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총련, 공화국창건당시의 애국적활동 1 > 미주/해외/국제

본문 바로가기
미주/해외/국제

재일총련, 공화국창건당시의 애국적활동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9-03 09:39 댓글0건

본문

공화국창건전후 재일동포들이 벌인 애국적 활동(1)

편집국

 

<조선신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0돌을 맞으며 해방 2달후인 10월 15일에 결성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을 시작으로 재일동포들이 전개해온 애국적 활동을 돌이켜보는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오규상 부소장의 글을 4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이에 전문을 소개한다.


 

 

〈마음의 요람, 희망의 등대/공화국창건당시의 애국적활동 1〉

진정한 인민정권수립은 재일동포들의 념원

 

 

오규상(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부소장)

 

해방직후부터 공화국창건직전까지의 활동

 

오늘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조국인민들과 더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0돐을 열렬히 경축하고있으며 대원수님들의 최대의 애국유산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유일한 조국으로 굳게 믿고 전진하여 온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김정은원수님을 우러러 조국과 함께 나아갈 새로운 결의에 충만되여있다.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난 기간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주체의 기치, 애국애족의 기치를 높이 들고 온갖 시련과 난관을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과감히 이겨내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한길을 꿋꿋이 걸어왔습니다.》(《축하문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주체102(2013)년 9월 7일).

 

원수님의 말씀은 공화국창건이후 일관하게 공화국을 열렬히 사랑하고 옹호하여온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높은 평가의 말씀이다.

 

4번에 걸쳐 련재하는 이 글은 공화국창건 70돐에 즈음하여 공화국창건을 전후한 시기에 재일동포들이 전개한 공화국창건을 지지하고 경축한 애국적활동을 다시 돌이켜보고 당시의 애국적활동가들과 동포들의 활동모습을 배워 현재도 먼 후날에도 영광스러운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열렬히 사랑하고 옹호해나가는 각오를 새로이 다지는데 도움을 주자는것이다.

 

신조선건설에 헌신

 

일제의 식민지지배로 하여 살길을 찾아 혹은 강제련행으로 일본에 끌려온 사람들과 그 후예들이 재일조선인사회를 형성한것은 주지하는바이다. 일제시기 재일동포들은 인간의 초보적권리마저 박탈당하였으며 온갖 차별과 멸시속에서 비참한 식민지노예생활을 강요당하였다.

 

동포들이 가장 바란것은 일제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 민족적해방을 이룩하고 사람답게 살것을 보장해주는 진정한 국가, 인민의 정권의 수립이였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여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되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는 환희와 감격속에서 각지에 인민위원회를 창설하고 새 생활을 창조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남반부에는 미군정이 실시되고 북반부에는 구쏘련군대가 재류하게 되여 조선반도에는 복잡한 정세가 조성된다.

 

재일동포들은 조국의 동향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 고향으로, 조국으로 귀국의 길에 오르는 반면에 자기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며 동포들의 의사와 리익을 대변하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재일본조선인련맹의 선언과 강령(1945년 10월 15일)

 

 

해방 2달후인 10월 15일에는 재일동포들의 첫 통일전선적조직인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을 결성하였으며 활동을 시작하였다.

 

조련은 자기 강령 6항목중의 첫자리에 《1. 우리는 신조선건설에 헌신적노력을 기함》이라고 밝혔다. 46년 2월 24일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상공련합회도 결성대회에서 《1. 우리는 산업경제에 총력을 걸어서 신조선건설에 공헌하련다.》는 강령을 채택하고있다.

 

패전직후 일본은 극도의 사회적혼란에 빠져있었고 해방된지 몇달밖에 안된 재일동포들이 귀국을 서두르는 반면에 생활을 안정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던 그 복잡한 시기에도 조직에 뭉친 동포들은 자기 조직의 목표를 밝힌 강령의 첫자리에 새 조국건설에 기여할것을 밝혔으니 재일동포들이 진정한 주권을 얼마나 학수고대하였으며 애국적선대들의 뜻이 얼마나 깊었던가 상상할수 있을것이다.

 

분단책동을 반대배격

 

조련과 재일동포들은 조선의 통일독립을 위하여 일본이라는 립지조건에서 많은 활동을 조직전개하였다. 몇가지를 본다.

 

조련은 1945년 12월에 있은 모쓰크바3상회의 결정을 적극 지지하였으며 그러한 방향에서 새 정권이 수립되기를 기대하여 활동하였다. 조련중앙총본부(중총)상무위원회는 1946년 1월 14일에 《재일본200만동포들에게 고함》을 발표하고 16일에는 《조선신탁통치안에 대한 조련총본부견해》를 발표하고 3상회의결정을 지지하는 립장을 표명하고있다.

 

조련은 제6차 중앙위원회(1946.5.25∼26)결정에 따라  6월 10일에 일본각지 10개소에서 림시정부수립촉성인민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정권수립을 요구하는 재일동포들의 의사를 크게 과시하였다.

 

조선민주림시정부수립촉성대회(간또지방대회 1946년 6월 10일)

 

 

례를 들어 간또지방인민대회는 東京上野公園에 3만명의 동포들이 모였다. 중총 한덕수총무부장이 사회를 하고 윤근위원장이 개회사를 하였으며 중총간부들, 간또지방 조련 각 현본부위원장, 계층별대표 등 23명이 연설하였다(《민중신문》1946.6.20).

 

조련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북조선인민위원회사업을 주시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활동도 벌리였다.

