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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상 선생, "남과 북은 하나의 조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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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3-01 14: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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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상 선생, "남과 북은 하나의 조국이다"

 

편집국

 

 

민족통신이 이병상 재미동포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하였다. 8순의 이병상 선생은 좌익운동으로 사형 받은 부친 때문에 젊은 시절 연좌죄의 고통을 당하였다. 그는 이남에서 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천신만고 끝에 도미하여 사업가로 성공한 후 20여 차례 북을 방문하면서 북부조국 돕기 운동에 동참해왔다. 그리고 미주에서 오랫동안 김정일화 재배와 보급에 힘써왔으며, 수년 전 북 당국으로부터 명예 생물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그는 항상 “남과 북은 하나의 조국이다. 남측의 형제자매도 내 형제 자매이고, 북측의 형제자매도 내 형제 자매이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는 최근년에는 북 당국이 그의 부친 리창수가 항일혁명가, 통일전사였음을 밝힌 기록을 가지고 무척 자랑스러워 하였다. 인터뷰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인물]이병상:"알고보니 선친은 항일혁명가,통일전사"

 

 

8순을 바라보는 재미동포 이병상선생, 그는 지난 생애를 돌아보며 한많은 생이라고 푸념하는 한편 <선친은 알고보니 항일혁명가이며 통일전사>라고 자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참으로 감격적이다라고 말하면서 <남북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고작 33일을 함께 지내기 위해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표정들이었으나 이들이 한달여 시간을 함께 지내고 헤어질때는 눈물로 이별을 하는 것을 보고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그리고 좌가 뭔지 우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집안은 좌우갈등 때문에 콩가루가 되었다.”고 한숨지으며 지난 시기 좌우 문제로 아버지가 처형당했고, 삼촌이 처형당했다고 그는 분노를 터뜨렸지만 알고보니 선친은 항일혁명가이며 통일전사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의 인생역정을 살펴본다. 민족통신 편집인이 대담한 내용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이병상생애01.jpg

[사진]요즘에는 손자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이병상선생

 

 

                 [사진]임영태 지음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도서를 읽은 소감을 말한다

 
이병상생애-부친이상수.jpg
항일혁명가이며 통일운동 전사였던 이병상 선생의 선친, 이창수 옹의 생전모습

 

[인물]

 

"알고보니 선친은 항일혁명가,통일전사였다"

 

지긋지긋한 색깔론에 신물난 이병상선생

 

 

 

이병상생애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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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참으로 감격적이다라고 말하는 이병상선생(79)은 <남북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고작 33일을 함께 지내기 위해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표정들이었으나 이들이 한달여 시간을 함께 지내고 헤어질때는 눈물로 이별을 하는 것은 보고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그리고 좌가 뭔지 우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집안은 좌우갈등 때문에 콩가루가 되었다.”고 한숨지으며 지난 시기 좌우 문제로 아버지가 처형당했고, 삼촌이 처형당했다고 하며 색깔론이 지긋지긋하다고 분노를 터뜨리는 한편 "알고보니 선친은 항일혁명가이며 통일전사였다"고 자부한다.

 

6남1녀의 7남매중에 1939년 7월26일에 셋째로 태어난 이병상은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진촌리가 그의 고향인데 6.25전쟁을 전후하여 집안 식구들이 색깔론때문에 그의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형 셋은 남녘에서 죽고, 누이는 색깔론이 몰아치는 회오리 바람을 피하여 이북으로 가서 평양의과대학을 나와 개성에서 의사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와 동생 둘만 남고 나머지 세형제자매들은 몽땅 작고한 상태이다.

 

족보로 보면 그는 전주 이씨, 양녕대군의 18대손인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은 14살때라고 회고한다. 당시 안성 삼죽면 면장이던 부친 이창수는 1907년 4월19일 생으로 해방직후 좌익운동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연루되어 5년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6.25 한달전에 출감하여 있다가 사변이 터진지 3일후인 6월28일 남쪽 치안기관에 의해 검거되었다가 처형되었고, 그의 둘째 삼촌도 다른 사람들과 한 오랏줄에 엮인 채 운명을 같이했다.

 

이런 가정적 배경때문에 그는 정부의 연좌제에 걸려 오랜세월 동안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이 같은 환경조건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병상은 삼죽국민학교, 죽산중학을 간신히 졸업하기 하였으나 중3때 일간신문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고학을 했다. 그리고 중동고등학교도 고학하여 입학하고, 성균관대학교에 들어가 1963년 중국문학과를 혼자 벌어서 학비를 내고 졸업하고 졸업직후 군대에 입대하여 제대했다.

 

취직도 어려웠다. 그의 형은 경복고, 서울법대를 나와 문공부 보도과장으로 있다가 주한미국대사관의 공보관으로 내정되었으나 그 역시 <연좌제>에 묶여 취직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병상은 1967년에 동신화학 수출부에 입사하여 타이어와 정글화를 베트남에 수출하는 일에 직원으로 일하다가 1년 후인 1968년 대만유학에 교환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만국립정치대학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연좌제>때문에 신원조회에 걸려 출국을 못하고 있다가 외무부 정보담당관에게 통사정하여 빠져 나갈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학에서 시장관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더 이상 박사학위를 할 경제사정이 되지 않아 1971년 30달러를 들고 간신히 미국으로 갈수 있었다.

