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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태 선생의 서거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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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6-26 15:5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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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태 선생의 서거를 애도하며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내가 전순태 선생을 만난 것은 1980년 초였다. 1981년 내가 시카고에서 엘에이로 이사하자 얼마 되지 않아 전 선생은 나를 만나러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로 왔다. 나는 그와 금세 친해졌다. 얼마 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전 선생은 나보다 7년 선배였지만 결혼을 늦게 하여 아이들은 나의 큰아들보다는 2~3살 아래였고 나의 작은 아들보다는 1살 위였다. 그의 부인은 나의 처와 동갑이었다. 우리는 식구들끼리도 친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떤 모임이 있으면 우리 식구들이 다 올라가 전 선생 집에서 머물렀고 엘에이 지역에서 모임이 있을 때는 전 선생 식구들이 모두 내려와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그 후 우리 두 가족은 한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다. 나에게 있어서 전 선생은 통일 동지이자 형님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지냈다.

 

우리는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전 선생은 황해도의 개성에서 나는 벽난도에서 6.25전쟁 때 남으로 내려왔다. 당시 전 선생은 11살이었고, 나는 4살이었다. 나는 이남으로 내려와 강화도에 며칠 머물다가 김포에서 계속 살았다. 전 선생은 개성에서 송도중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와 인천으로 피난 나와 며칠 지내다가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러 간다고 개성으로 다시 간 후 내려오지 못하고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전 선생은 갑자기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전 선생은 영특한 소년으로 혼자 먹고살며 개성에서 인천으로 옮겨온 송도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외국어대학 브라질어과에서 공부하였다. 전 선생은 남녘에서 고아로 안 해본 일이 없이 갖은 노동을 다 치렀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브라질로 유학을 가다가 샌프란시스코에 잠간 들렀다가 영영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게 되었다. 거기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사업을 해왔다. 그가 가방 가계를 할 때 나에게 선물로 준 서류가방이 아직도 있다. 그는 일찍 눈이떠서 미 제국주의의 본질을 보게 되었고 베트남전쟁의 반대 운동을 포함한 평화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1980년부터 캐나다에서 시작한 이산가족사업을 통하여 개성의 가족을 찾은 전 선생은 만사를 제쳐두고 이북을 방문하여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었다. 그 후 그는 이산가족사업을 미국에서도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다. 양은식 박사와 전 선생, 그리고 여러 이북을 방문한 분들은 기행문을 엮어 그 유명한  [분단을 뛰어 넘어]를 출판하였다.

 

1986년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을 창립할 때도 전 선생은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통협에서는 1986년부터 이산가족위원회를 만들어 이산가족을 찾아주고 이산가족의 방문사업을 도와주었다. 전 선생과 나는 자주 이산가족을 안내하며 이북을 방문하였다. 전 선생은 90년도부터 새로 결성된 <재미범민족연합>의 간부로도 열심히 활동하였다. 1996년에 결성된 <재미동포서부지역연합>에서도 전 선생은 열심히 활동하였고 서부지역연합의 2대 회장도 역임하였다.  전 선생은 2,000 년 이후 결성된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에서도 서거하기 전까지 열심히 활동하였다. 최근 6월 10일에 엘에이에서 개최된 6.15행사에 전 선생도 참석하였다. 여기서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는 열정적인 통일운동가로서 쉬지 않고 통일운동조직에 열성적으로 참석하여 열심히 활동하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는 그의 집이 해 내외 통일인사들의 호텔이었다. 그는 동지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동지들과 술을 마시며 장시간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겼다. 그의 집은 항상 유학생들과 해 내외 운동원들로 붐볐다. 독서도 많이 하여 아는 것이 많았다. 그는 아는 것을 실천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또 미주동포들에게 북을 제대로 알리려는 목적으로 북 영화를 상영하는 등 북 바로 알기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열정적이고 따뜻한 인간이었다.

 

나는 친형 같은 전 선생과 개성도 자주 함께 방문하여 그가 나서 자란 기와집에서 자면서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곤 하였다. 그의 동생들은 나를 만나면 친형을 만난 것처럼 반겨주었다. 개성의 동생들에게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어떻게 말해줄지 고민이다. 지난 토요일 전 선생의 고별식에 참석하여 아들 진환이와 쌍둥이 딸 진희와 수미를 보는 순간 나는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이 계속 나왔다. 전순태형, 잘 가시오. 곧 다시 만게 되리다. 늘 앞장서 하시던 조국통일운동은 우리가 계속 해나가겠소. 형님의 명복을 빌겠소.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7-06-26 15:52:41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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