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기] 내가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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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5 04:3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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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평양
북 류경사이트(http://www.ryugyongclip.com/)에 권대혁 재미동포의 방북기가 실렸다. 권대혁 재미동포는 미국에 살면서 북 탐방길을 통해 보고 느낀 것을 적었다.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 편집국
내가 본 평양
권대혁(재미동포)
나는 한생을 두고 북을 좋지 않게 보았다는것을 숨기지 않는다.
비록 아버지고향이 청진이고 어머니도 함흥태생이지만 나서 자란 곳이 이남이고 지금 살고있는 곳이 서방이여서 그런지 나에게 있어서 북은 생소하고 《어두운 나라》였다.
어릴 때부터 북주민들은 머리에 뿔이 나고 얼굴이 온통 붉은색인 《빨갱이악마》라는 선전속에 살아왔고 지금에 와서는 《기아》와 《빈궁》, 《공포》와 《압박》으로 인하여 《인권사각지대》라는 서방의 언론공세속에 살고있는 내가 북의 진실을 알수 없었던것은 당연한것이다.
그러던 내가 북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 동기가 있다. 그것은 사업차로 자주 다니는 이남에 갔다가 우연히 이미전부터 면목이 있는 같은 재미동포인 신은미의 《통일콘서트》에 참가해서부터였다.
그때 신은미씨는 《나는 보수주의자다. 집안자체가 보수적이여서 어렸을 때부터 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곳은 얼굴이 빨갛고, 호전적이고,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남편과 함께 순수하게 려행을 간것이였다.》라며 자신의 방북소감을 피력하였다.
그는 자기가 다녀온 북에 대해 세계 그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였다. 평양거리에는 사람들이 웃으면서 걸어다니고,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뛰여다니고, 출근길에 지하철은 붐비고, 다른 나라처럼 교회에서 례배도 드리는 그런 곳이였다. 북은 그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있는 평범한 나라〉였을뿐이였다.》라고 자신심을 가지고 말하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호기심을 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침침한 사회》라는 서방의 선전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있는 평범한 나라》라는 그의 말에서 심리적갈등이 시작됐다.
과연 어느것이 진실일것인가?
나는 이 의문을 풀고저 거북스럽지만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들의 태가 묻힌 곳이자 고국인 평양에로의 《탐방길》을 떠났다.
값을 모르는 사람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북에 대한 나의 표상은 서방언론들이 귀따갑게 외워댄 《기아》와 《빈궁》 그자체였다. 비행기안에서 쇠진한 몸을 의자등받이에 기댄채 나는 머리속으로 상상해보았다. 거리를 《방황》하고있을 주민들과 《공포》와 《압박》으로 《어둡고 침침한 그늘》속에 놓여있는 북의 거리와 마을들을.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내 눈앞에 펼쳐진것은 한순간에 내자신을 방황케 하였다.
나의 예상을 뒤집고 눈이 부시게 시원히 뻗어간 활주로에 민족적미감과 현대적미감이 조화롭게 결합되여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보이는 평양국제비행장의 모습이 안겨왔기때문이였다.
차창밖에 흘러가는 평양의 거리와 마을들에는 생의 활력과 랑만에 넘쳐 자그마한 구김새도 없이 활보하는 북주민들의 모습이 비껴왔다.

▲ 창전거리
북에서 창전거리라 일컫는 초고층호화주택구역의 어느 한 집을 찾았을 때 그 집 주부가 하던 말이 지금도 귀전에 쟁쟁하다.
《예? 집값이요? 우린 집값이라는것을 모른답니다.》
믿어지지 않았다. 이만한 호화주택에서 살면서 집값도, 세금도 모르고 살다니?
알고보니 그 집 세대주는 평양양말공장 현장기사였고 내가 만났던 주부도 어느 한 공장의 로동자였다. 갈피를 못잡는 나에게 그 녀인은 사연을 알겠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것이였다. 《국가에서 무상으로 주었답니다. 남편이 일을 잘한다고… 세월이 좋고 시책이 좋으니 걱정없이 살아요. 우린 행복하답니다.》
정말로 믿어지지 않았다. 서방에서는 죽기 전에 제 집 하나 쓰고 사는것이 필생의 소원으로 간주되고있다. 설사 집이 있다고 해도 전기세, 수도세, 토지세를 비롯한 수십종이 넘는 엄청난 값의 가렴잡세로 인하여 인차 자리를 털고 한지에 나앉는 사람들의 수가 부지기수다. 오죽하였으면 언제인가 국제체육경기에 참가한 이남의 한 선수가 1등을 한 후 자신에게 밀려든 기자들의 마이크앞에서 《어머니, 이젠 우리에게도 집이 생기게 됐어요!》라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소리쳤겠는가.
