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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배강웅 선생 서거 5주기 추모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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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0-13 15:2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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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배강웅 선생 서거 5주기 추모행사

 

 

장선인 기자

 

미주조국통일범민족연합회 주최로 고 배강웅 선생의 가족과 운동권 동지들, 그리고 친지들이 12일 저녁 6시 용궁식당에서 미주범민련 2대 회장이셨던 배강웅 선생 서거 5주기 추모행사를 하였다.

 

하용진 미주범민련 사무국장의 사회로 순국선열들과 조국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다 가신 분들을 위한 묵념을 하였다. 이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이신 현준기 선생과 군사문제연구가 예정웅 선생의 고인에 대한 회고, 김영희 선생이 가족들에게 선물전달, 가족 인사의 순서가 있었다. 또 배강웅 선생의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감상하며 만찬을 하였고 사진촬영을 하였다.

 

현준기 고문의 회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회가 23년 전에 분단국가의 필연적 사업인 조국의 자주 평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막중한 임무를 걸머지고 결성되었다. 그 후 지금껏 남과 북, 해외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 이남의 반북 대결적인 정책으로 인하여 코리아반도에 긴장이 계속 높아가고 있는데 범민련은 줄기차게 이 긴장해소를 위하여 노력해왔다. 불행하게도 사대적이고 반통일적인 이남 정권이 범민련의 숭고한 뜻과 활동을 가로막고 있는데, 이것이 조국의 슬픈 현실이다. 

 

양은식 초대 회장에 이어 2대 회장을 하신 배강웅 선생은 활달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그는 분단조국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지 아니하고 통일조국을 맞이할 포부와 열정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가 민족통일 역사에 남긴 자취가 너무 생생하고, 그의 생애를 통하여 받은 감동이 커서 우리는 그를 잊지 못하고 여기 다시 모였다. 그가 못다 한 일을 우리가 이어받아 다 함께 민족통일운동에 매진하자. 작고하신 배강웅 선생의 명복을 빈다.

 

예정웅 선생의 회고: 1986년 배강웅 선생이 미국에 오셨을 때 처음 만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반독재민주화투쟁 김대중구출운동 등 조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끄셨던 배동호 선생이다. 배강웅 선생도 일본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일본 정부의 추방명령을 받고 1967년 브라질에 이민을 갔다. 거기서 그는 다른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고생을 하였고 사업가로서 자리도 잡았다. 그러나 브라질의 불안한 정세와 자녀교육문제가 걸려서 미국에 이민 왔다.

 

그는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고, 술을 좋아했고, 또 젊은이들과 어울려 토론하기를 좋아하였다. 물론 술값은 대부분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운동권에서 그의 술 마시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뒤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주었고 앞에 나서는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통일운동에 헌신한 만큼 가족들 특히 부인이 힘드셨을 것이다.

 

배 선생은 범민련 미주대표로 평양대회에도 참가하였고 남북 해외의 선봉에서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범민련 연대에 힘을 쏟았다. 나는 그가 보여준 동지적 사랑을 잊지 못한다. 내가 2년간 미국감옥에 있을 때 책 200여 권을 보내주었고 나를 찾아주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났지만 동지에게 보인 그의 사랑과 그의 정신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우리 함께 그의 뜻을 받들어 통일을 위해 힘쓰자.

 

김영희 선생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난초 묵화를 통일운동 뒷바라지로 고생하신 배강웅 선생의 부인 배미진자 여사에게 선물하였다.

 

배강웅 선생에 대해서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참석자들은 아마도 ‘사람을 좋아하시던 분’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특별히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무척 관대하셨다. 그러면서도 불의한 걸 보면 그냥 못 참는 분이셨다. 그리고 뭔가 잘못이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직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런 성품이 잘못된 조국의 현실에 그로 하여금 온몸으로 대들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참석자들은 모두 선생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고 너무 일찍 가셨다고 애석해 하였다. 그리고 통일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반민족 무리를 향해 던지던 선생의 비수 같은 일갈을 그리워하였다. 또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찍은 큰 자국만큼이나 우리 각자의 가슴에 뚜렷이 남겨놓은 그의 인간적인 온기와 동지애를 그리워하였다.

 

현수막에는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는 선생의 사진과 “통일, 우리가 이루겠습니다’는 글이 있다. 민족통일을 이루어 온 겨레가 평화롭게 살기를 뜨겁게 염원하던 그의 뜻을 너무나 잘 알기에 참석자들은 한마음으로 이 글귀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모두 그의 뒤를 따라 통일운동에 매진하여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룰 것을 다짐하였다.

 

 

▲하용진 사무국장

 

 

▲현준기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예정웅 선생

 

 

▲왼쪽부터: 배미진자 여사, 김영희 선생

 

 

▲배선생의 큰 손녀 에쉴리

 

 

▲브라질에서

 

 

▲함께 통일은 우리가 이루겠다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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