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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연재26] 주관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과의 차이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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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9-20 14:5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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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연재26]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들의 모임에서 자유토론이 있었다. 토론은 지금까지 토론한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이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주체사상의 이해, 즉 <주체사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주관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과의 차이점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이 모임에는 회원을 비롯해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참석하였다. 토론에서 논의된 것을 간추려 소개한다. 회원의 질문에 김현환 소장이 대답한 것을 편의상 질문과 대답으로 표기한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주관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과의 차이점에 대하여)

 

 

질문: 주체의 사회역사관이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역사발전과정을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증대발전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강조하셨는데 그것은 관념론적이며 주관주의적인 역사관이 아닌가요?

 

대답: 이 질문의 대답은 이미 앞의 토론에서 일부 설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의 토론들에서 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는 인류의 역사를 오로지 <객관적인 면>에서만 파악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도 <자연>과 같이 <물질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사회발전 과정에서도 <자연>에서와 같은 <필연성>이 관통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역사발전 과정도 어디까지나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마르크스 자신은 역사관을 설명하면서 언제나 자기의 근본입장은 사회발전 과정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서 역사를 <자연사적 과정>으로 본다는 의미는 자연에서와 같은 <객관적 과정>, 즉 <자연적 필연성>과 같은 필연적인 과정으로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사회도 하나의 자연과 같은 <물질적 체계>이고 또한 사람도 <객관적 존재>의 면이 있기 때문에 역사발전 과정을 객관적인 면에서 파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또한 그것은 과학적 역사관의 중요한 구성내용으로 되지요.

 

 

그런데 사회적 운동의 담당자인 사람은 <객관적 존재>인 동시에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주체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회역사 운동은 <객관적인 면>과 함께 <주체적인 면>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역사관을 올바로 확립하기 위하여서는 역사발전 과정을 <객관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체적인 면>에서도 파악해야 합니다. <객관적인 면>과 <주체적인 면>에서 동시에 파악된 역사관이라야 역사과정에 대한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 시기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의 <구속사관>같은 <주관주의적 역사관>, <관념론적인 역사관>을 반대하는 데 주되는 화살을 돌리면서 역사이론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역사과정을 <객관적인 면>에서 파악하는 것만이 과학적이라고 믿었지요. 그리하여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역사과정을 파악하는 것도 마치 관념론적이며 주관주의적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지요. 이미 앞의 토론에서 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과정을 <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 즉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구분해 보았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의 관계를 기초에 놓았기 때문에 모든 <사회역사적 과정>을 고찰할 때 언제나 <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르크스주의는 역사를 자연과 공통되는 <물질적인 면>에서만, 또한 인간의 <의식 밖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인 면>에서만 파악하는 것을 과학적인 것으로 간주했지요. 그 이외의 것은 관념적인 면, 주관주의적인 면에서 역사를 파악하는 것으로 보고 마치도 <물질적인 존재>인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고찰하는 것 조차도 주관적인 것, 관념적인 것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생각했지요.

 

 

그런데 위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인간은 <관념>도 아니며 <주관>도 아닙니다. 인간은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는 것은 결코 <관념적인 것>이나 <주관적인 것>을 고찰의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것>을 고찰의 중심에 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체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을 올바로 구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체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물질적인 것>입니다. <주관적인 것>은 <의식을 통과하는 것>이며, 따라서 <관념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것>은 <주체적인 것>의 한 측면, 계기로 되지요. 다시 말하면, <의식>, <주관>은 <인간>, <인간적인 것>의 한 측면, 한 계기로 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철학적 사유에서는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의 관계가 기본문제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현상을 구분하는 데서도 <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이 기본문제로 제기되었지요. 이런 이유로 <객관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은 사회적 과정을 구분하는 범주로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서방 언어들에서 <주체>와 <주관>은 같은 용어로 표현되어 왔지요. 그 둘은 다 같이 영어로 <Subject>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주체>는 <물질적 존재>인 <사람>이지만, <주관>은 관념, <의식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물질과 의식>을 철학의 근본문제로 간주해온 사고방식이 지배해 왔기 때문에 <주체>와 <주관>은 많은 경우에 서로 구별되지 않고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그래서 그 둘을 표현하는 언어도 같은 용어로 써왔지요. 주체철학에 와서 비로소 <주체>와 <주관>이 명확히 구별되었고, 동시에 <주체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범주도 구별되었지요. 주체사상에서는 <주체>와 <주관>의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주체>는 영어로 <Subject>가 아니라 <Juche)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사관을 올바로 확립하려면 사회역사과정을 고찰할 때 단순히 <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을 구분할 뿐 아니라, 마땅히 <객관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도 구분하여야 합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주체적인 면>을 위주로 하면서 여기에 <객관적인 면>을 결합시켜 역사관을 전개하고 있지요. 여기서 <주체적인 면>이란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활동의 면을 말합니다. <객관적인 면>이란 <객관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활동의 면과 사회생활의 변화발전의 면을 포함하여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을 위주로 하면서 여기에 <객관적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을 결합하여 역사관을 전개해야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할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사람>을 고찰의 중심에 놓는 다는 것은 곧 <주관주의 적인 것>, <관념적인 것>이라고 이해하거나, 또 그것은 <관념>, <정신>, <의식>으로서의 <주관>을 고찰의 중심에 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지요. <사람>을 고찰의 중심에 놓는 것은 <주체적인 것>, <물질적 존재>로서의 <사람>을 고찰의 중심에 놓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관념론으로 될 수 없지요.

