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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진 선봉 (라선)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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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9-27 11:5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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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진 선봉 (라선) 방문기

                                                               

이흥노/(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가뜩이나 밉상스런 트럼프 대통령이 미 시민권자들의 평양 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금년 9월 부터 여행 금지령이 발동됐다. 원래 나는 금년 가을에나 함경북도 라선 (라진 선봉) 방문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미 국무성의 난데없는 조치로 부득이 라선 방문을 앞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 8월 중순에 서울→연길 (중국)→라선행을 서둘렀다. 어차피 중국을 거쳐서 가야 할 라선인지라 서울엘 들렀다. 더구나 정권도 교체됐으니…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는 언제나 입국하는 인천 공항 이민국 (법무부)에서 늘 기분을 잡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과거와 달랐다. 이민국 직원이 나의 얼굴을 째려보지도 않았고 콤퓨터의 키 보드를 오래 치지도 않았다. 입국 도장이 곧바로 찍혔다. 여타 다른 손님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자 말자 먼저 중국 연길행 비행기표를 마련했다. 몇일 쉬고 연길을 향해 떠났다. 2년 전 묵었던 연변대학 앞 <성도모텔>에 들어섰다. 모텔 사장님이 금세 알아보고 아주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라선으로 가는 뻐스를 탔다. 승객은 뻐스의 절반도 안됐다. 대부분 중국 조선족이다. 두어시간 오간 이들의 대화 내용은 주로 북중 간 수산물 거래 차단에 따른 대응책 논의였다. 아마도 모두들 북의 라선 지역으로 부터 수산물을 수입하는 무역업자들인 모양이다. 중국 조선족들도 역시 유엔 대북제재의 회생양들이 분명한 것 같다. 중국측 <권하 세관>에 도착할 무렵에서야 반지 보다 작은 나의 인공치아를 연길 <성도 모텔>에 두고 온 걸 알았다. 황급히 전화를 걸어 서울 친척집으로 치아를 우송해 달라고 졸랐다. 7백 달러나 들인 치아다. 사장님이 쾌히 슬락했다.

 

중국측 세관을 빠져나오자 바로 두만강 다리를 건너니 북측 <원정리 세관>이다. 연길에서 뻐스를 타고 같이 온 승객들은 모두 이민국, 세관을 거쳐 나가버렸다. 내차례가 와서 여권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민국 직원은 여권을 보지도 않고 <해동 사업처>에서 사람이 나오니 기다리란다. 일행들과 같이 타고 온 뻐스로 라선 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무작정 기다리라니 겁이 덜컥 났다. 한참 흘렀다. 이윽고 자신을 사업처에서 나온  <장성일>이라 소개하면서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제서야 안심이 됐고 마음이 놓였다. 라선을 향해 달리다가 장성일 지도원이 좀 쉬어가잔다. 휴개소다. 그런데 지하에서 약수가 펑펑쏟아진다. 적게 잡아도 10년은 젊어진다는 약수로 목을 추기고 뒷켠으로 가니 대량 생산기지가 보인다.

 

선봉 지역을 지날 때에는 작년 수마가 핥키고 간 흔적이 곧곧에서 보인다. 언론 매체를 통해 알기는 했지만, 폭우로 폐허가 된 땅위에 1,500세대의 살림집이 질서정연하고 산듯하게 들어선 것을 직접 보니 진정 놀랍고 자랑스럽기 한이 없다. 더 놀란 것은 “조선을 위해 배우자”라는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는 <만복고급중학교>를 보고서다. 큰 3층 건물에 인조 잔디 까지 깔린 운동장이 펼쳐져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서 나눠준 빵을 먹으며 걸어가고 어떤 학생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떼를 지어 걸어간다. 나는 무작정 혼자 걸어가는 한 여학생에게 말을 건넸다. 옥연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3학년 학생이다. 하도 예뻐서 사진을 찍자고 하니 수줍어 하면서 응해준다.

