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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미주 민주화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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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9-19 10:3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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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간추린 미주 민주화 운동사 3

 

 

하용진(재미동포전국연합회 사무차장)

 

18년 철권 통치의 유신도 부마항쟁을 기점으로 그 파열을 맞게 된다. 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울려 퍼진 한 방의 총소리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 그것은 자유이고 희망이었다.

서울의 봄,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을 열고 그 어느 때 보다도 따사로운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조국의 민주화와 새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자랑스러운 이민의 삶을 살고자 했던 동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유신독재를 피해 그리운 강산을 눈물로 떠나 미주로 이주해 망명 아닌 망명생활을 감수해야했던 수많은 동포들에게 있어 그 감회는 더욱 가슴 뜨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의 열기가 무르익기도 전 일단의 군인무리들이 정권탈취를 위한 음모들을 하나씩 진행시키고 있었다. 12/12쿠테타로 집권의 기반을 마련한 그들은 마침내 남도 광주에서 피의 살육을 자행하면서 이땅의 민주주의는 한낮 꿈으로 남아야했다.

 

5.18광주항쟁.

 

야수적 만행에 맞서 광주의 민중들은 의연하게 싸워 나갔고 장열한 죽음은 자주, 민주, 통일의 역사에 깊이 아로새겨진다. 그것은 우리 현대사의 운명을 규정한 일대변혁이었으며 이곳 미주에서도 운동사에 획을 긋는 계기가 된다. 분노는 산과 물을 건너 이곳 미주에서도 연일 광주의 학살에 항의하는 시위가 영사관 앞에서 있었다. 오히려 국내의 모든 언론이 통제된 반면 미주의 동포들은 외신을 통해 광주의 진실에 대해 접근할 수 있으므로 해서 전두환 일파의 야심을 꿰뚫고 반 전두환 투쟁에 즉각 나설 수 있었다.

 

나성의 경우 그 투쟁의 중심에 김상돈을 대표로 국영길, 노길남, 김운하, 차상달을 중심으로한 한국민주화운동협의회가 조직되어 전두환 일파를 규탄하는 집회와 대책회의를 통해 그들의 만행을 동포사회와 미국내 진보세력에게 알려 나갔다. 이후 한국민주화운동협의회가 ‘논단’으로 이어지고 김운하, 배강웅, 국영길, 노길남 등이 한민련 미주지부의 성원으로 활동하며 미주운동의 명맥을 이어갔다.

 

80년대초 광주항쟁 지도부의 일인이었던 윤한봉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미주운동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미주 각 지역에 산재해 있던 의식 있는 청년들이 윤한봉을 중심으로 뭉쳐 미전국적 청년조직인 재미한국청년연합(재미한청)이 결성되어 미주운동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오랫동안 활동하게 된다.*

 

* 84년 재미한청이 창립되고 90년 중반 ‘대분열’을 겪기까지 10여년 동안 미주운동은 ‘한청권’과 ‘비한청권’으로 대별될 만큼 재미한청은 미주운동을 대표하고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간 동안 미주운동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던 재미한청에 대해서 본 필자는 재미한청과의 ‘적절한 관계’가 없었던 연유로 ‘절반의 역사’를 제대로 기술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느낀다. 여기서는 창립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기술한다.

 

83년 2월 윤한봉이 중심이 되어 로스앤젤레스에서 민족학교가 설립되고 84년 1월1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등 4개 지역의 청년들이 모여 청년대회를 개최하고 미 전국적 청년운동단체인 재미한국청년연합을 결성한다. 재미한청은 미대륙에 흩어져 살고있는 재미동포사회를 그 운동기반으로 삼고 우선 청년학생계층을 묶어 세워 청년운동조직을 각지에 건설할 목표를 세우고 1984년 초부터 다음해까지 동포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대도시에서 지역조직 결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 결과 미 동부지역에는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디시에 미 중부지역에는 시카코, 덴버에 미 서부지역에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에 지역 한청을 결성해 낸다. 재미한청의 구성은 20대와 30대에 이르는 유학생 출신 청년들과 이민온 동포청년들로 이루어졌다. 재미한청의 활발한 활동은 미주운동에 활력소를 불어넣으며 다양한 운동형태들을 창출해내고 미주내 청년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성원글-재미동포들의 민족민주운동」중에서 1991.7.

 

그리고 87년 8월에는 재미한청을 지원하고 함께 활동해오던 중장년층의 활동가들이 한겨레운동 미주연합(한겨레)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로서 70년대까지 소수의 지식인들에 의해서 국내 민주화 지원 역량이란 인식의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미주운동이 80년대 광주항쟁 투쟁을 깃점으로 양적, 질적 변화를 가져와 단순한 국내운동 지원역량으로서가 아니라 동포대중사회 자체의 변화발전에 기반을 두고 동포대중들을 대상으로 실천활동을 전개하는 대중운동체로 거듭난다.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의 당당한 일 주체로써 해외(미주)운동의 위상을 정립하고 본격적으로 대중활동을 전개해 나가게 된 것이다. 

 

[출처: 사발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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