 되였던 수수농사를 망치고 온 한해 기근에 시달리는것은 둘째였다. 제일 무섭고 억이 막히는것은 땅이 못쓰게 되는것이였다.

 

4년전 홍수때에도 그랬었다. 숱한 인명을 집어삼키고 숱한 집들을 집어삼키고… 숱한 사람들을 한지에 나앉게 만든 그해 물란리에 오성재도 두 딸을 잃었다. 한밤중에 움막의 거적문밑으로 쓸어들어오는 흙탕물, 미리 꿍져놓았던 가산을 이고지고 다섯식구가 서로서로 손을 잡고 사품치는 물속을 헤쳐가던 그날… 캄캄칠야를 헤가르며 번개가 치고 하늘땅을 찢어발기는 굉음이 마음속의 공포를 더해주었다.

 

대줄기마냥 억수로 쏟아지는 비발속에서 《엄마!》, 《아!…》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에 뒤돌아보니 가운데 서있던 두 딸의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상순아! 하순아! 얘들아!-》

 

허나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들려오는것은 무시무시한 물소리뿐이였다. 이불보따리를 물우에 집어던지고 허둥지둥 그쪽으로 헤염쳐갔으나 세찬 급류에 휘말리운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아!-》

 

그게 다였다. 무서운 자연의 힘앞에서 오성재가 할수 있었던 유일한 반항은 캄캄한 허공을 주먹질하며 목터지게 웨친 외마디 비명소리뿐이였다. 그렇게 가슴아픈 일을 당하고도 울고불고 할새 없었다. 보통강에 범람하던 큰물은 서평양일대에 막대한 재앙을 끼치고서야 자기 힘을 과시한게 만족한듯 서둘러 물러가버렸다. 물이 찐 보통강주변은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토성랑움막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곡성, 허물어진 움막앞에 손맥을 놓고 나앉은 사람들, 강기슭에 너저분하게 널린 온갖 허접쓰레기들, 강류역의 경작지들에 한뽐도 넘게 쌓인 감탕…

 

오성재는 흙모래에 묻혀버린 소작지밭머리에서 너무도 기가 막혀 맥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이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감탕에 묻힌 수수대들중에서 파아란 이파리 몇개가 바람에 한들거리면서 숨막혀 죽겠으니 어서빨리 일으켜세워달라고 몸부림치는듯싶었다.

 

오성재는 그 수수대보다 자기가 더 숨막히는것 같았다. 밭이 이 모양 되였으니 올겨울 농량걱정은 둘째치고 지주의 성화를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아닐세라 지주 구문선은 소작료를 탕감해줍시사 하고 허리를 굽히는 오성재의 머리우에 개화장을 휘둘렀다.

 

《네놈이 맡았던 땅이니 네놈이 원상대로 복토해놔라. 그전에는 죽지도 못할줄 알아!》

 

지주의 손에 온 가족의 생사여탈권이 달려있으니 감히 거역할수도 없었다. 그는 안해와 함께 지게를 지고 그 땅을 되찾느라 해를 보내군 했다. 집에는 아홉살 어린 아들이 해종일 주린 배를 움켜쥐고 부모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자식 여섯을 굶겨죽이고 물란리에 잃고 남은것이 그 애 하나뿐이였다.

 

어느날 저녁 늦게 돌아와보니 아들이 죽었다. 이게 무슨 변이냐? 움막앞에는 수해때 떠내려오던 물독 하나를 건져놓은것이 있었는데 아들이 그 안에 꺼꾸로 박혀있었던것이다. 독을 눕혀놓고 뻣뻣해진 아들을 꺼낼 때 보니 개구리 서너마리가 사방으로 달아나는것이였다. 아마도 아들은 배고픔을 달래다 못해 그 개구리를 잡으려고 독에 몸을 기울였다가 그만 손을 놓치고 반나마 차있던 물에…

 

여직껏 살아오면서 남의것을 탐내본적이 없었는데 난생처음 임자없이 떠내려가는 물독에 욕심을 냈다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식마저 잃은것이다. 안해는 통곡소리도 못 내고 기절해버렸다.

 

오성재는 단말마적인 노성을 터뜨리며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들고 저주로운 독을 박살내버렸다. 아, 하늘도 무심쿠나!

 

허나 다음날은 또 소작지를 살리려 지게를 지고 나서야 했으니 이것이 그의 운명이였다. 돌이켜보면 땅은 그에게 기쁨과 행복보다 슬픔과 재난을 더 많이 가져다주었었다. 그래도 그는 그 땅을 떠나지 못했다. 떠나고싶어도 갈곳이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해방이 되여 지주놈은 도망치고 오성재는 그 땅의 주인이 되였다. 지금 오성재가 고민하는 리유가 거기에 있었다. 해방이 되였다고 해도 해마다 겪던 물란리를 피할수야 없지 않은가. 그럼 앞으로도 그 땅때문에 울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제땅을 가지게 된것은 말할나위없이 기쁘지만 홍수피해때문에 근심이 가셔질 날이 없을거라고 생각하면 기쁨은 물러가고 마음이 무죽해지군 했다. 그렇다고 나라에서 주는 땅을 안 받을수도 없고…