 

라진 호텔에 여장을 풀고 보니 손심의 대부분이 중국인들이고 해외동포는 몇 되질 않았다. 동포들과는 아침 식사시간이면 호텔 식당에서 꼭 만나게 된다. 서로 만나면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고 서로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더구나 재미동포는 모두 8월 말 까지는 떠나야 하는 입장이라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매우 착잡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 사업가는 현지 직원들과 친지들이 어울려 송병회를 벌리는 가 하면 또 다른 한 자선사업가 (아동 영양)는 눈시울을 적시며 작별하는 게 눈에 뛰었다. 이렇게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를 목격하고 나니 맥이 빠지긴 했지만, 안일광 <해외동포청 사무처장>과 대담 할 기회를 가졌다. 안일광 처장은 매우 차분하고 친절하게 시의 투자 유치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는 “문제는 미국의 대조선 여행 금지 조치”라고 말끝을 맺었다.

 

사실, 나는 라선의 무궁무진한 관광자원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중러 3각지대라는 특이한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업구상을 해보자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 러시아에서 공부도 했고, 또 구쏘련권에서 정부 고문으로 그리고 합작회사를 운영하며 5년이나 살았던 경험을 십분 이용해서 북중러를 뛰어다니고픈 마음 간절하다. 돌연 발표된 미국의 대북여행 차단은 나의 꿈을 찢어놓고 말았다. 그래도 기왕에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 더 많은 곳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애썼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미주의 벗들 중엔 두 사람이나 고아원 출신이 있다. 그래서 고아원에 관심이 많다. 라진에도 고아원학교가 있다고 장 지도원이 말한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손마이크와 대형붐박스를 차에 실고 라진 고아원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는 큰 3층 건물로 인조잔디 까지 갖춘 훈륭한 시설을 갖췄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전경희 원장 (교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평교사로 있다가 교장 발령을 받았다는 전 교장을 따라 교정을 참관했다. 식당과 주방도 둘러봤다. 손색 없는 시설들이다.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학생 수가 3백 여명, 교원만 35명이라 했다. 내가 만나 본 학생은 김영일 (16세), 박원경 (14세), 그리고 우진혁 (15세) 등 3명이다. 이들은 모두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고 한다. 장래 희망을 물으니 김 군은 씩씩한 군인이 되고프다, 박 양은 자기를 길러주는 이 학교 선생님이 돼서 자기와 같은 처지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우 군은 화가가 돼서 조국을 빛내고 싶단다.

 

떠나기 전날에는 하루종일 관광을 했다. 이순신 장군을 추모키 위해 세운 <승전대> 앞에서니 두만강 건너 러시아 하산시가 빤히 보이고 중국의 훈춘시도 보인다. <비파도 (섬)>에 당도하니 중국 관광객이 득실거린다. 낚시를 하는 사람, 해초를 뜯는 사람, 산호를 캐는 사람, 싱그러운 해물을 입에 넣는 사람, 벼라별 재미들을 보고 있다. 우리 일행도 파도 소리를 들어가며 펄펄뛰는 해물을 즐기며 술잔을 기울였다. 관광선을 타고 얼마 나가지 않으면 물개 서식터가 있다. 관광객들이 꼭 봐야할 명소라 배가 연신 드나든다. 주변에는 깨끗한 해수욕장들도 있다. 이런 곳에서 살면 백 수는 문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것도 부러운 게 없었다.

 

저녁에는 라선 극장에서 어린이들의 공연을 참관했다. 3백 명 정도 관객 중 절반은 중국사람이다. 공연이 끝나자 중국인들이 무대에 올라가 애들과 같이 기념촬영을 하는 가 하면 선물을 주기도 한다. 주차장으로 나오니 중국 뻐스가 여러대 대기를 하고 있다. 아마 중국에서 중국 관광객을 태우고 직접 라선 관광에 나선 게 분명한 것 같다. 떠나기 전잘 저녁엔 그간 나를 위해 애썼던 지도원들, 운전사와 작별 연회를 벌렸다. 언제 또 만날지 기약없이 해어져야 하니 섭섭하고 마음이 편칠 않다. 이 세상에서 가고픈 곳을 못가게 하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한미 두 나라다. 이러고도 인권이요 자유라는 소리는 더 요란하게 외친다. 비록 트럼프의 훼방으로 나의 소박한 꿈이 일시적으로 좌절되긴 했지만, 나의 라선지구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져가고 있다. 왜냐하면, 라선은 관광 뿐 아니라 무역 및 사업 분야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곳이라 희망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7-09-27 12:01:3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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