네온등이 눈부시고 눈뿌리를 빼도록 소스라치게 솟아오른 서방의 빌딩들안에 과연 제집이라고 쓰고 사는 사람들이 몇명이나 되겠는지? 아마도 그속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다리밑이나 지하철도, 지하보도 등지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것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만나본 북주민은 집걱정은 고사하고 집값조차 모르고 사는것이였다.
그것뿐이 아니였다.
서방에서는 병이 나면 저축했던 돈으로 관을 사두라는 말이 례사롭게 통한다.
왜, 그만큼 치료비가 엄청나기때문이다.
실례로 내가 살고있는 미국에서의 보통입원비는 5 760US$, 일반피검사는 150US$, 충수염수술은 1만 500US$, 심장수술은 3만US$, 구급환자가 입원하여 수술을 받는 경우는 10만~20만US$의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치료비가 이렇게 엄청나니 가난한 사람들은 병이 나도 병원에 갈 엄두조차 못내고있으며 병이 나면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북에서는 례외였다.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를 방문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유선종양연구소에 있는 첨단의료설비들은 의료설비가 가장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에도 얼마 없는 최신식의료설비였다.
때문에 이런 의료설비로 치료를 받자면 그 값이 너무도 엄청나 서방의 돈많은 부자들도 선듯 주저하는것이다.
그러나 북의 녀성들은 설비 하나값만 해도 고급승용차 몇십대값과 맞먹는 값비싼 의료설비들을 무상으로 리용하고있으며 그러면서도 그 값에 대하여 전혀 생각지 않고있는것이였다.
후에 알게 되였지만 나와 동행한 안내원선생도 자식들이 받아안는 새 교복과 학용품의 값이 얼마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으며 더우기는 대학에 입학한 맏아들이 《등록금》은 고사하고 도리여 나라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있다는것이였다.
참 수수께끼같은 나라였다.
서방세계에 죽음과 세금은 피할수 없다는 말이 있다. 고고성을 터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세금고지서를 달고다녀야 하는 자본주의사회의 불행한 인간들의 처지가 여기에 함축되여있다.
단편적인 실례로 내가 살고있는 미국에는 국민들의 혈세를 짜내기 위한 별의별 법안들이 수없이 많다.
못생긴 말을 타고 거리에 나다니면 위법이고 역한 파냄새를 풍기는 학생들은 학교에 공부하러 갈수 없으며 개앞에서 얼굴을 찡그리거나 개를 모욕하는 행동을 하면 벌금형을 주거나 구속하는것이 미국의 법률이다.
여기에다 려송연세, 비만세와 같은 웃지 못할 세금조항들까지 새로 등장하여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있다.
겉으로는 번쩍거려도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간의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보장해주지 못하고있으며 가난한 사람은 생명은 있어도 생존권을 상실한 인간로보트, 현대판노예로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고있다.
그런데 이북사람들은 먹고 입고 쓰고 사는것은 물론 교육과 보건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적혜택을 받고있으니 지난날 사람들이 그려보던 《유토피아》가 아닐수 없다.
그늘을 모르는 나라
북에 있는 기간 나는 단 한번도 서방에서는 초를 다투며 일어나는 살인, 강간, 강탈과 같은 범죄행위는 물론 그 어떤 소요에 대하여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
더우기 서방에서 매일이다싶이 일어나는 그 무슨 시위나 집회는 물론 반국가적테로행위가 있었다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하였다.
참으로 청신하고 정돈된 사회라는 감각이 나의 온몸을 휘여감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당당히 《기니스기록집》에 올라야 할 특이한 정치적안정을 이룬 나라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본 북녘사람들은 하나같이 락천적이고 활기에 넘쳐있었다.
서방세계가 입이 닳도록 떠들어대는 《어둡고 침침한 곳》이란 전혀 찾아볼수가 없었고 《기아》와 《빈궁》, 《폭력》으로 《비관》과 《타락》에 빠진 사람들은 더욱더 없었다.
서방의 언론들이 그처럼 인이 배기도록 떠들어댄 북의 《렬악한 인권상황》이란 도무지 찾아볼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인권의 천국에 온 느낌만이 더해갔다.
평양육아원, 애육원을 찾은 나는 이에 대하여 더욱 확신하게 되였다.
아이들의 보육과 지능계발, 체력단련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이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되여있는 평양육아원과 애육원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현대적인 시설들로 꾸려져있었다. 이곳을 돌아보는 나는 마치도 선동들이 살고있는 동화속의 하늘나라에 들어선 느낌이였다.
더우기 서방세계에서는 부모도 없고 집도 없는,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존재로 되는 이 어린이들이 그 누구도 꾸밀수도, 가공할수도 없는 맑은 눈동자에 함뿍 기쁨을 담고 부르는 노래소리는 나의 심금을 울리였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
흔히 사람들은 한방울의 물에 온 우주가 비낀다고 한다.
나는 얼마전에 보았던 이남의 잡지에 실린 글이 생각났다.
