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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김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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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0-01 12:0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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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김청 소장

 

 

편집국

 

<조선신보>는 10월 1일 발족한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설립 10주년을 맞아 김청 연구소 소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하였다.

 

김청 소장은 이 연구소의 활동은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이룩해놓은 세계해외교포운동의 모범이 되는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역사에 관한 자료와 기록들을 수집, 정리, 보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집, 정리한 자료에 기초하여 연구를 깊이 하여 일군들과 동포들, 특히 새 세대교양에 도움을 주는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총련중앙직속의 상설적인 연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더 훌륭히 갖추어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전문을 게재한다.

 


 

<조선신보> 전문

 

 

【인터뷰】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김청 소장

 

 

10년간의 성과에 토대하여 새로운 발전을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설립 10돐에 즈음하여 연구소의 결성과정과 그 의의, 10년간의 활동내용 등에 대하여 김청소장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김청 소장

 

-연구소는 어떻게 설립되였는가?

 

10년전에 있은 총련 제20차 전체대회에서는 조국해방 60돐과 총련결성 50돐을 맞으면서 총련중앙 직속의 상설적인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를 새로 설립할데 대하여 결정하였다. 그에 따라 조선출판회관에 사무소를 정하고 2004년 10월 1일에 연구소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연구소의 설립목적과 사업내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는 재일동포들,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력사에 관한 자료와 기록들을 수집, 정리, 보존하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집, 정리한 자료에 기초하여 연구를 깊여 일군들과 동포들, 특히 새 세대교양에 도움을 주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총련이 연구소를 내오게 된데에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따라 선대들이 온갖 곤난과 시련을 이겨내여 이룩해놓은 세계해외교포운동의 모범으로 자랑떨치는 귀중한 애족애국의 유산들, 전통과 업적들을 하나도 허실함이 없이 굳건히 지키고 보존하며 그를 새 세대들이 꿋꿋이 이어가고 더 빛내여나갈것을 바라는 우리모두의 간절한 요구가 담겨져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소가 수집한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였다(05년, 조선회관)

 

 

-  기간 어떤 활동을 벌려왔는가?

 

연구소가 해온 일들은 4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①자료수집에 가장 큰 힘을 넣었다.

 

연구소사업의 첫 공정이라 할수 있는 자료수집은 생각하던것보다 힘들었다. 1949년 9월의 조련해산과 1960년 6월의 조선회관의 방화사건 등 여러 사정으로 력사적자료들이 압수, 소실 당하거나 분실, 분산되여있었다. 가슴아픈 일이였다.

 

우리는 총련중앙의 지도밑에 각급 기관과 일군들, 《조선신보》, 잡지《조국》과 《이어》, 《조선상공신문》 등을 통하여 호소하는 한편 일본의 도서관, 연구기관, 연구자들에게도 협조를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 기간 총련의 각급 기관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250여명이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지금도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여 제공해주거나 우송으로도 보내주고있다. 연구소에서는 귀한 자료들을 제공자의 이름과 함께 등록하고있다.

 

연구소에서는 찾기 어렵던 조련, 민전, 총련결성초기의 자료수집에 힘을 집중했는바 고심끝에 이 시기의 자료들을 적지 않게 도로 찾았다. 현재 2만여점의 자료가 수집되였다.

 

②애국1세분들의 투쟁, 사업체험을 청취하는데 큰 힘을 돌렸다.

 

이 사업은 재일조선인운동의 발자취를 생동한 증언으로 안받침하는것으로서 때를 놓칠수 없는 사업이였다.

 

고령인데다가 건강이 좋지 못한 속에서도 지금까지 90여명의 로간부들이 자신의 체험과 교훈을 후대들에게 전하겠다는 일념을 안고 증언청취에 응해주었다.

 

이 과정에 조련의 해산, 교육사업의 개척기, 로선전환방침에 의한 총련의 결성, 귀국의 실현, 조국통일과 국제친선사업 등 운동의 중요한 고비마다에 자기 령도자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발휘하여 온갖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여 투쟁한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들을 많이 청취하게 되였다.

 

정기연구회의 한 장면

 

③정기연구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연구성과를 알려나가고있다.

 

2006년 2월부터 오늘까지 연구소가 주관하여 조선대학교, 조선신보사,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등의 연구자들로 서한 《재일 100만 동포들에게》, 총련의 결성과정 등을 쩨마로 정기연구회를 46회 가졌다. 연구회에서는 해방후의 재일조선인운동을 조련시기부터 력사적으로 훑어보며 당시에 나선 여러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의 현실과 결부하여 연구분석해나가고있다.

 

④각급 조직들에 《연혁자료》작성을 촉구하고 여러모로 돕기도 했다.

 

이 기간 자기 단위의 애족애국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고 그를 후대들에게 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특색있는 《연혁자료》들이 출판되고 호평을 받고있다. 새 세대들의 힘과 지혜, 재원을 모아 혹가이도와 이바라기, 나까오사까에서 새로 개관한 《동포력사자료관》과 《학교연혁실》 등은 그 산 모범으로 될것이다.

