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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연재16] 인간 두뇌의 고급한 기능인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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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25 17:3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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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연재16] 인간 두뇌의 고급 기능인 <의식>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들의 모임에서 자유토론이 있었다. 토론은 <의식>이나 <신>이 독립적인 존재인가, <인간뇌수의 기능, 작용>의 산물인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는 내용이었다. 이 모임에는 회원을 비롯해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참석하였다. 토론에서 논의된 것을 간추려 소개한다. 회원의 질문에 김현환 소장이 대답한 것을 편의상 질문과 대답으로 표기한다.]

 


 

질문: 다른 토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토론한 내용들과 [신학의 해방]의 글들을 다시 읽어 보며 깊이 생각해 보니 김소장님이 말하는 <의식>, <이상>, <이념>, 더나아가 <절대정신>, <초자연적인 신>은 결국 인간의 <뇌수>를 떠나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간뇌수의 기능, 작용>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대답: 아주 중요하고 꼭 다루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분명해져야 지금까지의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토론과 앞으로의 <주체사관>을 포함한 다른 토론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 인간의 <본성>에 관한 토론에서 지적했듯이 주체사상이 새롭게 밝힌 인간의 <본질적 속성> 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의식성>입니다. 이 의식성을 올바로 이해해야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라고 주체사상에서 정의내리고 있다는 것을 지난번 토론에서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지요.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을 <물질의 반영, 즉 객관세계의 반영>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의 본질>을 <물질세계>, 즉 <객관세계>에서 찾았지요. 이 경우 <의식의 원천>은 <물질세계>, 즉 <객관세계>에 있게 됩니다. 물론 이 이론은 <의식>을 신비화하고 의식의 물질적 기초를 부정하고, 의식을 절대화하는 <관념론>을 반대하는 데서는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선 <의식>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동물들도 <감각>, <지각>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그 어떤 <개념>과 <판단>, <추리>라는 것을 동물에게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동물의 감각, 지각은 의식발전의 낮은 단계를 표현할 뿐이지요. <의식>이라고 말할 때는 감각으로 출발해서 개념, 판단, 추리에 이르기까지 전일적인 과정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식의 본질>을 마땅히 인간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의식의 본질>을 논해야 의식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인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듯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해> 가지고 객관세계의 특성에 맞게 활동해야만 행동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지요. 그런 면에서 객관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것은 인간행동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되지요. 그런데 인간은 <객관세계의 법칙>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객관세계의 법칙의 작용도 자기에게 복종시키겠는가 하는 견지에서 활동하지요. 인간은 객관세계를 복종시키기 위하여 객관세계를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의 활동에서 <의식>이 노는 역할의 견지에서 볼 때 <의식>이라는 현상을 단순히 <객관세계를 복사, 모사, 촬영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의식의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도록 활동합니다. 인간은 객관세계가 하라는 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객관세계를 자기에게 복무시키기 위하여 활동합니다. 이 인간의 활동을 규정하고 지휘하는 것이 바로 <의식>이지요.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올바로 밝히자면 인간과의 관계, 즉 <사회관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이점을 고려하여 앞에서 이미 지적한대로 주체철학은 다음과 같이 <의식성>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복사해서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두뇌 속에 들어 온 형상도 목적의식적으로 개작하고 변형하여 앞으로 자기의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상하면서 행동의 목적을 세워 활동합니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역시 <인간과의 관계>, <사회관계 속>에서 찾아야 하지요.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의식>이 <물질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은 맞지만, 의식의 본질을 거기서 찾는 것은 일면적이지요.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의 반영>이라는  데서 보다도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인간>의 <생명의 중심>인 <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초해서 외부세계에 대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결국 <의식>이라는 것은 주체사상에 의하면 <인간의 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이지요. 다시 말하면, 의식이란 인간의 <사회적 속성>이지요.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체사상에서는 의식을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반영한 의식형태>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주체철학에서는 전자를 <지식>이라고 말하고, 후자를 <사상의식>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앞의 토론에서 이미 지적했지요. 이처럼 주체철학에서는 의식을 <지식으로서의 의식>과 <사상의식으로서의 의식>, 두 가지 의식형태로 구별하여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의식>입니다. <사상의식>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과 활동을 조절통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 <추동력>으로 됩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사상>을 발동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의 토론에서 강조했지요.. <사상>을 통하여 사람들이 깨어나 그들이 인식론적으로 납득이 되어야 자연개조사업과 사회개조사업에 자진하여 나서게 되며 <변혁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도 십분 발휘하게 되기 때문에 주체사상은 모든 사업에서 <사상사업>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을 앞의 토론에서 이미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 해야 할 것은 주체사상에서 정의내리고 있는 <의식>, <절대정신>, <초자연적 신> <사상의식>,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라는 것이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인 인간, 인간의 몸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유기체인 <뇌수(brain)>의 <고급한 기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의식>, <절대정신>, <신>, <사상의식>은 인간의 <두뇌> 밖에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자>가 아니라, 가장 발전된 유기체인 <인간뇌수의 고급한 기능>이지요

 

그러니까 각종 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엘로힘>, <알라>, <삼신 상제님>, 등의 <초자연적 신들>도 결국은 인간의 두뇌가 <가장 이상적인 존재, 즉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고급한 기능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늘 저 어디에선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리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그러한 흰 수염을 가진 <전지전능한 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황금보석으로 장식된 <천당>도 인간 두뇌의 고급한 기능의 산물인 이상촌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한치 앞을 못보는 불안한 존재이기에 자기 두뇌가 투사하여 만들어 놓은 전지전능한 초자연적 신에게 자기 운명을 맡기고 그 신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니 한심하지요. 이제 다음 토론으로 넘어가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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