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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6〉 사회주의대건설의 일대 번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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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12-04 14:5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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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6〉 사회주의대건설의 일대 번영기

80년대속도창조의 열풍속에 천지개벽된 평양

 

김숙미기자

 

건설이 한창이였던 1988년당시의 광복거리전경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을 함께 모시고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1980년 10월 10〜14일) 에서는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사회주의건설의 10대전망목표가 제시되였다.

 

《천리마대고조시기의 기세로 〈80년대속도〉를 창조하자!》-력사적인 당6차대회결정관철을 위한 새로운 속도창조운동의 불길이 온 나라에 타번진 1980년대는 공화국의 사회주의건설력사에서 특기할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년대였다.

 

석탄, 전력, 건재, 화학, 전자자동화, 농업 등 인민경제 중요전선에서 생산성과가 련이어 이룩되는 가운데 서해갑문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였다. 일대 자연개조사업이였던 갑문건설을 인민들은 자기 기술과 설비, 자재로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시켰다. 갑문이 완공됨으로써 대동강은 대인공호수로 전변되였으며 서북공업지대의 공업용물과 서해안의 넓은 간석지와 논밭에 생명수를 끌어올수 있게 되는 등 경제발전에 큰 혜택과 변혁을 가져왔다.

 

온 나라에 끓어번진 새로운 진군속도, 《80년대속도》창조의 불길은 수도건설의 나날에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1988년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건설현장

 

새 령도자를 모신 환희속에

 

평양의 하늘에 불타오르는 주체사상탑이며 모란봉기슭에 우뚝 솟은 개선문, 거리들에 늘어선 다층건물들, 《공원속의 도시》로 일러지는 아름다운 평양의 현재 모습은 80년대에 형성되였다.

 

새 거리들이 건설되여 낡은 주택거리들이 현대적으로 정리되였으며 도처에 다층주택들이 무수히 솟아올랐다.

또한 현대적거리들에 어울리게 창광원, 빙상관, 옥류관(증축), 평양제1백화점, 청류관, 평양고려호텔,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봉화예술극장 등 인민들을 위한 현대적인 공공건물들이 꾸려졌다.

 

80년대 평양에 건설된 중요대상들은 무려 260여개. 수도를 빠른 속도로 웅장화려한 도시로 변모시킨 대건설공사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직접 진두지휘하시였다.

 

주석님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시려는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70돐을 맞으며 주체사상탑, 개선문을 비롯한 기념비적창조물을 건설할것을 발기하시고 수많은 중요대상건설장을 여러차례나 찾으시여 완공을 위한 과업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장군님을 주석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모신 환희와 격정속에 인민들은 아름찬 과업수행에 떨쳐나섰다.

 

고인수씨

 

지난 50년동안 공화국의 권위있는 설계가로서 수도건설에 기여한 고인수씨(74살, 로력영웅, 공훈설계가, 평양도시설계연구소 심의위원)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건설의 나날을 더듬으며 《궁전설계는 딱 1년 걸렸다. 장군님께서는 공사전반을 지도하시면서 건축에서 꼭 종자가 있어야 한다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종자는 당의 품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설계형성안을 보여드릴 때마다 방향을 주셨는데 장군님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해 여러차례에 걸쳐 형성안을 만들고 장군님께 보여드렸다.》라고 말하였다.

 

고심끝에 완성된 도안이 반원모양으로 된 현재의 건물이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건축물에 관통되여야 할 주제와 사상, 아이들에게 만복을 안겨주는 어머니당의 품을 잘 반영한 설계형성안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아주 잘 지었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고인수씨)

 

김순호씨(70살, 수도건설위원회 평양시건설관리국 전 기사장)는 평양시건설총국(당시) 처장으로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둔 광복거리건설의 첫 삽을 박았던 1986년부터 축전이 개최될 1989년까지의 3년동안 장군님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며 건설을 진행하였다.

 

《우리 건설자들은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건설에 떨쳐나섰다. 그때 당시 우리에게는 물러설 자리가 없었기때문이다. 축전이 평양에서 개최되는데 공사를 어찌 미룰수 있단 말인가. 광복거리를 기어코 기한내 완성해서 세상에 보란듯이 보이는것, 그것은 바로 주석님과 장군님의 권위를 지키는 사업, 다시 말하여 조국의 명예를 높이는 사업이였다.》

 

립체전, 속도전의 투쟁기풍

 

80년대 건설분야의 특징은 옹근 하나의 도시와도 맞먹는 규모의 새 거리들을 통이 크고 대담하게 건설한데 있다. 문수거리, 안상택거리, 천리마거리(2단계) 등이 그렇다.

 

김순호씨

 

김순호씨는 《70년대후반부터 80년대까지 거리를 많이 건설했는데 무슨 개별적인 살림집을 짓는것이 아니라 거리를 동채로 형성하였다. 그래야 빛이 나지 건축물들을 여기저기서 분산해서 건설해서는 통일성을 보장 못한다.》라고 말한다.

 

1989년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건설된 광복거리도 그 하나이다.

 

광복거리건설의 중심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는 손님들을 위한 1만 2,000호의 숙소(살림집)건설이였다.

 

그외에도 규모가 큰 세계적인 축전인것만큼 수많은 대상건설을 하여야만 했다. 축전개페막식을 비롯하여 정치행사들과 문화체육행사들을 진행할 건물들, 체육관과 극장, 회관들, 편의봉사시설들을 그쯘히 갖추어놓아야 하였다.

