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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환 재스위스동포의 빛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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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1-28 23: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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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환 재스위스동포의 빛나는 삶

 

윤현일 기자

 

북에서 운영하는 류경 사이트는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의장을 지낸 재스위스동포 최기환선생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였다.

 

기사에 의하면 최기환 동포는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 서독으로 유학을 갔다가 1967년 동베를린간첩사건으로 곤욕을 치루었고 1983년 처음으로 북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후 스위스로 돌아온 후 출판사업에 전념하였다. 

 

최기환 동포는 1991년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1부의장으로, 1993년 11월부터는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범민련 활동을 왕성하게 하면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접견하였으며 2015년 11월 2일 사망하였다. 북에서는 최기환 동포에게 조국통일상, 국기훈장 제1급, 노력훈장을 수여하고 해외동포애국자묘지에 안치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기사는 "따뜻이 품어주고 보살펴주고 내세워주시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한 사랑의 품속에 안겨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해 애국애족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최기환선생의 빛나는 삶은 통일조국의 력사와 더불어 온 겨레의 가슴속에 길이 남아있을것이다."고 보도하였다. 

 

보도 전문을 소개한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에 안겨 빛나는 삶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전 의장이였던 재스위스동포 최기환선생-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한 사랑의 품속에 안겨 자신의 운명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결합시키고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한 애국애족의 길에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한 사람들속에는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전 의장이였던 재스위스동포 최기환선생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민족의 피와 넋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떤 사회제도하에서 어느 계급과 계층에 속해 있건, 국내에서 살건 해외에서 살건 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결합시키고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최기환선생은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의 식민지통치가 날로 악랄해지고있던 시기인 1929년 9월 1일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태여났다.

 

당시 비교적 부유했던 가정의 덕택으로 대학까지 졸업한 선생은 1954년부터 서울에서 사범학교 교원생활과 서울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정치과 전임강사로 근무하였다.

 

미제가 주인행세를 하고 친미주구 리승만괴뢰도당의 반인민적정책으로 하여 인민들의 원성이 하늘땅에 사무친 남조선의 현실에 혐오감을 금할수 없어 선생은 그 당시 《주간서울》에 시사론평기사를 내군하였는데 이것이 반《정부》적이라고 하여 괴뢰당국의 탄압을 받게 되였다.

 

선생은 1958년 서부도이췰란드 본대학 법정과 류학의 명목으로 저주로운 남조선땅과 결별하였다.

 

1960년에 리승만괴뢰정권을 뒤집어엎고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크게 흔들어놓은 4월인민봉기의 환희와 온 남녘땅을 철창없는 하나의 감옥으로 화하게 한 1961년 미제에 의하여 조작된 박정희괴뢰역도의 5.16《군사정변》은 선생의 민족적량심과 정의감을 흔들어 깨웠다.

 

어떻게 할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공화국북반부처럼 남조선땅에도 외세가 없고 파쑈독재자들이 없는 민중의 새 세상이 올것인가.

 

어떻게 해야 둘로 갈라진 나라와 민족이 하나로 통일될것인가.

 

선생은 맑스, 엥겔스, 레닌의 도서들과 함께 공화국북반부의 서적들을 탐독하며 애국애족의 길, 조국통일의 길을 암중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 류학을 마친 선생은 서부도이췰란드와 스위스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남조선괴뢰정권을 대상으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나날 박정희괴뢰도당이 1967년 대내정치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조작한《동베를린간첩단사건》의 련루자로 괴뢰중앙정보부에 랍치되기도 하였으며 남조선으로 끌어가려는 괴뢰들의 교활한 음모와 맞서기도 해야 했다.

 

그러나 선생은 놈들의 끈질긴 회유와 기만속에서도 도이췰란드와 유럽에 《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와 《한국민중민주련합》을 조직하고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주체72(1983)년은 최기환선생의 인생행로에서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이해 6월에 선생은 그토록 동경하여 마지않던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하게 되였던것이다.

 

근로인민대중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여 누구나 참다운 자주적권리와 행복을 누려가는 사회주의조국의 눈부신 현실을 자기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만민이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 따르는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성을 심장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뜻깊은 조국방문기간에 선생은 조국을 통일하려면 그가 북에 살건 남에 살건 해외에 살건 관계없이 온 겨레가 통일운동에 떨쳐나서야 하며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에 관계없이 각계각층의 모든 동포들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하나로 굳게 뭉쳐야 한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조국통일사상을 뼈속깊이 새겨안게 되였으며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한몸바칠 결심을 굳게 다지게 되였다.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선생은 스위스에 이미전부터 계획하고 하나하나 추진하여오던 민중출판사를 내오게 되였다.

 

민중출판사는 해외동포들과 남조선인민들속에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공화국북반부의 현실을 널리 소개선전하고 남조선괴뢰들의 분렬주의적인 통일방안과 미국의 식민지로서의 남조선의 현실을 까밝히는 책들을 출판하는것을 기본목적으로 하였다.

 

《민주사관의 재정립》이라는 첫 간행물을 낸데 이어 선생은 《한국의 보검 주체사상》, 《6.25전쟁도발자는 누구인가》, 《북반부견문상기》, 《미국의 군사식민지 한국》 등 자기가 직접 집필하고 교정한 수많은 책들을 출판하여 남조선과 세계 여러나라들에 보급하였다.