《도의가 땅에 떨어져 자식이 어머니를 총살하고 정숙한 부인이 남편과 자녀를 버리고 땐스홀에서 란무하고 학생이 선생을 구타하고 사기와 모략이 처세술이 되고 자살은 뉴스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말았다. …현대인은 어떻게 사는것이 옳바른 삶인지 몰라서 방황하며 초조와 불안속에서 허덕이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되였다.》
이남뿐이 아니다. 내가 살고있는 서방세계도 항시적인 불안과 위구속에 살아가야 하는, 부패와 타락이 란무하는 인간생지옥이다.
《자유의 녀신상》은 오늘도 《지쳐빠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라.》고 설교하고있지만 그 녀신상이 딛고있는 대돌밑에는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천대와 멸시, 가난과 기아, 살인, 강탈, 강간과 같은 각종 범죄와 테로행위에 시달리며 신음하고있다.
그곳이 바로 내가 살고있는 《인권표본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인것이다.
비교해보았다. 북과 이남을, 북과 미국을 아니 북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대비해보았다.
과연 어디가 《기아》와 《빈궁》으로 신음하고 《폭력》과 《강권》, 《부패》와 《타락》으로 썩어가고있는가를 말이다.
나는 단 한점의 그늘도 없는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그들의 미래와 북사회의 진모를 보았다.
참으로 북은 그늘을 모르는 밝음의 나라였다.
인권천국을 만든 인덕정치
놀라움과 의문으로 가득찬 나의 거동을 보며 안내원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은 조국방문이 처음이니 아마 모를것입니다.
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도무지 리해할수가 없는 현실이라고 할가. 다 우리 당의 인덕정치가 낳은 숭고한 화폭이랍니다.》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일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한 길에 헌신하시였다, 인간의 생명과 복리를 제일생명으로 여기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을 그 누구도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삼아오신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손해를 보아도 인민을 위한 일에는 아까울것이 없다시며 세상에서 처음으로 무상치료, 무료교육을 실시하시였으며 세금이 없는 나라로 만들어주시였다, 수령님들의 인덕정치를 그대로 이어받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 만난시련을 이겨내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만복을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말씀하시였고 수수천년 이 나라 백성들이 꿈꾸어오던 인민의 리상촌을 꾸리시기 위해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쳐가고계신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북에서 펼쳐지는 인덕정치에 대해 현실을 통하여 감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부르죠아정치가들은 정치의 의미를 술책을 론하는것으로 내놓고 말하고있다. 하기에 서방정치학자들은 《지배권력은 정치의 본질》이라고 력설했고 영국의 쳐칠은 《정치는 국민이 감동할수 있는 고도의 사기》라고 그 사이비철학의 리면을 제나름대로 파헤쳤다.
로베스삐에르의 《덕행의 정치》도, 옥타비아누스의 《시민정치》도, 칸트의 《계몽된 군주정치》도,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치》와 링컨의 《신의 정치》도, 묵자의 《겸애정치》도 결국 권력은 강자의 의사를 조건화하는 힘의 관계라고 제창한 고전정치학설의 변종에 불과한것이다.
여기에 비한 북의 인덕정치는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이 복무하고 복종하는 사랑의 정치, 인덕의 정치이다.
이것이야말로 절대의 정치인것이다.
이런 인민사랑의 인덕정치가 펼쳐지고있는 인민의 락원, 현실속의 무릉도원을 두고 서방의 언론들이 북의 《인권》에 대하여 목이 터지도록 고아대고있는것이 참으로 가소로웠다.
진짜 인권말살지역은 미국과 이남이였다.
인간에게는 사물현상을 보고 듣고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북의 이러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있으며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으려 하고있다.
대동강물이 맑고 대동강맥주가 맛이 있다고 자기가 본것, 느낀것을 그대로 말했다고 해서 《보안법》위반으로 몰아 신은미씨를 강제출국시킨 이남은 말할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동포들의 모임이나 글에 대하여서는 언론에 게재조차 못하게 하고있으며 반북성격의 사기극들만이 특종뉴스로 취급되고있다.
더우기 북에서 온갖 범죄행위를 감행하다가 도주한 《탈북자》들의 가짜《증언》을 근거로 그 무슨 《북인권결의안》이라는것이 유엔무대에서 공공연히 채택되고있는것은 참으로 불의가 정의를 심판하는 행성의 비극이 아닐수 없다.
지금도 서방의 어용나팔수들은 남의 땅을 침략하면서도 그것을 《자유수호》, 《테로근절》이라고 뻔뻔스럽게 지껄이고 부패와 타락이 횡행하는 인간생지옥을 《번영하는 자유세계》라고 자랑하고있다.
글을 마치며 나는 세계의 량심앞에 이렇게 말하고싶다.
북의 인권을 알려거든 서방의 거짓선전에 귀를 막고 북에 가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인권의 지옥이 아닌 참다운 천국을 보게 될것이다.(끝)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10-17 01:54:42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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