 

오성재는 멍청한 눈길로 보통강을 바라보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이 요즘은 사방에서 흘러드는 눈석이물에 수위가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소리없이 얌전하게 흐르고있었다. 언젠가 지나가던 풍수쟁이가 하는 말이 보통강은 우불구불한 모양새가 신통히 룡의 형국이라고 했는데 오성재도 그 말이 그럴듯 하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하도 물란리를 겪고 자식들을 죽인 다음부터는 보통강이 룡의 모양이 아니라 돼지밸을 마음대로 헤쳐놓은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저렇게 얌전한 새색시처럼 소리없이 흐르는듯마는듯 하지만 일단 장마가 들면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즉 홍수피해를 뻔히 내다보면서 그 땅을 맡아안는다는게 오성재로서는 암만 해도 자기를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예전에는 땅의 주인인 지주에게 매달려사는 처지여서 소작이나마 얻어부치는것을 다행으로 알았지만 이제야 자기가 땅의 주인인데 아무거나 무턱대고 받아안으면 그게 바보노릇이 아닐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성재는 더이상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는 무릎을 짚고 움쭉 일어서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농촌위원회에 찾아가선 뭐라고 말할가? 이 땅은 안 가지겠다고?… 안되지, 그럼 어쩐다?)

쉰고개를 가까이 살면서 오성재는 한번도 자기 주장을 고집해본적이 없었다. 모든것에 수긍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어질고 순박하기만 한 그에게는 농촌위원회에 찾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울수 없는것이였다.

 

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었다. 이건 땅문제이다. 농군이 죽고사는 문제이다! 많이 굶어본 사람은 땅의 금새를 잘 아는 법이다. 드디여 용단을 내린 그는 마지막한숨을 길게 내불고나서 끙 하고 일어섰다. 허름한 덧저고리소매에 두팔을 엇갈아끼우고 서성리농촌위원회를 향해 천근처럼 무거운 발을 내디디였다. 큰길에 나서서는 자기의 결심이 달라지기 전에 당도하려는듯 걸음을 다그쳤다.

 

서성리농촌위원회는 경의본선과 평남선이 갈라지는 당칠동에 자리잡고있었다. 해방전 왜놈군대의 련병장이 자리잡고있던 봉지동의 넓은 공지를 지나는데 점심고동소리가 철길너머 본정거리쪽에서 울려퍼졌다.

 

오성재는 더 조바심이 나서 눈앞에 보이는 ㄱ자형기와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농촌위원회 위원들은 점심고동소리를 못 들었는지 떠들썩하게 이야기판을 벌려놓고있었다. 하긴 요즘은 농민들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혼자 길을 가면서도 싱글벙글 웃는 세월이라 점심때를 잊을만도 했다.

 

《계시우?》

 

미닫이문이 열리며 오성재네와 이웃해서 사는 리재익이 밖을 내다보았다.

 

《성재 이 사람, 웬일인가? 어서 들어오게.》

 

오성재는 자기 집사정을 잘 아는 리재익이 이 자리에 앉아있는게 반가왔다. 그는 조심스레 방안에 들어갔다. 알싸한 써레기냄새가 코구멍을 간지럽혔다. 방안에는 너덧명의 농촌위원회 위원들이 둘러앉았는데 무슨 심중한 론의를 하댔는지 표정들이 심각했다.

 

《어떻게 왔나?》

 

리재익이 묻는 말이였다.

 

《저, 그저… 뭐… 회의를 하댔으면 난 그만…》

 

 

오성재는 방안의 분위기에 눌리워 말을 더듬으며 문가로 돌아섰다.

 

《아닐세, 자네가 있어도 일없네. 앉아서 몸이나 녹이라구.》

 

농촌위원회 위원장이고 제일 년장자인 당칠동의 박령감이 대통에 담배를 다지며 성재를 만류했다. 성재는 허리를 구붓하고 한쪽 구석에 놓인 화로옆에 쭈그리고앉았다.

 

《그래서 말이네.》

 

박령감은 화로에서 부저가락으로 숯불을 집어 담배를 붙이고서야 하던 말을 계속했다.

 

《지금 전국각지에서 농민들이 김일성장군님께 땅을 주셔서 고맙다는 감사편지두 올리는데 우리라고 가만있을수 있겠는가 하는걸세.》

 

《안되지요. 왜정때야 그 잘난 소작지두 떼울가봐 지주한텐 물론이구 마름한테까지 푼전을 털어바치군 했는데 사흘갈이땅을 거저 받구두 입 씻고있으면 그게 무슨 사람이겠소.》

 

옳수다. 어제두 평북도에서랑 황해도에서랑 장군님께 올린 감사편지가 신문에 또 났습디다. 그런즉 우리야 장군님가까이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니요? 평양농민이면 무슨 일에서나 선봉이 돼야지요.》

 

리재익은 평양농민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그의 말에 공감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서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 감사편지를 올리는것으로 의견들이 합쳐지고 그 거사를 실행하기 위한 일감들이 분담되였다. 감사편지의 내용은 어떠어떠해야 하며 농군들의 머리만으로는 어려우니 식자있는 누구누구를 청해다가 편지의 초고를 잡아보게 한다는것, 누구를 장마당에 보내여 제일 좋은 먹과 비단을 사오게 한다는것, 누구누구가 편지를 가지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 찾아간다는것 토론은 끝이 없었다. 오성재도 자기가 찾아온 목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들의 토론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설사 잊지 않았다 한들 이런 정황에서야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점심시간이 퍼그나 지나서야 박령감이 재털이에 대통을 딱딱 털며 일어날 차비를 했다.