 

이밖에도 총련결성 50돐에 즈음한 사진첩 《총련의 자랑찬 로정》과 편람 《총련》(조선어, 일본어)을 편집, 발행하였다.

 

새로 찾아낸 《민중신문》1945년 10월 15일특별호를 비롯한 출판물들의 일부

 

- 활동과정에서 인상깊이 남아있는 일은?

 

우선 좀처럼 찾지 못하고있던 중요한 자료들을 찾았을 때의 일을 들수 있다.

 

례컨대 1945년도에 발행한 《민중신문》(《조선신보》의 창간당시의 제호)의 10월 15일특집호를 입수했다. 이 특집호는 조련결성대회 2일째 대회장소인 료고꾸공회당(両国公会堂) 2층에서 살포된 신문인바 조련결성준비위원회에 잠입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명단을 폭로하고 그들을 축출하는데 큰 역할을 논 력사적신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두고 《이제 나오지 않을것이다.》고 체념하면 자료는 나오지 않는다는것,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것이다.》고 생각하고 이악하게 찾으면 귀한 자료가 나올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하여 조련중앙기관지 《조련회보》 창간호, 《조련고등학원》, 《3.1정치학원》 개원초기의 수강생명단, 결호로 있던 강제페간직전의 《해방신문》의 10호몫, 《건설통신》창간호, 해방직후에 등사로 찍어낸 조련시기의 교과서 등을 새로 찾았다. 또한 미국의 공문서관에 보관되고있던 귀한 자료들을 찾아낸 례도 있다.

 

그리고 1946년 교동(교직동의 전신)결성대회를 비롯한 포스터, MP의 총검에 맞서는 생활권옹호대회참가자들을 비롯한 사진, 1948년에 GHQ최고사령관 맥아더와 마이켈버거 미8군사령관에게 동포들과 학생들, 일본인사들이 보낸 학교페쇄철회를 요청하는 엽서, 조련이 발행한 《조련수첩》, 조련의 기발 등 실물들도 찾아내였다.

 

- 애족애국운동에 한생을 바쳐온 애국1세들의 투쟁경험과 곡절 많던 생활체험을 직접 들은 감상은?

 

참으로 큰 감명을 받았다.

 

주석님의 직접적인 초청을 받아 공화국창건축하단이 《조각배》를 타고 풍파사나운 겨울물결을 헤치고 조국을 방문하여 접견을 받은 그날의 감격을 체험자에게서 직접 듣게 된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였다.

 

그밖에도 해방직후인 8월말에 조련결성준비위원회의 사무소를 마련하기 위하여 조선총독을 력임한바가 있는 당시의 조선장학회 총재와 직접 담판을 하러 간 사실, 4.24교육투쟁이 치렬하게 벌어진 오사까부청앞공원에서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진 김태일소년을 일본적십자병원에 데려간 투쟁참가자의 체험담, 야마구찌국기게양투쟁때 건 공화국기를 투쟁에 참가한 녀성이 기름종이로 겹겹이 싸서 소중히 포장하여 간수하고있다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조국에 보낼것을 유언으로 남긴 이야기, 1955년 3월에 있은 민전 19차 중앙위원회에서 한 한덕수 조국전선 중앙위원의 연설을 정서한 체험자 등 지금까지 잘 전해지지 않던 일들도 알게 되였다.

 

- 연구소에 대한 많은분들의 지지와 협력이 있었다고 하는데.

 

연구소가 설립된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관심을 돌려주고 해마다 자료를 정기적으로 보내준분, 오래동안 소중히 보관해온 총련의 주요대회, 회의문건을 결호없이 몽땅 보내준 일군, 자신이 몸소 작성한 포스터의 원판(肉筆)을 기증해준 화가, 부친이 소장하던 장서중 500여점의 많은 자료들을 기증해준 유가족 등 우리 연구소에 보관되여있는 많은 자료들은 우리 기관과 일군들, 동포들이 무상으로 보내준것들이다. 오늘도 새로운 자료제공자가 나오고있다.

 

그리고 연구소사업에 요구되는 콤퓨터, 텔레비, 록화기, 비데오촬영기, 사진기 등 기자재들도 동포상공인들의 아낌없는 방조로 갖추어진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보람, 책임의 무거움, 고마움을 느끼며 물심량면으로 방조해준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일해나갈 결심을 더 굳게 하였다.

 

-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하여

 

우리는 연구소설립후 10년간에 이룩한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총련 제24차 전체대회를 향하여 다음 3가지에 주력해나간다.

 

첫째로, 자료수집과 증언청취, 연구해설 등 연구소의 주된 사업에서 뚜렷한 전진을 가져올것이다.

 

둘째로, 연구소의 사업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려나가며 총련본부와 지부, 단체와 사업체들의 《연혁자료》작성 등의 요구에 도움을 주도록 힘쓸것이다.

 

셋째로, 명년에 맞이하는 조국해방 70돐, 총련결성 60돐에 즈음하여 70년간에 걸친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력사에 대한 종합적인 주요일지를 묶은 도서를 새로 출판하도록 할것이다.

 

그리하여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를 충정으로 받들어 총련중앙직속의 상설적인 연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더 훌륭히 갖추어나갈것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0-01 12:10:10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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