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용 선생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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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1-23 11:46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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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용 전 회장을 기억하고 있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들은 오보용 회장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내용을 정리하였다. - 편집국
오보용 선생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창립성원으로서 2005년, 2006년 제미동포동부지역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또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중앙(재미동포전국연합회) 재정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 기간동안에 재미경제인들의 경제교류에 힘을 많이 쏟았습니다.
활동기간동안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활달하며 회원들을 잘 챙기고, 회원에 대한 애정이 많았습니다.
2011년부터 지병으로 인해 본격적인 활동을 못하시고 병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항상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들을 생각하며 사업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병문안 하러 간 회원들의 손을 잡고 반가워했습니다.
오보용 선생은 미국이민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끈 성공적인 이민자의 모형이십니다.
홀몸으로 캐나다로 이민하여 결혼하고 미국으로 와서 근면하게 상업을 경영하며 자수성가하여두 아들을 기른 가정적인 남편이며 부친이었습니다.
부인이 오랫동안 편찮으신 기간 정성스럽게 간호하며 매주 3번씩 병원으로 부인을 모시고 다니며 투석 치료를 받게 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병간을 한 극진한 남편이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전란중 식구들과 헤어진 북에 있는 부인의 식구들을 찾고 방문하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 주었으며 부인이 먼저 돌아가신 후에도 처가들을 방문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온 의리의 남자였습니다.
항상 소박하고 특히 손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며느리들을 또한 친 딸처럼 사랑한 시아버지이기도 하였습니다.
민족의 분단을 마음 아프게 여기며 겨레가 화합하며 평화적인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창립 회원으로서 성심껏 민족화해를 위한 활동에 참여한 귀중한 동포이십니다.
아직도 민족화해를 위한 사업에 더 헌신 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아들, 손자, 며느리들과 기쁜 생활을 해야 할 오보용 선생이 지병으로 일찍 우리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들은 오보용 선생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들은 선생을 추모합니다.
<고 오보용 선생 약력>
1937년 6월15일 대전에서 출생
1957년 대전공업고등학교 졸업
1971년 전영희 여사와 결혼
두아들과 며느리 3명의 손자 손녀가 있음.
1968년 카나다로 이민
1977년 미국 이민, 가발사업, 한인최초로 퀸즈에서
야채가게 운영, Coffee Shop 운영, 세차장 운영등 많은 사업을 하심.
2005년 - 6년 재미동포동부지역연합회 회장역임
2006년 - 2011년까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재정위원장 역임, 재미경제인들의 경제교류 활성화에 노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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