 

그는 오렌지 카운티 가든 그로브 시청 앞 한 식당에서 시간당 1달러 65센트짜리 접시닦는 일을 구해서 노동일을 하기 시작했다. 조카집의 긴의자에 누워자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Target>백화점에서 일을 하다가 2년만에 부 지배인 자리까지 승진했다. 그러다가 약사로 이민 온 홍순희와 인연이 되어 1973년 결혼에 성공한다. 당시 살림집 임대료가 월 80달러 내지 98달러되었는데 그 때 부부가 지참한 4천달러와 5천달러를 절반은 주차장 청소권을 구입했고, 나머지 절반은 미션 비예요에 집 한채를 선약금을 주고 나머지는 은행융자를 받아 샀다. 이것이 3년만에 집값이 뛰어 그것을 팔아 1975년에 유크리드 화원을 7만2천달러에 인수하여 본격적인 화원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업이 20여년이 넘어서야 그 작은 돈이 큰 돈이 되는 사업체로 되었고, 그후 2005년 은퇴할때까지 그 가치는 더욱 뛰어 손에 잡을 수 있는 돈은 그 이상이 되었다.

 

그는 그래서 그의 고향인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진촌리에 집을 짓고 고향에 노년을 지낼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병상은 한편 “남과 북은 하나의 조국이다.남측의 형제자매도 내 형제 자매이고, 북측의 형제자매도 내 형제 자매이다”라고 생각해 왔다.

 

또한 재미동포로서 그리고 누이가 이북에 가서 성장하며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북도 자신의 고향이며 조국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지난 1990년8.15범민족대회를 계기로 하여 그 이후 20여차례 방북하면서 과일나무와 꽃가꾸기 사업을 비롯하여 북부조국 돕기 운동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남은 생애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임영태가 쓴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제목에 <한국현대사,기억과의 투쟁>이라는 부제의 통일뉴스 출판도서(2017년 11월8일 발행)를 보여주며 이 책에 나나탄 각종 학살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억울한 죽음들이었다고 지적하며 그 중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그의 부친과 연계시켜 조작하여 만든 사건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사건으로 수십만명이 학살되었는데 이들의‘억울한 죽음을 위로하는 위령비’라도 만들어 다시는 이런 비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6.25전쟁으로 죽은 남북 동포들은 수백만명이 된다고 하는데 전쟁시기 전후에 남쪽에서만 학살당한 민간인들은 30~40만명이 되고, 전쟁이전 10월민중항쟁, 여순사건, 제주4.3사건과 단선정부수립을 전후한 시기의 좌우투쟁과정에서 이미 10만여명의 무고한 동포들이 학살당했고, 전쟁직후 보도연맹과 예비검속 사건으로 최소 10만여명, 그리고 형무소 재소자 학살과 부역혐의 처벌, 후방지역 토벌과정 등에서 10만여명이 희생되었고, 국민방위군 사건과 미군기 폭격등으로 최소한 수만명이 희생되었다고 임영태가 지은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도서자료에서도 밝혀졌다고 그는 소개한다.  

 

이병상은 “선친은 물론이고 당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모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목메어 말하면서 “삼촌만 해도 제가 알기로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고, 저희 선친도 마찬가지인데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한국 정부에서도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나 희생자 유족자들이 마땅히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여 주어야 합니다.”라고 토로하고, 우선 그가 아는 소머리고개 학살피해 유가족들과 만나 앞으로의 사업과 위령비 사업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병상은 자신이 79년 살아온 굴절된 역사에서 선친이 도대체 어떤 분인가를 알고 싶어 북녘에 가서도 선친의 경력을 알아보았다.

 

북부조국의 조선로동당 개성시위원회(6과 부부장 리길남, 조직비서 김성철)은 2000년 8월29일자로 그의 선친, 리창수(1907년 4월19일생)에 대한 경력확인서를 해주어 그 사본을 보관하고 있다. 이 확인서에는 선친의 당시 직장지위는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이창수는 광복후 삼죽면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다가 탄압으로 인민위원회가 해산되자 지하에서 투쟁하던 과정에 1948년 4월 력사적인 남북조선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에 경기도 대표로 참가하였습니다. 련석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4월21일 휴식시간에 리창수는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휴식시간을 리용하여 대표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시기위하여 회의장소인 모란봉극장 앞마당으로 나오셨습니다. 이때 리창수는 위대한 수령님께로 가까이 가서 인사를 드리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 주시고 친히 그와 담화를 하시였습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름과 나이, 고향, 가정형편과 학력등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다음 그가 앞으로 남조선에 나가서 해야할 투쟁과업들을 밝혀주시였습니다. 회의가 끝난후 남조선으로 다시 나가서 투쟁하던 리창수는 적들에게 체포되여 전쟁시기 경기도 도구머리라는 곳에서 학살되였습니다./이상의 리창수의 경력을 확인합니다./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6부3과 과장 리종혁(수표) 주체89(2000)8월29일 사본자:조선로동당 개성시위원회 6과부부장 리길남/조선로동당 개성시위원회 조직비서 김성철”라고 씌여있다.

 

이병상 선생은 선친의 경력확인서를 복사하여 한장을 준 다음에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마지막으로 이 모든 한을 풀수 있는 것은 오로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이라고 설명하면서 분단시대의 피해자들은 남이나 북의 동포들과 해외동포들 모두가 해당된다고 풀이하는 한편 우리민족이 살길과 우리 후대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민족의 자주통일이라고 거듭 거듭 강조한다.(끝)

 

[출처: 민족통신]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8-03-01 14:30:1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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