 

 

다음으로, <객관적 존재의 면>에서만 역사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일면적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객관적 존재>임과 동시에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을 전면적으로 파악하려면 <객관적인 면>과 함께 동시에 <주체적인 면>을 반드시 파악해야 합니다. 앞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지난 시기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와 역사를 주로 <객관적인 면>에서 파악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연과 사회의 물질적 공통성의 견지에서 사회의 발전과정을 파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도 지적했습니다.

 

자연과 사회의 물질적 <공통성의 면>에서 사회의 발전과정을 파악한 다음에는 이에 기초해서 자연과 사회의 <차이성의 면>에서도 사회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인식발전의 요구로 나섭니다. 자연과 사회의 발전에서 근본적 차이란 자연에는 <주체>가 없지만 사회에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자연의 운동은 사물들의 맹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운동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에 의해서, 즉 주체의 <의식적인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 그 근본적 차이가 있지요. 따라서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 주체의 <의식적인 활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을 파악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발전시키는 데서 필연적으로 나서는 요구로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역사관인 <주체사관>은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확립하였습니다. 주체사관에서 사회적 운동을 <주체의 운동>으로 파악한다고 할 때 여기에 두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 운동을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의 실현과정>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모든 사회적 운동은 다 사람들의 일정한 요구와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일정한 사회적 운동의 배후에는 반드시 일정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일정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떠난 사회적 운동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발생 발전할 수도 없지요. 따라서 일정한 계급이나 계층, 집단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떠난 사회적 운동이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운동을 <주체의 운동>으로 파악할 때 첫째로 지적해야 할 문제는 사회적 운동이 사람들의 일정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 두번째 의미는 사회적 운동이 목적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사람들의 <창조적 힘>에 의해서 추동되는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자연의 운동은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자연의 힘에 의해서 추동되어 나가지요. 그러나 사회적 운동은 언제나 목적의식적으로 자기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창조적 힘>에 의해서 추동되어 나갑니다. 이것이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의 두 면이지요.

 

 

이 두면은 사회적 운동 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적 사건, 사변을 분석할 때도 언제나 방법론으로 나서는 중요한 요인들입니다. 모든 운동, 사건, 사변이 누구의, 어느 집단의, 어느 계급의, 어느 민족의 요구와 이해관계와 결합되어 있으며, 또 이러한 요구와 이해관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교차되며, 어떻게 합치되고 대립되는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첫째로 중요한 방법론으로 나섭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러한 역사적 사건, 사변을 <추동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 누구의 힘에 의해서 그것이 추동되어 나가는가 하는 것이지요. 간단히 말하면, <이해관계의 분석>과 <역량관계의 분석>, 이 두가지 방법론이 사회역사적 과정을 분석하는 주되는 요구로 나섭니다.

 

 

이처럼 주체사관에서는 그러한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의 두가지 징표>를 염두에 두고 <이해관계의 분석>과 <역량관계의 분석>이  사회적 과정을 분석하는 주되는 방법론으로 제기되고 있지요. 사회적 운동을 객관적인 면에서 객관적인 운동으로만 파악하게 되면 그러한 역사적 운동, 사건, 사변들이 객관적이고, 인간의 의식 밖에 독립해 있고, 거기에 자기의 객관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등의 방법론은 나올 수 있지만 그 운동, 사건, 사변들의 방향과 목적을 규정하는 <요구와 이해관계>의 분석, 그것을 추동하는 <추동력>에 대한 분석 자체는 전면에 나서지 못합니다. 왜냐면 사회적 운동을 단지 <객관적인 운동>으로만 파악하게 되면 역사적 운동, 사건, 사변들이 어떠한 <객관적 요인>에 의해서, 어떠한 <객관적 모순>에 의해서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에만 주된 관심을 돌리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사회와 역사를 <주체의 운동>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사회역사를 분석하는 올바른 방법론을 정립하는 데서도 보다 깊은 지도적 지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됩니다. 또한 이러한 분석은 역사적 운동, 사건, 사변들을 이해하는 과학적이고 심오한 것으로 됩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로 시작하여 주체의 세계관을 토론하였고 주체의 사회역사관을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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