 

《이젠 얼른 집에 가서 한술씩 때구 분담 맡은대루 움직입세.》

 

모두들 주섬주섬 일어섰다. 오성재도 어쩔수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문밖을 나서려던 리재익이 문득 오성재에게로 돌아섰다.

 

《참, 자네 왜 왔댔나? 일이 있으면 말하라구.》

 

오성재는 황황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우다. 그저 지나가다가…》

 

리재익은 고개를 기웃거리면서도 더 캐묻지 않고 퇴마루로 나섰다.

 

그 순간 멀리 남쪽하늘에서 둔중한 봄우뢰소리가 울려왔다.

 

우르르릉-

 

올해의 첫 우뢰소리였다. 토방에서 신을 찾아신던 사람들은 저도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메아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한번 우뢰가 터졌다. 처음보다 더 큰 우뢰소리였다.

 

꾸르르릉-

 

그 우뢰소리는 오성재에게 자기가 여기에 왔던 리유를 상기시켜주었으나 그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전률이 온몸으로 쭉 지나가는통에 입이 얼어붙고말았다. 오성재만이 아니였다. 보통벌사람들에게 있어서 봄우뢰소리는 지나간 악몽의 메아리였고 닥쳐올 재난의 전주곡이였다.

 

봄우뢰소리는 농군들을 들판으로 부르는 소리라지만 보통벌농민들만은 그 우뢰소리를 무서워하고있었다.

 

한참만에야 누군가가 마당에 내려서며 탄식조로 말했다.

 

《어허, 올해 장마는 또 어떻게 겪을고…》

 

《봄에 첫 우뢰가 울어서 백날이면 장마가 진다는데 올해 장마는 좀 일찍 오려는가보군. 왜놈들이 공사를 한다고 온통 파헤쳐놨으니 장마만 지면 영낙없이 물란리를 겪겠는데.》

 

《요새 우리 집 처마밑에 제비가 둥지를 트는걸 보니 짚검불이 너슬너슬한게 올해 장마는 되게 겪어야 할가봅니다.》

 

항간에서는 제비가 둥지를 틀 때 겉면에 짚오래기가 너슬너슬하면 큰 장마가 지고 미끈하면 가문다고들 했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오면 제비들이 집을 짓는것을 지켜보며 자기들의 한해운수를 점치는것이 토성랑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풍습으로 굳어져있었다. 저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소리에 증이 났던지 박령감이 해진 지하족으로 토방들을 탕 구르며 마당에 내려섰다.

《방정들은 그만 떨게. 장마를 못 겪어본 사람들같군.》

 

박령감에게는 방금전의 활기를 잃어버리고 우뢰소리 한번에 서리맞은 상들을 하는것이 언짢았던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서도 방금전의 우뢰소리가 사라지지 않고있음을 누가 모르랴.

 

모두들 고개를 짓수굿하고 대문가로 향했다. 박령감은 찌꿍- 하고 대문을 밀다가 뒤에서 오는 리재익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자넨 언제 토성랑까지 갔다오겠나. 집에 가야 진수성찬이 있는것도 아닐텐데 우리 집에 가서 한끼때자구. 성재 자네도 같이 가세.》

 

《됐수다. 형님집이라구 뭐가 있어서 또 군불을 때게 하겠소. 내 성재 저 사람이랑 동무해서 넘어가겠수다.》

 

리재익이 사양했으나 박령감은 한사코 팔소매를 놓지 않았다.

 

《뭐가 있어서 가자는건 이닐세. 그저 해방떡(만주콩으로 빚은 콩떡) 몇개하구 동치미 한쪽이면 되지. 자네가 가면 우리 로친네가 막걸리 한사발이야 걸러주겠지.》

 

《허, 막걸리까지 있다면야 가야지요. 안주인이 령감님대접에 극성인 모양이우다.》

 

박령감은 그 말이 싫지 않은듯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 당연하지. 해방전엔 못했지만 이제는 내가 가장구실을 하니까. 그나저나 장군님 령을 받들구 땅을 노나주는 농촌위원회 위원장이 아닌가. 그러니 벼슬로 말하면 옛날 구장이나 면장따위에 대겠나? 흐흐… 해방덕분에 나두 사람대접을 받는것 같네.》

 

사람들은 우뢰소리에 받았던 여운을 다소나마 털어버리고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흩어져갔다.

 

오성재는 자기 집에 가자는 박령감의 권고를 사양하고 남포쪽으로 가는 큰길로 방향을 잡았다. 보통강개수공사장에 나가있는 장혁수를 만나보고싶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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