 

조련은 조선의 분단을 노린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조직(유엔총회1947.11.14)과 그 활동을 반대하였다. 조련은 1948년 1월 8일의 유엔조선위원단의 서울입지도 반대하였으며 유엔조선위원단이 2월 26일에 미국제출의 남조선단독선거실시안을 채택한데 대해서도 조련의장단성명(2.29)을 내여  《이번 결의는 민족을 파멸에 인도하려는것이다, 남조선단선단정안을 절대 배격》이라는 원칙적립장을 밝혔다

 

조련은 북조선인민회의 제4차회의(1948.2.6∼7)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초안을 발표하고 조선인민전체의 열성적토의에 의하여 채결해주기를 바란다고 한데 대해서도 적극 호응하였다. 《해방신문》은 헌법초안을 전문 소개하고 토의과정을 보도하였으며 헌법초안의 해설기사와 획기적의의에 대한 론설 등을 련달아 실었다. 조련은 제14차 중앙위원회(4.10∼12)에서 이 헌법초안을 검토하고 동포들에게 철저히 인식시켜나갈것을 방침화하였다. 헌법초안은 평양에서 진행된 헌법초안토의인민특별회의(4.28∼29)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였다.

 

남북련석회의에 참가

 

조련은 남북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의 개최를 지지하고 조련대표도 참가하도록 하였다.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제26차 중앙위원회(3.25)에서《남조선의 단선과 유엔을 반대하며 통일된 자주독립을 위하여 전조선의 민주정당, 사회단체대표자들의 련석회의》를 4월 14일 평양에서 개최하자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련의장단은 4월 5일 《해방신문》을 통하여 《이 제안은 자주냐 예속이냐, 통일이냐 분렬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직면하고있는 조선의 운명에 일대활로를 타개하는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백난을 무릅쓰고라도 씩씩하게 참석하리라 우리들도 재류60만동포의 의사를 대변하여 이 회의를 전면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성공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것이다.》고 성명하였다. 조련14차 중앙위원회에서도  련석회의에 대한 지지를 재차 표명하고 평양회의에 보내는 메쎄지를 채택하고있다.

 

련석회의(4.19∼23)에 조련은 유자격단체로 대표가 참가하였으며 22일에 있은 평양방송은 조련대표의 토론에 대하여 《본국민전의 주력부대로서 최후승리확보에 매진할것이다.》고 절규하였다고 보도했다.

 

조련은 조국분단의 위기에 직면하여 5.10단선단정반대투쟁도 전개하였다. 특히 조련은 4월 20일부터 5월 10일사이에 《단선단정반대구국투쟁순간》을 설정하고 22개 지방에서 중총이 장악한 수만 하여도 65,731명을 이 투쟁에 망라시켰다.

 

그리고 5.10단선이후 조련의장단은 5월 17일에 성명을 발표하여 《5월 10일에 진행된 남조선의 선거가 무효임을 주장》하였다.

 

괴뢰정권수립이 전해지는 긴장된 사태속에서 남북조선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의 협의회(1948.6.29∼7.5)가 평양에서 개최되고 남조선의 괴뢰정부조작을 폭로배격하고 선거실시에 기초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를 창설하고 남북조선대표자들로 조선중앙정부를 수립할것 등을 결정하였다.

 

조련은 8월 1일부터 9월 1일사이에 《괴뢰정권분쇄, 중앙정부수립투쟁강화월간》을 설정하여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8월 15일에는 중앙정부수립촉성인민대회를 개최하였다.

 

그후 8월 25일에 전조선총선거가 실시되였으며 9월 2일부터 10일까지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북남의 572명의 대의원이 참가하여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이 채택되였으며 내각수상으로 김일성장군님이 추대되시여 9월 9일에 공화국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와 리익을 대변하는 전정한 인민의 정권이 수립되였으며 재일동포들도 당당한 주권국가의 해외공민의 지위에 올라서게 되였다.

 

 

[출처: 조선신보]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8-09-03 09:53:20 새 소식에서 복사 됨]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4.15 특집 경축]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꽃바구니와 축하편지를 보내여왔다
[조선중앙통신] 로씨야련방공산당대표단 해방탑에 화환 진정 외 2
【조선신보】평양국제마라손경기대회, 6년만에 개최/세계 여러 나라 애호가들의 목소리
[동영상] 조선관광선전사에서 전하는 조선관광소식 < 겨울철관광진행 > 외 9편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4월 4일 (금)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4월 3일 (목)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4월 1일 (화)
최근게시물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4월 28일 (월)
[사진으로 보는 로동신문] 4월 29일 (화)
[로동신문 연재]인류의 생존, 경제발전과 직결되는 생물안전보장문제(1) 왜 전략적인 안전개념으로 확대되였는가
[로동신문] 사랑의 선물악기들을 받은 수해지역 학교들에서 울리는 격정의 목소리
【로동신문】 나날이 복이 늘어나고 국력이 강해지는 멋있는 시대
[21세기민족일보 사설 및 글] 조선군의 참전은 곧 러시아군의 참전 외 3
【조선중앙통신】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이어가는 승리의 진군길
[노정협] 사실이 다 진실인가? 사실주의자들은 누구에게 복무하는가?
【조선신보】 국가의 전면적발전을 위해 《모든 지역과 단위를 당정책화》 외 1
【로동신문】 조선로동당의 상징 주체의 붉은당기가 태여나기까지
[권오헌 명예회장 추도식] 영원한 양심수의 벗 통일조국에서 영면하소서
【조선중앙통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로씨야련방의 꾸르스크지역해방작전에 참전하여 영웅적위훈을 세운 조선…
Copyright ⓒ 2000-2025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