 

한편 최기환선생은 주체80(1991)년부터 《범민련》유럽지역본부 1부의장으로, 주체82(1993)년 11월부터는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나날들에 최기환선생은 항시 마음속으로만 꿈꾸어오던  커다란 행운을 받아안게 되였다.

 

주체81(1992)년 4월 15일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80돐경축 유럽지역해외동포대표단으로 조국을 방문한 최기환선생은 그토록 흠모하여 마지않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기념촬영을 하고 경축연회에 참가하는 크나큰 영광과 행복을 지니게 되였던것이다.

 

어찌 그뿐이랴.

 

주체81(1992)년 8월 19일 제3차 범민족대회 대표로 참가하여 또다시 어버이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날 제3차범민족대회에 참가한 해외동포들과 담화를 하시면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외세의존을 반대하고 민족자주의 립장에 튼튼히 서서 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해나가야 한다고 밝혀주시였다.

 

최기환선생은 만면에 태양의 미소를 담으시고 조국통일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을 크나큰 감동과 흥분속에 우러르며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 결의를 다지였다.

 

주체83(1994)년 7월 8일.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받들고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리던 최기환선생은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며 전체 해외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 천만뜻밖에도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에 접하게 되였다.

 

도저히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비보에 피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던 최기환선생은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에 조의를 표시하기 위해 조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 수많은 조객들을 맞아 호상을 서시고 영결식과 추모대회를 비롯하여 너무나도 많은 사업을 하셔야 하는 그토록 바쁘신가운데서도 자신의 로고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최기환선생을 비롯한 해외동포조의방문단 성원들이 조국에 체류하는 동안 불편이 없도록 뜨거운 은정과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83(1994)년 7월 1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시 금수산의사당을 찾아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에 조의를 표시한 최기환선생을 비롯한 해외동포조의대표단 성원들을 접견해주시고 기념촬영을 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각 지역의 해외동포조직대표단을 비롯한 해외동포들을 위하여 위로연까지 차려주시였다.

 

너무도 뜻밖에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위로를 받으셔야 할 분은 바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슬픔과 괴로움을 안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하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자기들에게 위로연을 차려주시였으니 최기환선생은 감격에 겨워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을 금치 못하면서 어버이수령님께 다하지 못한 충정을 천백배로 더하여 장군님께 바쳐나가리라 다짐하였다.

 

하기에 조국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어려운 시련의 시기에도 선생은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신념을 간직하고 자립적인 민족경제에 기초하여 일떠세운 주체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고 세계 모든 나라인민들의 희망의 등대이라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진심으로 동경하고 격찬하면서 널리 선전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힘과 노력을 다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위업수행에 바친 최기환선생의 공로를 헤아리시여 조국통일상을 안겨주시였으며 주체87(1998)년 7월과  주체91(2002)년 3월 두차례에 걸쳐 국기훈장 1급을 수여해주시고 주체88(1999)년 9월 1일에는 생일 70돐을 맞는 선생을 조국에 불러 생일상과 함께 로력훈장을 수여해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날이 갈수록 더해만지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왕성한 정력으로 조국통일운동에 전심전력을 다하던 최기환선생은 주체89(2000)년 2월 불행하게도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였다.

 

각일각 자기의 신상에 덮쳐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선생은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사회주의 어머니조국의 품속에서 다난했던 한생을 마무리할것을 결심하고 조국에 영주해줄것을 제기하여왔다.

 

주체89(2000)년 7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기환선생의 조국영주신청을 허락하여주시면서 위암수술을 받은 그가 안해와 함께 조국에 와서 오랜 기간 치료와 함께 보양을 받도록 해주시는 은정어린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받아안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리라!》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건강이 좋아지고 신심과 용기를 되찾은 최기환선생의 가슴속에서는 이 하나의 생각만이 활화산의 용암마냥 뜨겁게 고패쳤다.

 

최기환선생은 조국의 일군들에게 스위스에 돌아가 선전활동을 계속하다가 몸이 불편할 때 조국에 다시 오겠노라고, 그때 영주할수 있게 해달라고 절절히 간청하였다.

 

주체90(2001)년 7월 당시 평양비행장에서는 스위스의 제네바를 향하여 떠나는 두명의 조국일군들이 많은 의약품들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들은 바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기환선생이 병이 악화되여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즉시 제네바로 파견하여주시는 일군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때로부터 여러차례에 걸쳐 최기환선생의 병치료에 필요한 장명약과 홍삼가루, 안궁우황환을 비롯한 귀중한 많은 약들을 보내주시였다.

 

흔히 사람들은 위인의 사랑도 한대에 그친다고 말해 온다.

 

위인이 떠나면 그 후계자들이 사랑을 이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멀리있는 자식을 더 위하는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해외동포들을 뜨겁게 보살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들과 꼭같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최기환선생이 주체104(2015)년 11월 2일 사망하기전 조국이 하루빨리 통일되기를 기원하면서 자기의 유해를 조국에 안치하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에게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도록 해주시고 유해를 보내오는 경우 해외동포애국자묘지에 안치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이처럼 따뜻이 품어주고 보살펴주고 내세워주시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한 사랑의 품속에 안겨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해 애국애족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최기환선생의 빛나는 삶은 통일조국의 력사와 더불어 온 겨레의 가슴속에 길이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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