 

온 나라가 떨쳐나선 실로 방대한 건설이였다.

 

광복거리건설은 평양시건설련맹이 주력량이 되였는데 평양시에서 동원된 건설력량만 해도 무려 2만 5,000여명이나 되였다. 여기에 각 도들에서도 달려온 건설단위들이 합세해나섰다. 김순호씨에 의하면 80년대 당시는 인민군대도 건설에 동원되였지만 그보다 더 많은 근로자들이 건설사업에 동원되였다고 한다.

 

아름찬 과업을 짧은 기간에 수행하기 위해 공사는 80년대에 사회주의경제건설의 모든 부문에서 새로운 투쟁기풍으로 된 립체전, 속도전의 방식으로 벌어졌다.

 

김순호씨는 《공사기일을 무조건 보장하기 위해 설계를 앞세우면서 건물의 조립, 설비의 조립과 배관, 전기공사 등 모든 공사들을 동시에 립체적으로 진행하는 등 머리를 쓰며 여러가지로 공법을 찾으면서 건설을 추진하였다. 건설에서 선후차를 정하고 13차 축전 손님들을 위한 숙소를 우선시키면서 만경대학생소년궁전, 교예극장 등 전반적인 건설을 동시에 내밀었다.》고 회상한다.

 

공사에는 막대한 건설자재와 설비들이 필요했지만 수입에 의거할 생각은 없었다고 고인수씨는 말한다.

 

《80년대는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건설이 진행되였다. 광복거리는 돌부터 시작해서 세멘트, 타일, 일체 조명기구, 설비들을 모두 우리 나라에서 생산한 자재를 가지고 건설했다고 자랑높이 말할수 있다. 60, 70년대에 이룩한 공업화에 의한 자립적민족경제가 80년대 건설의 튼튼한 토대로 되였다.》

 

완공된 광복거리. 고층건물들이 무수히 솟아올랐다.(1989년)

 

계승발전되는 건축사상

 

큰 규모의 거리를 일떠세우는 전통은 80년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계승발전되여왔다.

 

90년대에는 통일거리가, 김정은시대에 들어 려명거리며 미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거리, 은하과학자거리 등 웅장한 거리들이 해마다 련이어 일떠서는 건설신화가 창조되였다.

 

특히 새로운 주체100년대에 조국땅우에 일떠선 기념비적창조물들은 하나와 같이 원수님의 숭고한 인민관을 철저히 구현하여 선편리성, 선미학성, 선후대관의 원칙에서 완벽하게 건설되였다.

 

김순호씨는 주석님시대에 빈터우에서 전후복구와 살림집건설을 하였으며 장군님시대에는 수많은 거리들과 공공건물들이 일떠서 사회주의대건설의 일대 번영기가 펼쳐졌다. 원수님시대에 들어서는 모든 건설이 내놓고 흠잡을데 없는 세계적수준으로 이루어지고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조국의 발전모습을 보니 우리 나라의 건설력사를 창조해온 한사람으로서 긍지를 더 강하게 느낀다. 새시대 거창한 창조와 건설의 나날에 적대세력들의 제재와 압박속에서 더욱 튼튼히 다져진 자강력은 더욱 높이 발휘되여나갈것이다.》

 

오랜 설계가, 건설자들은 사회주의건설의 어제와 오늘을 돌이켜보며 주체건축의 력사를 창조해온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뿌듯이 느끼면서 더욱 문명해질 래일에 대한 확신을 가다듬고있다.


 

 

온 나라에 끓어번진 《80년대속도》창조운동

 

김정일장군님께서 발기하신 《80년대속도》창조운동은 천리마대고조시기의 그 기세, 그 기백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켜 1980년대를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력사에서 빛나는 위훈의 년대로 되게 하기 위한 투쟁이며 근로자들의 비상히 높은 혁명적각오와 열의에 기초한 대중적진군운동이다.

1982년 6월 8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협의회에서 장군님께서는 《천리마대고조시기의 기세로 〈80년대속도〉를 창조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이 《80년대속도》창조를 위한 투쟁의 첫 봉화를 높이 추켜들도록 하시였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이 창조한 모범이 온 나라에 일반화되고 《80년대속도》창조운동이 인민경제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 힘있게 벌어지게 되였다.

1982년 11월에 진행된 천리마운동선구자대회에서는 당 6차대회에서 제시된 사회주의건설의 10대전망목표를 성과적으로 점령하기 위해 《80년대속도》창조투쟁을 힘있게 벌릴것을 토의하였다.

《80년대속도》창조운동의 불길속에 유색금속광물생산기지인 검덕의 로동계급은 해발 1,200m의 고산지대에 현대적인 제3선광장을 단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일떠세웠으며 락원의 로동계급은 6,0003대형산소분리기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제작하는 등 석탄, 전력, 건재, 화학, 전자자동화, 농업 등 인민경제 중요전선에서 련이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출처: 조선신보]

 

 

 

 관련기사

►〈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5〉《피바다》가 지펴올린 가극혁명의 불길

►〈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4〉 세계체육계를 경탄시킨 60년대 체육신화

〈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3〉동상이 전하는 《자력갱생》, 《계속혁신》의 전통

〈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2〉 무수한 영웅전사를 배출한 3년간의 전쟁

►〈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1〉 북남대표들에 의한 전조선중앙정부의 수립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8-12-04 14:52:26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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